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를 할게요. 다들 종이 위에 자기 이름부터 쓰세요. 1번은 꽃집.”
“꽃집이오? 꼬는 쌍기역이니까 먼저 6점, 4점을 찍어야 해요.”
시각장애 1급인 유치부 예진이(가명·6)와 소희(가명·6)가 점자 받아쓰기를 한다. 한 칸이 세로 3줄, 가로 2줄. 6개의 점으로 이뤄진 한글 점자판을 놓고 두 아이가 글자를 받아 ‘적는다’. 아랫줄 오른쪽 ‘6점’에 표시를 하면 된소리가 된다. “선생님, 글자가 틀렸어요.” 여섯 개의 점을 모두 찍으면 ‘옹’자가 되는데 옹자를 두 번 쓰면 글자가 틀렸다는 뜻이다. 소희가 쌍기역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고민만 하는 사이에, 예진이는 옹자를 두 번 찍고도 금세 ‘꽃집’을 썼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 맹학교를 찾아갔다. 예진이 같은 유치원생부터 고3까지, 시각장애 학생들이 수업을 받았다. 점자판과 특수 단말기를 앞에 두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어려운 수학문제에 머리를 긁고 시험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학교나 똑같았다.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두고 한동안 사회가 시끄러웠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한방병원 건립’ 주장으로 불이 댕겨진 주민들의 반대,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는 장애아동 부모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졌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9월 마포의 우진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만났고, 지난 4일 교육부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장애가 없는 아이들과 어울려 자라게 하는 것을 기본틀로 하는 특수교육 4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핸디캡이 있는 아이들을 키우려면 더 따뜻한 마을이 필요하다. 특수학교 문제로 시끌시끌했지만 정작 우리는 이 아이들이 어떤 교실에서 공부하는지, 눈이 보이지 않거나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수업을 받는지, 시각장애 아이들과 발달장애 아이들의 진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장애와 함께 크는 것은 이 아이들만이 아니다. 지역사회, 시민들도 장애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커나간다.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장애 종류에 따라 교육방식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특수학교의 수업을 들여다봤다. 논란 속에 지어진 학교가 ‘안착’한 이후의 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목소리,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아픔과 통합교육의 현실, 졸업 이후의 사회진출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고 시리즈로 소개한다.
점자로 푸는 수학문제
서울맹학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립 특수학교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든 학년이 모여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2~3년 과정의 전공과도 개설돼 있다. 이날 고등학교 2학년 1반은 오전 내내 수학시험을 걱정했다. “시험 범위가 너무 많아. 집합부터 수열의 합까지라니. 시그마(∑) 나오는 문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어.” “보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찍을 수 있으니까.” “보기 없으면 나 빵점이야.” 교실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 학생 6명과 ‘저시력’ 학생 1명이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는다. 전맹 학생들은 점자로 수업을 하고, 저시력 학생들은 비장애인들이 보는 일반 글자를 읽는다. 수학을 담당하는 박계관 선생님이 첫번째 문제를 불러줬다. “일차함수 f(x)=ax+b의 그래프와 그 역함수의 그래프가 점 (2,4)에서 만날 때 두 상수 a+b의 값은?” 주관식이다. 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저시력 학생인 전성현군(17·가명)은 얼굴을 시험지에 가까이 대고 풀이식을 써내려갔다. 성현이 같은 아이들은 종이를 가까이 대고 글자를 읽거나, 글자를 확대해 보여주는 확대독서기를 쓴다.
전맹 학생들이 두툼한 전자기기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점자정보단말기’라는 일종의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이다.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선 상표명인 ‘한소네’로 불린다. 노트 필기를 할 수 있고 교과서나 책 파일을 읽어 점자와 음성으로 내용을 출력할 수 있다. 한소네에는 점 6개에 해당하는 자판 6개, 문자 사이의 칸을 띄우는 스페이스바, 글자를 지우는 삭제 버튼이 있다. 자판 아래에는 한 줄씩 점자가 표시된다.
