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하고 돈 벌기

[정리뉴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운명은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수정2017-12-06 06:05:01
 

파리바게뜨 수서역점 이재광 점장이 제빵사와 이야기하고 있다./김영민 기자


“짝사랑이죠. 이런 곳에서 10년을 버티고, 아프다고 조퇴한 적도 없어요. 항상 파리바게뜨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어요. 우리가 고객들이 처음 마주하는 파리바게뜨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회사는 우릴 전혀 노동자로 인정을 안 한 거니까, 짝사랑이 깨진 거죠(웃음).”

인천 시내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제빵기사로 일하는 정혜미씨(33)는 지난달 초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씨는 하루 9시간동안 수시로 본사 관계자의 업무 지시를 받으면서 70종류가 넘는 빵 800~900개를 혼자 굽고 케이크까지 만드는 일을 합니다. 지난 9월28일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가 이처럼 제빵기사에게 업무 지휘·감독을 하면서 직접 고용하지 않는 것은 불법 파견이라며 이를 시정하고 5300여명의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궁금하다면 ? ▶ [인터랙티브] 제빵왕 김탁구는 없다…우리가 몰랐던 빵집이야기 

파리바게뜨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소송으로 시간을 끌었습니다. 마침내 지난 5일, 노동부가 시정 지시 69일만에 이를 이행하지 않은 파리바게트를 불법 파견 혐의로 형사 입건하고 과태료도 부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태료와 처벌을 피하려면 파리바게뜨는 이제 제빵기사들을 직접 고용해야 합니다. 이제 정씨의 ‘짝사랑’은 끝날까요?

■ 나는 직접 고용을 원하지 않습니다?

상황은 간단치 않습니다. 파리바게뜨는 직접고용을 피하기 위해 노동부 시정지시가 떨어진 후 우회적인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파견법에서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 본인이 ‘직접고용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원청은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파리바게뜨는 이를 이용해 가맹점, 협력업체와 합작회사를 설립한 후 제빵기사들의 동의를 얻어 이들을 이 회사로 소속시키는 방안을 추진해 왔습니다. ‘불법’ 딱지는 떼어내면서 간접고용도 유지하는 제3의 길을 찾은 것이죠.

▶직접고용 아닌 ‘샛길’ 선택한 파리바게뜨, "3자 합작법인 출범”

지난 1일 파리바게뜨는 본부와 가맹점주협의회, 협력업체 3자가 합자한 상생기업 ‘해피파트너즈’를 출범한다고 밝혔습니다. 파리바게뜨는 직접 고용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고용 포기 ‘동의서’를 작성한 인원이 전체 제빵기사의 70%인 3700명이라고 주장합니다.

■ 과태료 액수도 합자회사도 노동자의 ‘동의’가 관건

파리바게뜨가 합작회사로 문제를 풀겠다고 나선 가운데 노동부는 5일, 불법 파견에 대한 과태료 산정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불법파견으로 확인된 노동자 1명당 1000만원의 과태료를 파리바게뜨가 물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당초 과태료는 530여억원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노동부는 제빵기사 본인이 ‘동의서’를 쓴 경우 과태료를 면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파리바게뜨 주장대로 3700명이 직접고용 포기에 동의한다면 과태료는 대폭 줄어듭니다.

문제는 이 동의가 과연 노동자 본인의 진심에서 나온 것인지입니다. 협력업체들이 설명회를 열어 “동의서를 쓰지 않으면 공장 등 다른 곳으로 전적하겠다” 등의 말을 하며 제빵기사들에게 동의서를 쓰라고 강요했다는 증언이 잇따랐습니다. 

▶[뉴스 깊이보기]파리바게뜨 결국 수사 받는다…과태료 금액은 “제빵기사 동의 여부 전수조사해 결정”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제빵기사 노조)는 제빵기사 274여명에게서 ‘동의 철회서’를 받아 노동부에 냈습니다. 노동부는 제빵기사들의 동의 철회가 계속 늘고 있다며, 동의서가 자발적으로 작성됐는지 전면 재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본사-노조 ‘대화’ 물꼬는 텄지만…

지금껏 합자회사 설립 논의에서 당사자인 제빵기사는 쏙 빠져있었습니다. 전체 제빵기사의 10%가 넘는 700여명이 지난 8월 설립된 노조에 가입했지만, 본사는 그동안 노조와는 대화하지 않고 협력업체를 통해 노동자 개개인을 설득하는 작업만 했습니다.

정혜미 파리바게뜨지회 사무장이 2일 서울 서초구 파리바게뜨 양재동 본사 앞에서 직접고용 촉구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노동부도 이를 꼬집었습니다. 노동부는 이날 발표에서 “상생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대하는 제빵기사와의 대화나 설득이 필수적이지만, 그동안 파리바게뜨는 노조와 시민대책위원회가 제안한 대화 요청과 노동부의 대화 주선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간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던 파리바게뜨는 이날 정부 발표를 앞두고 “다음주 중 가맹점주협의회, 협력업체와 함께 노조를 만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조는 협력업체를 빼고 만난다면 본사와의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노동부도 앞으로 노사 간 대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대화의 물꼬는 튼 셈이지만 노조는 전원 직접고용을, 본사는 상생기업을 통한 간접고용을 주장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불법파견 시정에 반발해 파리바게뜨 측이 낸 소송에 대해 법원은 지금까지 노동부와 제빵기사들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렸지만, 추가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제빵기사 직접 고용 ‘물꼬’]법원, 파리바게뜨 ‘직접고용 정지 신청’ 인정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