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힌 것은, 수년 째 국회에서 공전되고 있는 ‘노동시간 줄이기’의 교착 상태를 끝내겠다는 뜻이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주 52시간 정상화’가 시급하므로, 국회가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가 독자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신호를 야당과 기업들에 보낸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당 노동시간 40시간에 노사 합의로 덧붙일 수 있는 12시간 연장근로를 더하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이다. 하지만 1953년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이래 정부는 “근로기준법상 1주일은 근로의무가 있는 5일”이라는 유권해석을 하면서 토·일 노동을 연장근로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휴일 이틀의 16시간을 더한 68시간이 최대 노동시간으로 굳어져버렸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고 과로사같은 사회적 비용이 커진데다,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현행 최대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 52시간’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것으로, 국회 동의 없이 정부 의지만으로 가능하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방안이다. 노동계도 법원 판례들을 들면서 노동부에 행정해석을 철회하라고 요구해왔다. 이렇게 되면 주 52시간을 넘긴 노동은 즉시 불법이 되고, 사업주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재계는 중소기업들에 특히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일 ‘연착륙’ 방안을 논의해 왔다. 노동부 해석을 폐기하는 대신에 근로기준법에 ‘주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이라 못박고, 기업 규모에 따라 적용 유예기간을 두거나 노사 합의로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게 하는 ‘옵션’을 달자는 것이었다. 지난 3월과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주 52시간을 명문화하는 데에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시행 시기와 특별연장근로를 놓고 의견이 갈려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주말 초과근로에 연장수당과 휴일수당을 모두 줄 것인지, 지금처럼 휴일수당만 줄 것인지도 쟁점이다.
이런 논의는 몇년 째 공전되기만 했다. 2010년 노사정위원회는 2020년까지 연간 1800시간 이내로 노동시간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의 상당수도 이미 2014년 환노위 노사정소위원회에서 얘기된 것들이다. ‘본론’에는 합의해놓고 ‘각론’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돼온 것이다. 문 대통령이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18대 국회부터 충분한 논의를 거친 만큼 반드시 통과되도록 노력해주시기를 바란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이미 노동부 행정해석 폐기를 약속했다. 그 부담과 충격은 중소기업 지원 대책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집권 이후 “현장의 혼란을 고려해야 한다”는 고용노동부와 일자리위원회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법 개정을 전제로 논의를 이어 왔다. 다만 홍영표 환노위원장과 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야당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행정해석을 폐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쳐왔다. 최근 집배원 과로사, 버스기사 졸음운전 사고 등 장시간 노동에 따른 폐해가 심각하다는 여론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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