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고용노동부가 제빵·카페기사를 ‘불법파견’으로 판정했을 때 파리바게뜨 본사의 반응은 한마디로 ‘당황스럽다’였다. 파견법이 프랜차이즈 업계에 적용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프랜차이즈의 특수성을 무시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일은 시키되 ‘고용’은 하지 않으려는 본사, 부담이 전가돼 올까 걱정하는 가맹점주, 회사 문을 닫을 판인 협력업체 등 3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들은 직접고용 대신 3자 합작회사, 이른바 ‘상생기업’이라는 제안을 들고나왔다. 그런데 어디에도 당사자인 제빵기사들의 의견은 보이지 않는다. 가맹점주협의회가 제안해 협력업체들이 밀어붙이는 상생기업에 본사가 은근슬쩍 올라타는 양상이다. 5300여명의 일자리가 걸린 일인데, 이들 덕에 브랜드를 유지하는 파리바게뜨는 이들과 이익을 나눠 갖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밝히지 않는다.
불법파견 판정이 프랜차이즈 업계 첫 사례인 만큼, 파리바게뜨 문제의 해법은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기술을 배워 빵집을 차려보겠다는 젊은이들의 꿈이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이라는 현실에 밀려나는 상황에 당국은 뒤늦게나마 칼을 빼들었다. 협력업체라는 이름의 인력공급 업체들과 본사 앞에 ‘을’일 수밖에 없는 가맹점들을 내세운 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기업은 소송으로 시간을 벌려 한다.
이리저리 치이는 제빵기사들은 혼란스럽다. 정부는 이들이 정규직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지만, 이른바 ‘3자’ 쪽에선 “본사가 직접고용해도 불법파견”이라는 왜곡과 과장이 흘러나온다. 파견법을 비롯한 모든 노동법은 “사람을 고용해 쓴 사람이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느 기업이든 ‘노동권’이라는 보편적 권리를 받아들이고 고용의 책임을 져야 한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미래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노동친화적인 사회’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 ‘업계 특수성’ 사실과 달라
파리바게뜨는 노동부가 “업계 특수성을 무시한 과도한 조치”를 취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이들이 말하는 ‘업계 특수성’은 모든 가맹점의 제품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 도급 제빵기사를 통해 품질관리와 매장 점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 협력업체까지 낀 복잡한 고용구조가 빵의 품질을 지키면서 사업을 키우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 속에는 빵 굽는 이들의 안정된 일자리나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 제대로 된 보상 같은 것은 낄 자리가 없다. 파리바게뜨는 “본사의 이익보다는 가맹점주들을 돕기 위한 취지였다”고도 했다. 하지만 점포 수를 급속히 늘려 시장지배를 강화함으로써 얻어낸 과실을 가장 많이 챙긴 것은 본사였다.
지금 같은 고용형태가 ‘업계 특수성’ 때문이라는 파리바게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노동부가 살펴본 결과, 피자·패스트푸드 등 다른 프랜차이즈는 가맹점 직고용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같은 제과기업인 뚜레쥬르에선 제빵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품질관리사(QSV)들도 모두 협력업체 소속이어서, 본사가 기사들의 업무와 인사관리에 관여하지 않게끔 차단돼 있다.
