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학부모 전형’,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학종’의 문제점이 사실로 드러났다. 서울대와 연세대 등 11개 주요 대학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심사에서 학부모의 직업을 그대로 노출해 평가자들이 알 수 있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은 12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61개 대학의 서류·면접 전형 주요 평가 항목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서울대의 경우 1차 서류전형에서 지원자가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지 블라인드(가림) 처리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들이 외고·특목고·자사고 위주로 서열화된 현실에서 지원자들의 출신고교를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2차 면접 전형에서는 출신고는 물론이고 자기소개서에 적힌 부모의 직업까지 알 수 있게 했다. 연세대, 명지대, 국민대, 경북대, 부산교대 등도 마찬가지였다. 고려대는 출신고교만 노출했다.
2018학년도에 서울대는 신입생의 79.1%를 학종으로 뽑는다.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 시내 8개 대학의 학종 선발 비율은 54.3%에 달한다. 정부도 대학입시에서 학종을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 역시 내신이나 수능 성적만이 아니라 학생의 학교 활동, 잠재력과 창의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로 학종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학종이 과도한 사교육과 스펙경쟁을 낳고, 부모의 교육수준이나 경제력에 사실상 좌우된다며 반발한다. 실제로 대학들이 학종 평가에서 부모 직업에 출신고교까지 알 수 있게 한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걱정이 기우가 아님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측은 이 조사결과가 공개되자 ‘금수저’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흙수저’에게 더 좋은 점수를 주기 위해 노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공무원·의사 정도는 노출하지만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고위공무원 등은 모두 블라인드 처리한다”며 “비슷한 점수라면 평가자들은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지원자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는 교육부 조사 때 질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해 잘못 응답한 것일뿐이라고 해명했다. 두 대학 모두 평가자들이 학생의 인적사항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소서에 부모 이름이나 직업 등을 쓰면 불이익을 준다고 학교 측이 안내한다 해도, 심사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ㄱ대학교에서는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부모의 직업을 직접 물어본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원자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해, 평가받는 학생이 누구인지 면접관이 알 수 있도록 한 대학도 있었다.
▶'학부모 전형' 된 '학종'…불공정성 해소가 최대 쟁점
대학들의 자율 기구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학종 심사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고 있지만 교육부는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다. 교육부가 제시한 학종 자기소개서 공통양식의 작성 지침에는 어학성적이나 경시대회 수상실적을 적지 말라는 내용은 있으나 부모 직업을 명시하지 말라는 기준은 없다. 그나마도 강제성 없는 지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신입생 선발은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도 있고, 자소서가 학생의 환경과 성장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니 부모의 직업을 쓰지 말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노출하지 않는다’라 답했지만 실제로는 부모 직업 등을 보는 학교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며 “대학들의 자율에 맡길 것이 아니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공정성과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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