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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비리 근절, 지금이 ‘골든타임’···“국공립 취원율 40%” 문 정부 공약 앞당겨야

1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 전국 시도교육청 감사관들이 굳은 표정으로 참석해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사립유치원 비리 관련 감사 계획을 논의했다. | 연합뉴스

1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 전국 시도교육청 감사관들이 굳은 표정으로 참석해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사립유치원 비리 관련 감사 계획을 논의했다. | 연합뉴스

유치원을 공교육의 영역으로 볼 것인가,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볼 것인가. 사립유치원 비리의 해법을 찾는 길은 이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유치원은 사립학교법상 학교로 분류되지만 초·중·고교와 달리 개인이 자영업하듯 설립허가를 받는다.

사립유치원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풀려면 법을 바꾸고 회계시스템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감사하는 것 같은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지만, 유치원을 공공성 측면에서 바라보고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임기 내 40%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유치원 비리 사태를 계기로, 공공성 강화를 본격 추진하고 ‘40%’ 약속을 앞당기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17일 교육부 관계자는 “18일 오전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주재하는 전국시도교육청 회의에서 사립유치원 회계감사 결과를 공개하는 시기와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발표될 것”이라며 “국민 기대와 눈높이에 맞는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도시에는 학교가 들어설 때 제도적으로 국공립유치원도 함께 들어가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대도시 기존 주거지역에서도 국공립유치원을 확충할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전국 유치원은 국공립 4747곳, 사립 4282곳 등 총 9029곳이다. 그러나 원아 숫자로 보면 유치원생 69만4631명 가운데 사립유치원생이 75.2%인 52만2110명으로 국공립의 3배다. 특히 대도시일수록 사립유치원이 많다. 신도시인 세종에선 95%의 원아들이 국공립유치원에 다니지만 서울·부산·대구·광주 등에선 국공립 취원율이 10%대에 불과하다.

정부는 올해 국공립유치원 학급 500개를 증설하는 등 2022년까지 총 2600개 학급을 늘리기로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서울 도봉구의 한 국공립어린이집을 찾아가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구도심이 많은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국공립유치원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사립유치원의 반발 탓이다. 지난해 교육부가 국공립유치원을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유아교육발전 5개년 기본계획’을 만들어 공청회를 열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원장들이 서울시교육청 등을 점거해 수차례 무산시켰다.

하지만 비리 사태로 ‘공공성 강화’ 여론이 높아진 시점이어서, 지금이 정책에 가속도를 낼 적기일 수 있다. 유 부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고교 무상교육 공약 시행을 1년 앞당긴다고 했는데,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달성을 앞당겨 추진한다는 대책이 18일 발표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사립유치원을 정부가 지원해 ‘공공형’으로 전환하고, 단설유치원을 짓기 어려운 곳에는 병설유치원을 만들고, 구도심이라도 국공립유치원이 적은 곳을 ‘우선 지역’으로 선정해 늘리는 방안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사립유치원들은 계속 반발할 것이 뻔하다. 이들은 유치원이 개인 돈을 투자해서 만든 ‘개인자산’이라고 본다. 한유총 등이 정부 돈을 지원받으면서 회계감사를 거부하는 것을 국민들은 더이상 용납하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유치원들은 개인 재산을 사용하는 비용으로서 ‘사유재산 공적이용료’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유치원을 공적인 교육기관으로 보는 국민들의 시각과, 일종의 영리추구 기관으로 보는 설립자·원장들의 시각이 충돌하는 것이다.

장혜경 중앙대 강사(아동복지학과)는 “기관을 통한 영유아 교육은 운영형태와 상관없이 공적 영역으로 봐야한다”며 “공적 교육의 책임과 권한을 사인(私人)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구조를 바꿀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사립유치원에 재정지원을 해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국공립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며 “사립유치원과 정책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국공립 40% 취원율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치원 알리미’엔 비리유치원도 “위반내용 없음”···박용진 “한유총 간부 국감 불러야”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유치원 알리미 갈무리.

