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왜 ‘전환 예외자’인가요.”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청소년인권과에서 ‘모니터링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오승재씨(19)가 말했다. 오씨는 인권실태를 조사할 때 외부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조사 과정을 조율하는 일을 한다. 지난 7월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내려왔을 때 인권위는 오씨도 전환 대상에 포함시켰다. 사업기간이 11개월이어서 상시·지속업무를 판단하는 기준인 ‘1년 중 9개월 이상 업무’에 해당하는 데다, 인권위의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도 오씨의 일이 계속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오씨를 비롯한 기간제 직원 4명의 근로계약 기간이 8개월이라 “상시 지속업무가 아니다”라며 예산에 반영하지 않았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한다고 했지만 일선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 현황과 정규직 전환대상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누락자들이 많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1일 기자회견을 열어 “각 기관들이 일방적으로 상시·지속업무를 판단하고 정규직 전환규모를 결정해, 정작 당사자들은 정규직 전환대상인지도 모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노동부가 발표한 특별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853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은 총 41만6000명이다. 그 중 정규직으로 바뀌는 사람은 절반인 20만5000명이다. 하지만 일시·간헐적 업무 혹은 ‘전환하기 어려운 합리적 사유’를 근거로 빠지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기관 쪽에서 정규직 대상에 넣었는데 예산권을 쥔 기재부가 근로계약기간만 보고 누락시킨 오씨같은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한국가스기술공사의 경우 설계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11명을 전환대상에서 빼면서 “프로젝트성 사업으로 일시적 업무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달았다. 하지만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 업무는 12년 동안 존속돼왔다.
상시·지속업무를 하는데도 전환대상에서 빠진 비정규직들도 있다. 대한석탄공사는 “산업 수요의 변화”를 들며 외주업체 노동자 1109명을 전환대상에서 제외했다. 공공운수노조 석탄공사 도계광업소지부 권영달 지부장은 “이들은 채탄, 발파 등 공사 정규직과 같은 상시지속 업무를 해 왔다”며 “탄광에 이들이 없으면 업무가 마비된다”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일을 하는데도 ‘자회사 소속’이라며 직접고용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철도공사는 용역노동자 9187명 가운데 생명안전업무에 해당하는 1337명을 직접고용 대상자로 적어냈다. 그런데 그중 용역업체 소속 250명만 직접고용하고 자회사인 코레일테크에 소속된 사람들은 그대로 두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고용불안, 중간착취에 시달리는 건 자회사 직원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아웃소싱업체에 소속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을 정규직으로 바꾸기 위해 9월부터 노사전문가협의회를 열고 있다. 그런데 지난 17일 신재상 도로공사 사장 직무대행이 국정감사에서 “요금소 직원을 직접 고용할 계획이 없다”라고 해 논란이 됐다. 13년째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도명화씨는 1일 민주노총 기자회견에 참석해 “당사자들 사이에 협의회가 열리고 있는데 사용자가 전환제외 대상이라고 규정한 것은 기만 행위”라고 말했다.
예산이나 형평성 문제를 들며 자회사 정규직 채용을 추진하거나 일반 입사 지원자들과의 ‘경쟁채용’을 도입하려는 기관들도 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공항 측은 800여명만 직접고용하고 나머지는 자회사로 흡수하려 하는데, 경쟁채용으로 10년 이상 베테랑들을 해고한다면 정규직으로 바꾸는 의미가 없어진다”면서 이날부터 노·사·전문가협의회에 불참한다고 선언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장 감독을 벌여 가이드라인을 위반했을 경우 시정 조치를 하고 있다”라며 “노사전협의회 내 갈등은 중앙컨설팅단 등을 통해 중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노동부는 ‘정규직 전환 우수 사례’들을 발표했다. “올해 목표인 7만4000명의 정규직 전환이 속도를 내고 있다”며, 853개 기관 중 78.7%인 657곳이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구성을 바쳤다고 했다. 이 가운데 114곳의 기간제 1만1000여명, 41곳의 파견·용역 2000여명이 정규직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간제 경마직 5557명을 정규직으로 바꾸기로 한 한국마사회, 용역노동자 157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흡수하기로 한 여수광양항만공사 등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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