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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노사정 대화' 어떻게?... 한국노총 '대통령 참여 8자회의' 역제안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에서 노사정 8자회담 제안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송윤경 기자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에서 노사정 8자회담 제안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송윤경 기자

문재인 정부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시장 양극화와 비정규직 대책 등 노동 현안들을 논의하며 난제를 풀어나가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기본틀이 될 노사정위원회에 민주노총 출신의 문성현 위원장을 앉혔고, 25일에는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대표 사례로 꼽혔던 ‘양대 지침’ 폐기를 공식 선언했다. 노동계가 대화 테이블에 다시 앉을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주면서, 노동계에 공을 넘긴 것이다.

정부는 양대 지침을 없앰으로써 노동계에 ‘대화모드’로 전환할 모멘텀을 마련해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 이후에 만들어진 노사정위는 노동계가 모두 빠져나가면서 유명무실해진데다 권한과 역할이 크게 축소돼 사실상 대화기구로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할지, 혹은 노사정위의 형태가 아닌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의 틀을 만들어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이 참여하는 노사정 8자회의’라는 새로운 틀을 거론하며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한 3단계 프로세스’를 제안했다. 문 대통령과 노사정위원회, 민주노총, 대한상의와 경총,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노사정위원회 대표가 한 테이블에 모여 신뢰부터 쌓자는 것이다. 먼저 8자가 모여 논의한 후에 노사정위가 아닌 새 기구를 만들거나 노사정위를 재편해 새 틀에서 대화를 하자고 했다.

대통령이 참석함으로써 기존 노사정위보다 위상을 높이고, 테이블도 넓혀 노동 현안들을 실질적으로 풀어갈 바탕을 만들자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제안으로 보인다. 정부가 재계 편에 서서 노동계를 설득하는 식이었던 노사정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자는 것이기도 하다.

노사정위는 제안을 반겼다.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원 제안을 환영한다”는 공식 논평을 냈으며, 대통령이 참여하는 8자회의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노사정위는 “시의적절한 제안이라고 생각하며,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입장이다. 문성현 위원장은 노사정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노동계 비판을 받아들여 운영체계를 바꾸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문 위원장은 양대 노총에 “내년 2월까지 복귀하길 기대한다”며 복귀 시한까지 제시한 상태다. 정부로서는 문 위원장 위촉을 비롯해 민주노총을 최대한 배려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복귀의 디딤돌을 놓아준 셈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공무원노조 법외노조화 해소 등을 요구하며 노정 간 신뢰를 더 쌓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사회적 대타협, 노사정 합의, 사회적 대화같이 겉만 번지르르한 형식이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포함한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도록 하는 행정조치와 법·제도 개선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문제 등을 들며 “‘새로운 사회적 대화’ 제안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그 배경에는 또다른 사정도 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죄로 수감돼 있다. 민중총궐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한 위원장은 석방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내년 2월에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지도부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다. 문 위원장이 ‘내년 2월 복귀’ 스케줄을 제시한 것도 민주노총 선거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친화를 내세운 새 정부가 출범해 대화하자고 하는 마당에, 지도부 공백으로 이렇다할 결정을 내리기도 힘든 민주노총에게는 노사정 대화 자체가 짐이 돼버린 셈이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노사정 대화가 민주노총의 의제로 올라가면 내부에 폭탄이 떨어지는 수준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문 위원장이 ‘2월 복귀’를 거론함으로써, 민주노총 내에서 노사정 대화를 중시하는 진영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참여하라는 한국노총의 제안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토를 거친 뒤 답변할 문제”라고만 답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사회적 대화를 제시한만큼, 어떤 형식을 취할 지 여러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