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할머니들이 ‘가출해서 뭐하는지 모르겠다’며 쳐다봐요. 사람들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23일 서울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망우 청소년 단기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 지내는 ㄱ양(14)은 “쉼터를 드나들 때 사람들이 속닥거린다”고 했다.
ㄱ양이 지내는 망우쉼터는 지난해 문을 열었다. 여성 청소년만 이용하는 2층짜리 새 건물이다. ㄱ양은 “시설이 깔끔해서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쉼터를 짓는 동안 주변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김병록 망우쉼터 소장은 “건물이 들어설 때 ‘소년원에서 나온 아이들 100명 받는다더라’는 둥 악의적인 소문이 돌았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반대를 많이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간판을 달지는 못하고 ‘청소년 단기쉼터’ 대신 ‘기지개꿈터’라는 별칭을 쓰고 있다.
단기쉼터 측은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많이 애썼다. 김경동 부장은 “시설을 만들고 나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강좌나 배드민턴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며 “지금은 나서서 반대하는 주민들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쉼터에서 지내는 청소년들을 향한 곱지 않은 눈길이 남아있다. ㄴ양(18)은 “아침에 학교 갈 때 안 좋은 시선을 느낀다”고 말했다.
청소년 단기쉼터는 집에서 나온 14~24세 청소년들이 길게는 9개월까지 지낼 수 있는 시설로 전국에 123곳이 있다. 지난해에 전국에서 단기쉼터를 거쳐간 청소년은 3만329명이었다. 올해는 지난 6월까지 1만3903명이 다녀갔다. 단기쉼터의 주된 목적은 가출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4년까지 지낼 수 있는 중장기쉼터는 청소년들의 향후 진로 탐색 등에 초점을 맞춘다.
망우쉼터에서 다섯 명의 청소년을 만났다. ‘나도 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을 하는 날이었다. 재봉틀 사용법을 배워 잠옷 바지, 방석, 무릎담요 따위를 만드는 청소년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밝은 모습이었다. 외부 강사가 2명 있지만 수강 인원이 많아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여기서 지낸 지 넉 달 된 ㄱ양은 들어온 지 갓 3주가 된 ㄷ양(22)에게 재봉틀에 실을 끼우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학교폭력 문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 자퇴하고 단기쉼터에 들어온 ㄹ양(17)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주는 선생님에게 선물할 앞치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집에서 나온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 등 가족과의 갈등’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최근 1년간 가출한 적 있는 청소년들의 74.8%가 ‘가족과의 갈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가정폭력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가족을 피해 나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ㄷ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폭력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여동생, ㄷ양에게 자주 폭력을 썼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시달리던 어머니도 자식들에게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부모는 결국 이혼했고 ㄷ양은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스무 살 되던 해 ‘집에서 나가라’는 어머니 말을 듣고 집을 떠나 혼자 살았다.
대학에 갔지만 혼자 생활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ㄷ양은 “돈이 없어서 학교를 때려치우고 핸드폰 회사 경리, 카페에서 일했다. 그런데 일을 해도 월세와 생활비로 다 나가서 돈이 모이지 않았다”고 했다. 몸이 안 좋아져서 월세 내기도 힘들어진 ㄷ양은 인터넷에서 ‘가출했을 때 어디로 가나’를 검색했다. 단기쉼터들이 떴다. ㄷ양은 시설이 좋다는 망우 단기쉼터로 향했다.
ㄷ양은 “처음에 왔을 때 정말 편안했다”며 “나같은 아이들에게 여기로 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는 여전히 크게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말만 부모일 뿐인 사람들이 많다. 그런 폭력을 당하느니, 의식주가 해결되고 프로그램 교육도 받는 여기서 지내는 게 낫다”면서 “나도 잘 몰랐었는데, 홍보를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ㄷ양의 말처럼, 당장 오갈 곳 없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쉼터가 많이 알려진다면 잠시나마 위기를 피할 피난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 쉼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에서 청소년 쉼터를 안다는 이들은 47.7%에 불과했다. 쉼터를 이용한 적 있는 사람은 9.7%에 그쳤다.
쉼터에 온 지 4개월째인 ㄴ양은 “이런 쉼터를 더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등학생인 ㄴ양은 지나치게 간섭하는 오빠 때문에 집을 나왔다. ㄴ양은 “엄마와는 연락을 하는데 오빠가 휴대폰도 검사하고 너무 심해서 집을 나왔다”며 “통학에 1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제일 친한 친구 한 명한테만 여기서 지낸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ㄴ양처럼 가출을 한 뒤 학교에는 그대로 다니는 청소년들도 많다. 김 부장은 “현재 14명이 지내는데 절반은 학교를 다닌다”며 “새아빠나 엄마, 가정폭력,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로부터 벗어나려 집을 나온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쉼터 막내인 ㄱ양도 “학교 다니는 것은 좋다”고 했다.
쉼터의 시설과 프로그램이 좋긴 하지만, 여기서 계속 지내고 싶을 리는 없다. ‘여기 머물다 중장기 쉼터로 넘어가고 싶은 사람 있어요?’라고 묻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쉼터는 말 그대로 잠시 쉬어가는 공간일 뿐이며, 돌아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곳이다. 김경동 부장은 “단순 가출일 때에는 집으로, 가정폭력 등의 이유가 있을 때에는 보호와 지원을 통해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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