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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메모]“언론탄압” 우기기…방문진 구여권 추천 이사들의 ‘적반하장’

[기자메모]“언론탄압” 우기기…방문진 구여권 추천 이사들의 ‘적반하장’

“정권의 방송장악에 대응하는 방송독립을 위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파업 중인 MBC나 KBS 직원의 발언이 아니라 19일 오후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구여권이 추천한 이인철 이사가 한 말이다.

이사회에서 구여권 추천 이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준비된 신상 발언을 이어갔다. 김광동 이사는 “일부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탄압이 있었다고 하는데 임원이 된 사람도 있고 불이익을 받은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두 이사가 강압에 못 이겨 사퇴한 상황은 반드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권혁철 이사는 “지금도 바깥에 언론노조가 몰려와 야권 이사들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참담하다”고 했다. 세 사람은 발언을 마친 뒤 잇따라 퇴장했고, 고영주 이사장은 의사정족수가 모자라 회의를 끝내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방문진은 MBC 대주주로서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 공공기관이다. 하지만 지난 9년간 방문진은 정권과 결탁한 경영진을 감싸기에 급급해 권한과 책임을 내팽개쳐왔다는 비판을 한몸에 받아왔다. 이사회 다수를 차지한 여권 추천 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을 하며 방문진의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했다.

2010년에는 엄기영 당시 MBC 사장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내고 열흘도 안돼 ‘낙하산’ 딱지가 붙은 김재철 사장을 임명했다. 이후에도 구성원들이 반대하는 안광한·김장겸 사장을 잇따라 임명한 것이 바로 방문진이다. 2012년 파업 뒤 이뤄진 수백건의 보복인사에 대해 법원이 징계·전보 무효 조치를 숱하게 내려도 방문진은 침묵했다. 이사장은 MBC 시청률이 추락하는데도 “태극기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MBC만 본다”는 기상천외한 논리로 경영진을 감쌌다.

그 결과는 9년 만에 신뢰도·영향력이 한도 끝도 없이 떨어지고 5년 만에 또다시 구성원들이 장기 파업에 나설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MBC 모습으로 나타났다. MBC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지난 과오의 책임을 묻자 이제 와서 “언론탄압”이라고 우기는 방문진의 적반하장 행태야말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고영주 이사장 "어차피 나가야지..." 퇴진 시기·형식 고민 중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방송문화진흥회 시청각실에서 취재진들의 거취 문제, 이사회 정족수 문제, 골프접대 의혹 등과 관련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방송문화진흥회 시청각실에서 취재진들의 거취 문제, 이사회 정족수 문제, 골프접대 의혹 등과 관련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구 여권 추천 김원배 이사가 사퇴한 데 이어, MBC 구성원들이 거세게 퇴진을 요구해온 고영주 이사장도 “자진사퇴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 이사장은 19일 오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어차피 (방문진에서) 나가야지 거취를 고민할 것이 뭐가 있겠냐”라며 “자진사퇴를 할건지 불신임 결의를 받고 나갈 건지 그런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이사장은 “(거취와 관련해) 주변 여러 분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구 여권 추천 이사 2명이 잇따라 물러나면서 방문진 내 여야 구도 역전이 기정사실화되자, 이사회에서 불신임을 당하기 전에 자진사퇴를 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사퇴는 정해진 수순이고, 시기와 형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고 이사장은 이날 방문진 이사회가 끝난 후 “언제 거취를 표명하는 것이 공인으로서의 처신에 합당한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고 여러분들께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고 이사장은 “사퇴를 하는 것이 나은지, 안 하는 것이 나은지 모든 옵션이 책상 위에 있다”며 “앞으로 어떤 이사들이 선임돼 오시는지 등 사태의 추이를 지켜 보고 처신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 중인 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고 이사장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마저 공산주의로 몰아붙이고 극우 매카시즘적 사고를 MBC에 주입하려 한 사람”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자진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고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MBC 드라마본부 노조원들은 21일 오후 9시를 기해 <도둑놈 도둑님>, <돌아온 복단지> 등 4개 드라마를 릴레이 결방하기로 결의하며 이례적인 초강경 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MBC 몰락 10년사⑭ MBC를 망친 외부자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목원대 총장 출신인 김 이사는 전날 방문진에 사의를 표한 데 이어 이날 공식적으로 사퇴서를 제출했다. 고 이사장은 전날 다른 구 여권 추천 이사 3명을 만나 앞으로의 거취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다만 김 이사를 이외의 구 여권 추천 이사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다른 세 분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김 이사가 사퇴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방문진 사무처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보궐이사 선임을 요청해야 한다. 구 여권 추천 이사인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도 지난달 물러났기 때문에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보궐이사 2명을 새로 추천할 수 있다. 고 이사장마저 사퇴하고 나면 방문진은 완전히 개편되고, 김장겸 MBC 사장 해임 안건이 이사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이르면 이달 안에 방문진 보궐이사가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