부산과 강릉에서 잇따라 벌어진 여중생 폭행사건과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 재판 결과 등으로 인해 특정 연령 이하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거나 처벌이 가벼운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청소년을 선처하는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27만6000여명이 ‘동의’했다. 유사한 청원에 대한 동의자를 모두 합치면 40만여명이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만들어진 뒤 제기된 청원 1만4000여개 중 가장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개정에 무게를 두고 있었지만 최근 청와대는 ‘폐지나 개정보다는 종합적인 예방책과 현행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등 종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며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국회에는 이미 소년법 개정안이 10여건 계류돼 있어 사실상 결정권은 국회로 넘어갔다.
■ 정부 “개정”, 청 “현행으로 해결”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는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2차 사회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장관과 방송통신위원회·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법무부 차관, 경찰청 차장,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 등 장차관급 15명이 참석했다.
법무부는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금로 법무부 차관은 “소년범에 대한 엄정한 대처와 소년범의 선도·교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문가와 국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소년법 개정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상곤 부총리도 “소년법 개정은 올해 정기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며 개정에 무게를 뒀다.
청와대는 사회관계장관회의 3일 뒤인 지난 25일 국민청원 중 처음으로 소년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영상으로 밝혔다.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사회를 보고 조국 민정수석과 김수현 사회수석이 대담하는 형식이었다.
청와대 의견은 법무부와 달랐다. 조 수석은 “형벌을 아주 강화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형사정책학에서 입증됐다”며 “현행 소년법으로도 해결 가능한 여러 가지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살인을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 기준을 현행 만 14세에서 만 12세나 만 13세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했다. 조 수석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엄벌하라는 국민의 요청은 정당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사건별로, 당사자별로 다르기 때문에 ‘형사 미성년자 나이를 한 칸 혹은 두 칸 낮추면 해결된다’는 것은 착오”라고 말했다. 이어 “일차적으로는 예방이고, 진짜 해결방법은 현행 소년법에 있는 10가지 보호처분을 활성화·실질화·다양화해서 어린 학생들이 사회로 제대로 복귀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수석은 “보호처분의 실질화를 위한 제도 개선과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며 “보호처분 문제라든가 피해자 보호 문제라든가 좀 의지를 가지고 적어도 2~3년 집중해서 노력하면 분명히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폐지 안돼…연령 조정은 가능”
청와대 국민청원처럼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법조계에서는 소년법 폐지로 인한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어 판사들 사이에서도 소년법과 관련해 여러 얘기를 주고받는다”며 “입법 사안이라 국회에서 기준이 되는 연령대를 일부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판사들은 소년법을 폐지하는 데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도소에 갔다 와서 재범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소에 따른 비용과 향후 재범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 등을 생각해도 소년범을 성인범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엄벌주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 교화의 측면에서 청소년들을 성인처럼 엄벌로 다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장과정에 있다는 점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며 “엄벌주의 대신 사회 교화를 이룰 수 있는 입장을 견지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형벌의 궁극적 목적이 사회 교화에 있고,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보편적인 형사사법의 가치이자 목표”라며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처럼 구체적인 특정 사건에서 공교롭게 주범과 공범 연령대가 한 살 차이인 것을 두고 전체 소년법 체계가 잘못됐다거나 불합리하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라고 말했다.
반면 형사 미성년자의 기준을 낮추고 엄벌주의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조인 ㄱ씨는 “선거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바꿨듯 사회적인 변화나 청소년들의 신체적·정신적 발달에 따라 기준을 낮출 수 있다”며 “소년법도 법에 고정된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엄벌한다고 해서 범죄를 안 저지르겠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예방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며 “실질적인 처벌이 없으니 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형·무기징역 해당 중범죄라도 소년범이면 ‘징역 15년’이 최고형
ㆍ경미할 땐 가정법원서 맡아
‘소년법’은 1942년 2월 제정된 ‘조선소년령’을 폐지시키고 1958년 7월 법률로 제정·공포된 법이다. 반사회적 성향이 있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성인과 다르게 조치해 건전하게 자라게 하는 것이 입법의 목적이었다. 처음 시행됐을 당시 소년법상 소년의 기준 나이는 현재보다 한 살 많은 만 20세 미만이었다.
형사사건은 소년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일반 형사사건처럼 다룬다.
그러나 법을 적용받는 대상이 청소년인 만큼 법률상 형법과 다른 점이 꽤 많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라도 18세 미만의 소년범이면 징역 15년이 최고형이다. 또 장기 2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경우, 장기와 단기를 정해서 선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기 5년, 단기 2년일 경우 2년이 지나면 언제든 석방할 수 있다. 또 단기 기간의 3분의 1이 지나면 가석방도 허가할 수 있다. 교화에 무게를 둬 적극적으로 석방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조사나 재판 때는 ‘친절하고 온화하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형사사건이 아닌 경미한 사건은 가정법원 등에 있는 소년부 판사가 맡는다.
소년부 판사는 가장 가벼운 1호부터 가장 무거운 10호까지의 보호처분을 할 수 있다. 1호는 ‘보호자 등에게 감호를 맡기는 것’이고 10호는 ‘6개월~2년간 소년원으로 보내는 것’이다.
소년법은 2015년 12월 마지막 개정할 때까지 총 10차례 개정을 거쳤다. 현재 국회에도 소년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27일 기준 국회에 계류 중인 소년법 일부개정안은 모두 17건이다.
최근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이후 주로 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된 개정안은 ‘엄벌주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 ‘촉법소년’의 나이 기준을 낮추거나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는 법정 최고형을 높인다는 내용이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이전에 발의된 개정안은 소년범의 보호에 무게를 둔 법안들이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결국 소년법 개정의 열쇠를 쥔 것은 국회”라며 “국회 논의 과정과 발의된 개정안 등을 종합한 수준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가르치고 배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종 심사에 '부모 직업' 노출한 서울대, "흙수저 배려 위한 것" (0) | 2017.12.20 |
---|---|
대학들, 입학전형료 반환 ‘생색내기’ (0) | 2017.12.20 |
한국서도 ‘바칼로레아’ 가능할까 (0) | 2017.12.19 |
이낙연 총리 "소록도 천사들 마음으로...장애아 학교 받아들여달라" (0) | 2017.12.19 |
‘상문고 싸움’ 윤희찬 교사 16년 만에 교단으로···대법원 판결 (0) | 2017.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