전문가들은 빵을 만들어 팔게 하면서도 빵 만드는 기술과 노하우를 독점하려는 파리바게뜨의 전략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빵 레시피 같은 기술과 노하우를 가맹점에 나눠준 뒤 점주 혹은 점주가 고용한 직원이 빵을 생산하게 했으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며 “가맹점에게 맡길 수 없다는 태도가 이 같은 관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프랜차이즈는 본사가 가맹점에 상표와 노하우를 나눠주고 그 대가를 받는 거래관계다. 파리바게뜨는 기술과 노하우가 가맹점이나 제빵기사에게 쌓이는 대신 본사가 독식하는 시스템이었다. 제빵기사들은 이 구조 속에서 스스로를 숙련된 기능인이라기보다는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반죽과 발효 등 핵심 기능은 공장의 자동화설비가 담당하고 제빵기사는 배달된 생지(반죽)의 성형과 굽기 같은 마무리 공정만 맡는 형태는 오히려 제조업 시스템에 가까웠다. 현대차 등 제조업 대공장에서 주로 쓰던 위장도급 방식을 프랜차이즈 기업인 파리바게뜨에서 사용한 것도, 제품 생산방식이 근본적으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통과 수익 분배에만 프랜차이즈 특성이 반영됐을 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자동차, 철강 등에서 2차, 3차 하청으로 위장도급을 주는 ‘고용 털어버리기’ 전략이 서비스업과 프랜차이즈 업종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는 아무리 숙련된 제빵기사라 하더라도 단순 노무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제빵기사들의 불이익은?
파리바게뜨가 불법파견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금, 관건은 제빵 노동자들의 불이익을 어떻게 해결해주느냐다. 제빵기사들이 받은 불이익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 본사는 “기사들의 임금이나 복리후생은 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제빵기사들 중에서는 업계 평균보다 높은 임금 등에 끌려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의 주된 불만은 근로계약 관계도 없는 본사 직원들의 일방적인 업무지시와 전환배치, 비인격적인 노무관리에 대한 것이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규직의 경우 일하는 장소를 바꿀 때 사전 동의를 받거나 사유를 설명해 주는 과정이 있고 이게 자연스러운 노무관리 방식”이라며 “기업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작업장을 유연하게 옮길 경우 노동자가 상품처럼 여겨지는 부작용이 생기며, 이는 정부가 간접고용을 규제하는 대표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제빵기사들이 본사 정규직으로 근무했다면 보장받을 수 있었던 권리도 지켜지지 못했다. 본사가 직접고용한 제빵기사들은 협력업체 기사보다 약 100여만원 많은 300만원 이상을 받는다. 이 차액도 차별처우에 해당한다. 제빵기사의 퇴근시간을 조작해 생겨난 110억원대의 체불임금도, 협력업체가 자사 노동자들을 가맹점과 본사의 입김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다.
정부는 ‘사용사업주’인 본사에 이 같은 불이익을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현재 파리바게뜨 측이 기획하고 있는 상생기업은 본사의 직접고용과는 거리가 멀다. 본사·가맹점주·협력업체가 3분의 1씩 출자해 책임을 나누는 구조다.
상생기업을 통해 제빵기사들이 받아 온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을까. 우선 책임 소재의 문제가 있다. 제빵기사 입장에서는 사장이 3명이 되는 셈이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을 때 호소할 곳이 막연해진다. 점주가 직접 빵을 굽는 점주기사 1000여명을 허용하겠다고 본사가 나선 것도 ‘책임 털어내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사라지는 것은 기존 제빵기사들의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본사는 점주기사를 허용한다면서 “현재 1년에 6번인 정기 품질검사를 3~4배 강화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제빵 레시피에 대한 본사 통제권은 그대로 갖겠다는 의미다.
■ 본사는 쏙 빠진 ‘상생기업안’
협력업체들은 제빵기사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하면서 “상생기업에 입사하면 임금이 약 13% 오를 것”이라고 홍보한다. 기본급의 100%인 상여금도 200%까지 오른다고 한다. 임영국 화학섬유노조 사무처장은 “본사 제빵기사들은 올해 상여금을 500%로 받기로 했고, 원래는 700%를 받아 왔다”며 “본사에 직접고용되면 상여금을 훨씬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차별적인 처우가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본사의 복지포인트와 산재보험 가입 같은 혜택도 직접고용된 직원들만 받는 혜택들이다.
