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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특수고용직’ 택배노조 설립 인정…대리운전 노조는 불인정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소속 대리기사들이 지난 8월28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조설립 신고서를 접수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일부 노조원들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 불리지 못한다”는 자조적 의미로 홍길동 복장을 착용했다. |강윤중 기자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소속 대리기사들이 지난 8월28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조설립 신고서를 접수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일부 노조원들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 불리지 못한다”는 자조적 의미로 홍길동 복장을 착용했다. |강윤중 기자

정부가 택배기사들의 노동조합인 전국택배연대노조의 설립신고를 받아들였다. 사용자의 지휘·명령을 받지만 자영업자 신분인 ‘특수고용(특고)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문재인 정부가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다만 택배기사가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노동자인지’를 노동부가 검토하는데 2개월이나 걸린 데다가, 함께 신고를 낸 대리운전기사 노조는 인정하지 않아 특고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고용노동부는 “택배노조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설립신고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해 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고 밝혔다. 올해 초 출범한 택배노조가 지난 8월31일 노동부에 설립신고를 낸 지 2개월 만이다. 

택배기사들은 CJ대한통운 같은 택배 본사의 지역대리점과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어 일감을 받는다. 하지만 택배산업 성장에 따른 물량 증가와 배송시간 지연으로 평균 노동시간이 주 70시간을 넘기는 등 근무여건은 열악하다. 사고를 당하거나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당해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노동부는 택배기사가 지정된 구역 내에서 사측이 정한 배송절차와 요금에 따라 지정된 화물을 배송하는 점, 사측이 작성한 업무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어 택배회사·대리점으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 점, 특정 사용자에 전속돼 업무를 수행하는 점 등을 들어 노조 설립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택배노조는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쟁의활동도 할 수 있게 됐다. 노조는 성명을 내 “정부가 당장 보호해줄 수 없다면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노조활동이라도 보장하라는 택배노동자의 요구에 화답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노동부는 다만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택배기사에 대해서만 인정한 것”이라며, 모든 특고노동자의 노조설립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특고노동자들은 직종에 따라 근무 형태나 사용자에 대한 종속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특고노동자로 분류되는 대리운전기사 노조가 낸 ‘설립신고사항 변경신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지역의 대리운전 노조가 전국 단위로 확대·개편하는 것이 “두 노조(지역단위·전국단위)가 조직대상 등에 있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하지만 노동부가 특고노동자의 ‘전속성’을 기준으로 노조 인가여부를 결정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속성은 노동자가 한 업체에 전속돼 일하는 정도를 뜻한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생계를 위해 여러 업체의 ‘콜’을 받는 대리기사가 많은 데다가, 배달대행앱 등 디지털 플랫폼으로 여러 사용자들과 접촉하는 호출노동자들이 늘어나는 실태를 고려하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통 1주일 이내에 나오는 노조 설립필증 발부에 2개월이나 걸린 점, 대리운전노조의 설립신고가 반려당한 점 등을 보면, 특고노동자의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입법과 제도 마련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고용노동부도 특고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법·제도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계에서는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노동자를 규정한 노조법 2조의 개정을 요구해 왔다.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보다는 포괄적이지만, 설립 신고를 받는 행정관청이 법조문을 협소하게 해석해 노조 만들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국회에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노조법 2조를 ‘계약형식과 관계없이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 등으로 개념을 넓혀 특고노동자의 노동권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택배기사를 비롯한 특수고용노동자의 전체 규모는 약 229만명으로 추산된다. 노동계는 1990년대 후반부터 특고노동자들이 사용자와의 협상으로 처우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국제노동기구(ILO)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권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