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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 끊이지 않는 타워크레인 사고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입력2017-10-10 20:45:00

노동자의 권리를 되새기는 ‘노동자의 날’이었던 지난 5월1일, 경상남도 거제의 삼성중공업에서는 크레인 두대가 충돌해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대형참사가 일어났다.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을 이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처벌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크레인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10일 오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또 대형 타워크레인이 쓰러져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경기 의정부시 낙양동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철거작업 중이던 타워크레인이 쓰러졌다. 이 사고로 아파트 14층 높이 타워크레인에서 작업하던 이모씨(55)와 염모씨(52)가 지상으로 추락해 숨졌고, 김모씨(56)는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숨졌다.

10일 오후 크레인 해체작업 중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기 의정부시 낙양동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 14층 높이의 크레인이 넘어져 있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의정부소방서 제공·연합뉴스


타워크레인 넘어져 5명 사상

이날 사고는 타워크레인을 해체하기 위해 기둥 구조물을 들어 올리는 ‘텔레스코핑’ 작업 중 크레인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5월 1일에는 삼성중공업의 거제 선박건조장 7안벽의 800t급 골리앗크레인과 32t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하면서 타워크레인 상부 철골수평대 50~60m가 부러져 노동자들의 휴식장소인 흡연실과 화장실을 덮쳤다.

거제 삼성중 크레인 쓰러져 노동절에, 노동자 6명 사망

조선소에서는 크레인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이렌을 울리거나 신호수가 작동을 조절한다. 하지만 이날은 크레인끼리 ‘소통’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조치를 총괄해야 하는 ‘현장안전관리자’는 사건 당시 현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작업현장을 지휘하지도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원청 사업주는 하청노동자의 산재 예방 의무가 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이를 방기한 것이다.

[사설] 노동절에 산재로 숨진 하청노동자들

노동절에 일어난 이 참사는 일터에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웠다.

‘노동자의 날’에 쉬지 못하고 일터에 나와 사망까지 이른 6명은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이었다. 또한 하청업체 직원 다수가 사용했던 휴식장소는 공중에서 대형 크레인이 오가는 구역에 마련돼 있었다. 규정대로라면 크레인이 움직이는 범위 내에는 휴식장소를 둬선 안 된다.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같은 작업현장에 있어도 위험한 일은 대개 하청업체 직원들이 맡는다. 800t급 골리앗 크레인 조종수와 신호수 6명은 삼성중공업 정규직이었지만 골리앗크레인과 충돌해 넘어진 32t급 타워크레인에는 모두 하청노동자들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제경찰서는 수사본부를 꾸려 조선소장 등을 비롯해 6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중 골리앗크레인 신호수인 이모씨(47)의 사전 구속영장만 발부됐다. 거제경찰서 관계자는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영장이 기각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보강수사를 해 재신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통영지청 관계자 역시 “검경의 수사와 별개로 현장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31명의 사상자를 낸 참사의 ‘진실규명’과 원청 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은 아직도 미완에 머물러 있다.

사고현장 8개 하청 노동자 ‘소통 관리’ 부실…원청 책임 약화시킨 법·솜방망이 처벌 탓도

대형 크레인 사고는 지난 5월이 처음이 아니다. 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타워크레인은 전국적으로 5881대가 사용되고 있으며 크레인에 의한 중대재해는 점차 늘고 있다. 2012년에는 타워크레인 중대재해가 한건도 없었지만 2013년 5건, 2014년 6건으로 늘었다. 2015년에는 1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9건으로 뛰었다.

도심 곳곳의 공사현장에 있는 소형 타워크레인 관리도 위험천만하다. 5월 20일에는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상승작업 중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5월 23일에는 서울 마곡지구 오피스텔 신축 공사현장에서 소형 타워크레인 앞부분이 꺾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타워크레인 일부가 도로로 전복돼 자칫하면 차량과 행인을 덮칠 수도 있었다. 5월13일에는 경기 부천시의 오피스텔 신축현장에서 30민터 높이의 소형타워크레인이 강풍에 꺾이면서 인근 상가의 노래방 간판을 내리쳤다.

크레인 기사 “흔들흔들하더니 ‘뚝’…철길 덮쳤다”

노동부는 거제 참사 후 20여일이 지난 5월24일 크레인 사고 대응계획을 내놨다. 크레인 작업에 대한 위험경보제 실시와 크레인 사용 건설현장에 대한 감독, 크레인 임대사업자와 노동자 특별교육 계획이 뼈대였다.

지난 7월 23일에는 타워크레인 안전규칙 준수 등에 대한 감독결과가 공개됐다. 401개 타워크레인 현장을 감독한 결과 110개 현장에서 ‘정격하중(인양할 수 있는 하중) 미표시’ ‘지지방법 불량(벽체 등 구조물에 충분하게 지지를 해 놓지 않은 경우)’ 등의 법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노동자 안전을 위해 쓰도록 돼 있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 내역을 확인했더니 401개 사업장 중 230개 사업장이 다른 목적으로 잘못 쓰거나 내역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7월 23일 공개한 타워크레인 안전규칙 준수 등에 대한 감독 결과. 자료 고용노동부


노동부는 특히 1000만원이 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잘못 사용한 10개 사업장과 사용내역서를 작성하지 않은 58개 사업장에 대해서는 과태료 부과와 함께 공공 공사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에서 감점(0.5점)을 당하도록 조달청에 통보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감독과 처벌만으로는 크레인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건설노조 등에서는 오랫동안 근본적인 법·제도 정비를 촉구해왔다. 이를테면 타워크레인은 건설기계로 분류되지만 검사를 국가가 아닌 민간업자가 맡고 있어 엄격한 관리가 어렵다.

특히 주택가 공사에 자주 활용되는 소규모타워크레인 20시간만 교육받으면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제도가 헐겁다. 거제 참사에서 드러났듯 크레인끼리의 충돌을 방지할 ‘신호’가 중요한 만큼 신호수 자격제도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10일 오후 의정부의 크레인 사고 현장을 찾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복적으로 사망 사고를 내는 타워크레인 관련 업체는 업계에서 퇴출시킬 것”이라며 “보상 등 모든 분야에 있어 원청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지침도 곧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