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불법파견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은 파리바게뜨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형사입건 절차도 밟는다. 정부가 자율적으로 고용형태를 바꿀 기회를 줬음에도 행정소송 등으로 두달 넘게 시간을 벌어오던 파리바게뜨는 이제 본격적으로 피의자 신분이 돼 수사를 받게 됐다. 과태료 액수는 ‘직접고용을 포기하겠다’고 한 제빵기사들의 ‘진정성’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5일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 제빵기사 5309명을 직접고용하라는 시정지시가 기한 내 이행되지 않아 사법처리 및 과태료 부과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28일 노동부가 파리바게뜨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지 69일 만이다. 파리바게뜨가 ‘직접고용 지시의 효력을 중지해 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낸 가처분신청은 각하됐고, 지난 4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낸 ‘직접고용 시정 기간을 늘려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동부는 “행정법원의 잠정 집행정지 결정으로 사실상 시정기한이 연장돼 2개월 넘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이유을 들었다.
노동부는 파리바게뜨가 직접고용을 할 의도가 없다고 봤다. 파리바게뜨는 본사·가맹점주·협력업체가 출자한 상생기업 ‘해피파트너즈’를 지난 1일 출범시켰다. 파견법에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가 직접고용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할 경우 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가 사라진다는 예외조항이 있다. 상생기업을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노동부는 “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제빵기사 노조) 등 상생기업 고용에 반대하는 제빵기사와의 대화나 설득이 필수적이지만 그동안 파리바게뜨는 노조나 시민대책위원회가 제안한 대화 요청과 노동부의 대화 주선에도 응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또 파리바게뜨는 “제빵기사의 70%인 3700명이 직접고용을 포기한다는 동의서를 썼다”고 주장했지만, 노동부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협력업체가 자사 제빵기사들을 상대로 “동의서 안 쓰면 공장으로 보내겠다”는 협박을 했고, 관리자들이 제빵기사들의 자택까지 따라와 동의서 쓰기를 강요했다는 증언들이 들려왔다. 노조에는 “마지못해 동의서를 썼으나 이를 철회하고 싶다”는 제빵기사들의 철회서도 모여들고 있다. 노조는 5일까지 제빵기사 270여명의 철회서를 받아 노동부에 제출했다. 노동부는 “동의서의 ‘진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고, 이에 대한 증거도 제출되고 있어 시정기한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철회서를 낸 당사자뿐만 아니라, 동의서를 냈다는 3700여명을 전수조사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주가 제빵기사의 의사 표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공정하게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바게뜨의 ‘시간 끌기’도 끝난 셈이다. 지난 2개월은 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른 일종의 ‘계도기간’이었다. 기한을 넘긴 파리바게뜨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본격적인 수사를 받는다. 이미 노동부는 지난 9월 근로감독에서, 본사가 제빵기사에게 업무지시를 했거나 협력업체들의 인사·노무에 관여하는 등 불법파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했다. 검찰 지휘를 받아 정식 수사에 들어가면, ‘위장 도급’ 형태의 고용관계를 누가 승인했고 제빵기사들에 대한 지시사항은 누가 전달했는지 등에 대해 본사 경영진들을 소환해 조사할 수 있게 된다. 파리바게뜨 사건의 핵심 쟁점인, 가맹점주가 아닌 본사를 파견법의 사용사업주로 보고 고용책임을 지운 것이 옳으냐에 대한 판단도 형사재판에서 가려진다.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대상 업무 등을 어기고 노동자 파견을 받은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제빵업은 파견 허용업종이 아니다.
불법파견에 대한 과태료도 부과된다. 다만 노동부는 과태료 금액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불법파견 과태료는 보통 노동자 1인당 1000만원으로 부과된다. 제빵기사 3700명에 대한 과태료가 면제되면 160억 정도를 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 역시 ‘직접고용 포기 의사’의 진정성에 따른 것이니만큼, 노동부는 전수조사를 벌인 뒤 빠른 시일 내에 과태료 금액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날 노동부가 사법처리 계획을 발표하기 직전 파리바게뜨는 “다음주 중 가맹점주협의회, 협력업체와 함께 노조를 만나겠다”고 밝혀왔다. 지난 8월 설립된 노조가 총 4차례 대화 요청을 했으나 본사는 번번히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거부해왔다. 제빵기사들의 철회서가 늘어나 노동부로부터 전수조사 등을 받게 되자 본사가 압박감을 느껴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무허가 파견업체’에 불과한 협력업체를 뺀다면 본사와의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화의 첫 물꼬가 트인 셈이지만 간극은 크다. 노조는 전원 직접고용을, 본사는 상생기업을 통한 우회로를 주장한다. 상생기업이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도 있어, 첫 노사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나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노동부는 “노사가 직접 만나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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