유치원 알리미 갈무리.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유치원 알리미’ 사이트에서 경기 화성시 환희유치원을 검색하면 ‘위반내용’란이 깨끗하다. 하지만 이 유치원은 교육청 감사에서 정부 지원금과 매달 학부모가 내는 돈으로 노래방, 숙박업소에서 결제하고 명품백과 성인용품까지 산 사실이 적발돼 ‘비리유치원’의 대명사가 된 곳이다. 비리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17일 유치원의 법 위반사항을 공시하는데 예외를 만들어준 교육부 지침 문제를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의 대전·대구·경북교육청 국감에서 “교육청의 감사를 통해 유치원이 징계받은 내역이 유치원 알리미 사이트에 공개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 알리미는 전국 유치원의 교직원 현황과 교육과정, 교육·보육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박 의원은 징계내역이 공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현행법상 시·도 교육청이 적발한 유치원의 법 위반내역은 공시 대상이지만, 하위 규정인 유치원 정보공시 지침에는 이 법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이 있다”고 했다.

‘교육관련 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별법’은 유치원이 법을 위반해 교육청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으면 원장이 이를 공시해야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만든 ‘유치원 정보공시 매뉴얼 및 지침서’에는 “(교육청이) 시정·변경명령을 1회 요구한 후 즉시 이행한 경우는 공시대상에서 제외하되, 동일 사안에 대해 2회, 3회 요구한 후 이행한 경우에는 공시대상으로 함”이라고 나와있다.

박 의원은 또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교육부의 공시 지침도 문제지만 있는 지침도 안 지킨다”며 경북의 한 유치원 사례를 제시했다. 이 유치원은 2016년 6월 방과후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를 참여했다고 속여 정부 지원금을 부정수급한 사실이 적발돼 시정조치을 받았다. 그 달에만 두 번, 총 세 번을 위반했다. 유치원은 징계사실을 공시를 해야했지만 알리지 않았다.

박 의원은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를 놓고 반발하고 있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간부를 오는 29일 교육부 종합감사 국감장에 부르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덕선 한유총 비상대책위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위원장과 간사가 협의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유치원으로 재산증식도 하는데 명품 구입 쯤이야···한유총은 소송전 돌입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16일 오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이덕선 비대위원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이덕선 비대위원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고지원금 가지고 명품 가방사는 건 별 일도 아니에요. 실제로 더 큰 문제는 유치원 원장들이 가족끼리 똘똘 뭉쳐서 유치원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겁니다.”

사립유치원 감사를 맡았던 한 교육청 관계자는 17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원장이나 설립자가 가족끼리 내부 거래하면서 허위 매출 발생시키고 세금조차 안낸다”며 “어학원, 숲체험장 등을 가족명의로 만들어 이에 대한 사용료를 원장들이 다시 받는 식으로 재산을 불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립유치원 모임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간부들 중 일부도 이런 식으로 유치원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6일 기자회견에 나섰던 이덕선 한유총 비상대책위원장이 설립한 ㄱ유치원이 대표적이다.

이 유치원은 설립자의 자녀가 매입한 5000평 규모의 체험학습장 부지에 대해 2016년 2월 토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월 953원씩을 납부해 2017년 6월까지 총 1억3853만원의 임대료를 납부했다. 유치원생 1회 방문당 1만원씩을 계산해 임대료를 책정한 것으로 토지 매입 대출금에 대한 이자와 보유세 등을 교비로 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다른 임원이 운영하는 ㄴ유치원은 유치원비로 원장과 자녀의 개인장기저축급여 납부에 약 2300만원을 사용했고, 휴대전화 요금 및 재산세 약 400만원을 납부했다. 설립자 자녀인 교원에게 처우개선비를 1000만원 가량 과다 지급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 “심려를 끼쳐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사과했던 한유총은 소송전에도 돌입했다.

17일 한유총 비대위에 따르면 한유총은 최근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해 유치원 감사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한 MBC를 상대로 감사결과 공개금지 가처분신청을 지난 15일 서울서부지법에 제기했다. 한유총은 손해배상과 정정·반론보도도 청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비리 유치원을 실명으로 공개한 것은 사생활 침해가 아닌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2009년 쇠고기 원산지 표시 위반 업체 공개여부 관련 소송과 관련해 당시 법원은 정부가 명단을 공개해야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역시 법적 위반은 아니라면서 유치원 감사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쇠고기 원산지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담당했던 송기호 변호사는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 논란에 대해 “국가 예산을 받은 이상, 비리 유치원 명단은 사생활 정보 차원으로 볼 수 없다”며 “부모가 비리 유치원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