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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직접고용’ 약속 어긴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 법정구속…‘기륭 사태’ 12년 만

2014년 12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반대하며 서울 신대방동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 행진을 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2014년 12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반대하며 서울 신대방동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 행진을 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체불임금 지급도 거부해 온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사측의 해고 남발과 차별에 맞서 파업과 단식농성, 오체투지 등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벌여온 지 12년 만의 일이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이강호 부장판사)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최 회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륭전자가 직접고용하겠다는 내용을 국회에서 서약했고, 간접고용 근로자들과 사측의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대대적인 언론 보도로 알려진 바 있다”며 “하지만 합의내용 이행을 정면으로 거부했고, 체불임금과 근로자의 수, 규모를 비춰봤을 때 책임이 절대 가볍지 않은데, 여전히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고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선고 취지를 밝혔다. 최동열 회장은 “노조원들이 근로를 제공하지 않았고 임금체불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 구로공단 중소 제조업체에 만연한 불법파견, 그리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기륭전자 사태는 12년 전인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자제품 제조업체인 기륭전자는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인력을 써 왔다. 도급계약은 원청이 노동자를 지휘·명령할 수 없지만, 기륭전자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렸다. 하청 월급은 당시 최저임금 수준인 70여만원에 그쳤고, 문자 메시지를 통한 원청의 ‘쉬운 해고’도 남발됐다. 노동자들은 정규직과의 차별과 해고에 항의하며 2005년 7월 노조(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를 결성했다. 기륭전자는 하청업체와의 ‘계약 해지’ 명목으로 이들을 전원 해고했다. 당시 최 회장이 받은 처벌은 불법파견 혐의로 선고받은 벌금 500만원에 그쳤다.

2010년 11월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왼쪽)과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이 국회에서 ‘비정규직 직접고용’노사 합의 조인식을 마친뒤 악수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11월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왼쪽)과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이 국회에서 ‘비정규직 직접고용’노사 합의 조인식을 마친뒤 악수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해고노동자들은 3차례의 고공농성과 94일간의 단식 등을 벌이며 기륭전자 사태를 알려 왔다. 해고 1895일 만인 2010년 11월, 기륭전자 노사는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견노동자 10명을 직접고용하는 데 합의했다. 복직자들은 2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13년 5월 기륭전자 본사로 출근했으나 회사는 이들에게 업무를 전혀 주지 않았고, 그 해 12월 임직원을 해고하고 재산을 처분한 뒤 ‘도둑 이사’를 했다. 

이후 노조는 10명의 복직자들이 받아야 할 체불임금에 대한 지리한 민사소송을 벌여 왔다. 최 회장은 “당시 합의를 노동자들과 직접 맺은 것도 아니고, 실제 노동을 제공하지도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임금 지급을 거부했다. 노조는 기륭전자를 상대로 임금지급 청구소송을 냈고, 1·2심 법원은 2010년 합의문을 들어 노동자들이 2013년 5월 이후 기륭전자의 정규직이 맞다는 취지로 판결하면서 밀린 임금 1인당 1693만원도 지급하라고 했다. 판결이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확정됐음에도 최 회장은 요지부동이었다. 노동부는 최 회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11일 실형이 선고됐다.

2013년 11월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이 사측의 직접고용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3년 11월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이 사측의 직접고용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날 재판부도 “(합의문에)2013년 5월2일부로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는 의미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고,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없고 다툼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며 최 회장이 정규직 고용 합의를 어긴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금의 범위와 관련해 근로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지급 기준표 호봉표를 취업규칙에 따라 통일적으로 지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금을 지급할 의무를 진다”고 밝혔다. 

사건을 담당한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최 회장은 노동조합의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뤄진 직접고용 합의를 무시하면서 조합원들의 정규직 지위를 부정하고 임금을 체불한 데다가 야반도주까지 했다”며 “‘사회적 합의’ 위반에 대해 법원이 철퇴를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소연 전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은 “12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하다”라며 “최 회장이 의도적으로 합의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보수적인 재판부조차 잘못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