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학생들이 죽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요. 언제까지 이런 일이 되풀이돼야 할까요.”
올해만 현장실습생 두 명이 숨졌다. 지난 1월 콜센터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홍모양(18), 그리고 지난 9일 제주의 음료제조업체에서 기계에 몸이 끼어 변을 당한 이모군(18)이다. ‘이제는 정말 비극을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교육부는 오는 1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현장실습 환경 구축 및 학생인권 보호·강화 방안’을 안건으로 올려 논의할 예정이다.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의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청소년·인권단체 회원들로 이뤄진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청소년노동인권실현 대책회의’(대책회의) 등은 “교육부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는 학생들을 숫자로만 여기는 학교와 싼값에 말 잘 듣는 학생들을 부릴 수 있는 사용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생겨났다. 청년 취업률에 눈이 먼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보호장치를 대폭 풀어줬다. 이런 본질적 문제를, 지난 수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땜질식 처방’으로 메우려 한다면 비극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현장실습을 경험한 특성화고 졸업생 복성현씨가 실습생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알리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마이크를 잡은 복성현(19)씨는 제 2, 제 3의 홍양이나 이군이 될 수 있었던 특성화고 출신이다. 서울의 한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다닌 복씨는 3학년 2학기 때 현장실습으로 세무사 사무실에 취업했다. 말이 실습이었지, 회사는 그를 적은 돈을 주고 써먹을 직원 중 하나로 봤다. “배우는 건 없었어요. 그냥 직원처럼 거래처를 받고 일처리를 하면서 혼자 배운 게 더 많았죠. 그땐 ‘내가 공부가 부족하구나’라면서 스트레스만 받았어요.”
야근도 잦았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따르면, 고교 재학생의 현장실습은 하루 7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협약서는 현장에서는 휴지조각이었다. “보통 하루 8시간씩 일했고 바쁜 시기에는 밤 10시~11시까지 일한 날도 있었어요. 신고 마감 전날에는 하루를 꼬박 새웠어요.” 제주도에서 숨진 이군도 협약서 상 노동시간은 하루 7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11~12시간씩 일했다. 그러면서 복씨가 받은 돈은 한 달 115만원에 불과했다. 담임교사는 “너무 적어보인다”며 한 달 최저임금 수준인 126만원에 맞춰 교육부에 보고했다.
직원들의 인격적인 무시도 힘들었다. 호소할 곳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교사들은 “조금만 더 참아라”라고만 했다. 특성화고는 취업률이 높아야 교육부 지원금이 많아진다. 현장실습 업체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복씨는 “‘지금 네가 돌아오면 후배들은 앞으로 그 회사 취업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라며 “한 친구는 실습 그만두려 할 때 담임이 ‘배신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겨울에는 샴푸마저 꽁꽁 어는 공장 컨테이너 기숙사에 살았던 친구도 있고, 용접작업 중 손이 베였지만 치료도 못 받은 친구도 있었다.
학생들이 착취를 견뎌낸 대가로 학교는 높은 취업률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현장실습이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복씨 동창들 중 실습을 한 회사에 취직한 사람은 10명 가운데 1~2명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직을 못했다. 복씨도 세무사의 꿈을 접고 지금은 서울의 노동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저와 친구들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어요.” 복씨가 말했다. 이군이 숨졌을 때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외면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복씨는 “후배들에게 가끔 ‘취업 잘 하라’고 응원해 주는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이들에게 죄책감이 들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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