파견법에서 직접고용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본사 정규직과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막기 위해서다. 상생기업의 노동조건은 기본원칙을 에둘러 피하려는 조삼모사 제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생기업이 결국에는 지금 상태를 이어가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책임 배분만 조금씩 달라질 뿐, 근로계약의 책임이 모호하고 본사 정규직과의 차별도 온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협력업체들은 제빵기사들에게 “본사가 고용한 제빵기사를 가맹점에 보낼 경우 점주가 업무지시를 하면 이것이 되레 불법이 된다”고 주장한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파견법에 대한 오해”라고 지적한다. 도재형 교수는 “파견법 적용 대상은 노동자 파견 그 자체가 사업의 목적인 경우에만 해당한다”며 “빵 판매가 사업의 목적인 파리바게뜨가 자사 직원을 다른 회사에 보낼 경우에는 파견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해법을 모색해볼 수는 있겠지만, 상생기업 방안은 자칫 직접고용 규정을 무시하고 합작회사나 자회사를 통한 우회로를 만드는 선례가 될 수 있다.
파리바게뜨는 노동부 지시에 유감을 표시한 이후 제빵기사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고 직접고용 얘기를 공식적으로 꺼낸 적도 없다. 불법파견을 시정하라는 건 복잡하게 뒤엉킨 고용관계를 본사와 제빵기사 양자 관계로 정리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현재 제빵기사들에게 상생기업을 홍보하는 것은 노동부가 ‘무허가 파견업체’로 본 협력업체들과 고용 의무가 없는 가맹점주들이다. 불법파견 문제를 처음 제기한 민주노총 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의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본사가 인건비 부담을 떠넘길 것을 우려한 가맹점주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그 부담은 가맹점주가 본사와 대화해 줄이면 될 일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에 개입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가맹점주들의 주장은 ‘제빵기사가 권리를 주장하니 점주가 손해를 본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제빵사를 ‘대화 상대’로 인정해야
본사와 협력업체, 가맹점주들이 기대고 있는 것은 파견법의 예외조항이다. 파견법에는 개별 노동자가 직접고용을 원치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면 회사의 직접고용 의무가 사라진다는 조항이 있다. 협력업체들은 그래서 제빵기사들에게 개별적으로 동의서를 받으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는 직접고용명령 취소소송을 통해 20일의 말미를 얻어냈고, 이 기간 제빵기사들에 대한 설득작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빵기사들 중에는 상생기업 제안에 동의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노조는 설명회에서 왜곡된 주장이 오가고 있으며, ‘직접고용 포기 동의서’ 작성 요구 등 강압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난 6일 제빵기사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참여연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알바노조, 일과 건강 등 58개 시민사회단체들이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 해결과 청년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시민대책위는 성명에서 “협력업체들이 사실과 다른 말로 현혹하면서 사실상 직접고용 포기 확인서를 강요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바게뜨 노조가 소속된 화학섬유식품노조의 임영국 사무처장은 “본사가 직고용한 제빵기사들도 상생기업으로 강제 전보할 거라는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본사는 지난 8월 설립된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조가 4~5차례 본사에 공문을 보냈지만 본사는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대화를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맹점주와 협력업체들도 “노조에 가입한 기사가 500~600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5000명이 넘는 기사들을 대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의 직접고용 지시는 본사와 제빵기사 사이의 문제이며, 오히려 ‘제3자’는 가맹점주와 협력업체들이다. 국내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이 1~2%임을 감안하면 제빵기사의 10% 이상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것은 이들의 요구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미국, 유럽 등의 프랜차이즈는 시간제, 계약직, 정규직 형태로 점주나 본사가 직접고용하고 있다”며 “협력업체를 낀 고용형태는 프랜차이즈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며, 아웃소싱과 중간착취가 만연한 한국 노동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마트도 2013년 캐셔 불법파견이 적발된 뒤 2000여명을 직접고용한 바 있다”며 “제빵기사 직접고용 문제는 파리바게뜨뿐만 아니라 SPC그룹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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