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일선 학교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5·18 광주민주화운동, 노동절, 19대 대선 등에 대한 수업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교사들은 “수업권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17일 중·고교 역사교사들과 나 의원실 등에 따르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나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 대상인 전국 16개 교육청(충북도교육청 제외)을 통해 일선 초·중·고에 올해 1~10월 실시한 특정 주제와 관련된 수업 사례, 교재와 지도안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나 의원이 자료제출을 요구한 주제는 사드 배치, 탈핵·탈원전, 5·1 노동절, 5·18 광주민주화운동, 6·15 남북공동선언, 19대 대선 혹은 공직선거법 관련 자료 6가지다.
한 시도교육청에서 일선 학교에 보낸 나경원 의원실 요구자료 관련 공문. 전국역사교사모임 제공
현장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특정 주제의 수업 자료를 모두 내놓으라 요구해 교사들의 수업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길들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교사단체들에서는 지난해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시험문제 제출을 요구한 사건을 들며 이번에도 수업자료 제출을 거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전 의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 전국 시도교육청에 중학교 사회·역사 과목과 고등학교 한국사·법과정치·사회문화 과목 4년치 시험지 사본을 요구해 사상검증을 하려 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제출 범위를 2년치로 줄였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진보적인 의제들을 선정해 해당 주제로 수업했을 경우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은 수업을 검열하려 하는 것 아니냐”며 “결국 이런 주제로는 수업을 하지 말라는 뜻이고, 정치인이 교사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 의원이 제출을 요구한 주제들 중에는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거나 교육과정과 관련된 내용들도 들어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15 남북공동선언 같은 역사적 사건은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같은 주제로 각급 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19대 대선이나 탈핵·탈원전같은 주제들은 교육과정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선거제도·원자력발전 같은 대주제가 교육과정에 들어가 있다. 교육과정에 제시돼 있지 않은 시사적인 주제를 다룰 필요가 있을 때에는 교사들이 계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할 수도 있다. 2013년 교육부가 고시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도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사회 현안에 대해 학생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계기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나 의원 측은 단순히 계기교육 실태를 파악해보기 위한 것이며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서 계기교육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일반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싶어서 계기교육 내역을 교육청에 요구하자 ‘계기교육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거냐’는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면서 차라리 특정 주제를 정해달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 오해를 받을까봐 세월호처럼 민감한 주제는 뺐고, 인터넷을 검색해 올 상반기에 많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계기교육 주제를 추려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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