눈이 안 보이는 학생들이 한소네 없이 종이에 점자를 찍는 방식으로 수학문제를 계산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점자로 풀이식 한 줄을 쓴 뒤에는 이 풀이식을 읽기 위해 종이를 뒤집어 손가락으로 점자를 훑어야 한다. 그다음 식을 쓸 때는 다시 종이를 뒤집어서 ‘점필’로 찍는다. 계산하는 동안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당연히 시간이 비장애 아이들보다 많이 걸린다. 지난달 23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때 비장애 학생들은 전 과목 시험이 오후 5시40분에 끝났지만 경증시각장애 학생과 뇌병변 학생들은 오후 8시20분에, 중증시각장애 수험생들은 오후 9시43분에야 끝났다. 비장애 학생들보다 시험 시간이 1.5~1.7배 더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시각장애 학생들은 웬만한 풀이과정은 암산으로 하곤 한다. 맹학교 교감 이영미 선생님은 “맹학교 졸업생 중에 수학을 잘하는 애들이 특히나 많다. 계산 과정이 머릿속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수학 시험에 한소네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재작년 수능부터였다.
학교 옆으로 이사하는 가족도
김선하양(17·가명)이 한소네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문제를 풀었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모두 갖고 있는 선하는 오른쪽 귀에 인공와우(달팽이관) 수술을 했고, 왼쪽 귀에는 보청기를 꼈다. 선하는 심리상담사를 꿈꾼다. 중학생 때는 교내 또래상담반에 들어가 친구들을 상담해주기도 했다. 그는 “난청인 까닭에 상대방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해서 듣다 보니까 상담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선하는 같은 반 이초은(17·가명), 김다슬(17·가명)과 단짝 친구다. 초은이와 다슬이는 가족과 떨어져 학교 기숙사에 산다. 초은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이 학교에 전학을 왔다. 주말마다 가족이 있는 인천으로 가는데 일반택시보다 싼 시각장애인 전용 택시를 타고 가거나, 흰 지팡이를 들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강서구에 살던 다슬이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위해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선하는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살다가 초등학교 때 가족들이 맹학교 인근으로 이사를 왔다. 신교동에는 자녀를 맹학교에 보내기 위해 학교 근처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맹학교에서 저시력 학생인 전성현군(가명·17)이 글자를 확대해 보여주는 확대독서기를 이용해 영어문제를 풀고 있다. 이재덕 기자
초은이와 선하는 보습학원에서 국어를 배운다. 맹학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이 있다. 시각장애인 강사가 아이들을 지도한다. 수능 언어영역에서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컴퓨터를 이용, 긴 지문을 음성으로 읽어준다. 학생들은 나름 문제를 빨리 푸는 노하우를 익힌다. 음성 재생 속도를 높여 지문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고, 동시에 점자로 찍힌 시험지를 손가락으로 훑어 질문과 보기를 한번에 읽는다. 학원에는 일주일에 두 번 가는데,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는 학교에서 오후 6시30분부터 9시까지 이뤄지는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한다. 초은이는 교육학, 다슬이는 사회학을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밤까지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의 현실은 비장애 학생들이나 장애 학생들이나 비슷했다.
맹학교에는 안마와 침을 놓는 이료(理療)반도 있다. 이료반을 졸업하면 안마사 자격증을 얻는다. 예전엔 맹학교에 인문반이 아예 없었고 이료반뿐이었다. 인문반은 2004년에 개설됐다.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면 이료반으로 진학할 것인지, 인문반으로 진학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선하와 초은, 다슬이가 다니는 인문반은 국·영·수 과목이 각각 6시간씩이고, 이료반엔 이 과목들이 각각 2시간씩 편성돼 있다. 이료반에서는 안마, 혈자리, 해부생리, 병리, 진단 등의 과목을 추가로 배운다. 주변 주민들에게 안마 실습을 해주기도 한다.
한때는 시각장애인은 곧 안마사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료반 학생들이라 해도 모두 안마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다. 이료반 김민태 학생(18)은 최근 지방의 4년제 대학 역사교육학과에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다. 이료반을 졸업하면서 얻는 안마사 자격증은 아르바이트 혹은 취업을 하지 못할 경우 대비책이다. 그는 비장애인 학교의 역사 교사가 되는 게 꿈이다.
유튜브를 ‘듣는’ 아이들
다슬이는 부모님이 시각장애인 안마사이지만, 이료반을 선택하지 않았다. “모든 시각장애인이 안마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손으로 하는 일에 별로 자신이 없기도 했고. 저도 비장애인 학생들이 배우는 만큼 배우고 싶고 그 정도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인문반을 택했어요. 대학 진학 공부에만 집중해서 좋기도 하고요.”
미래를 걱정하고 공부에 시달리는 건 비장애 아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장애가 있다는 것 때문에 미묘하게 달라지는 생활 패턴들이 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 같은 것. 맹학교 학생들 중에는 스마트폰 브랜드 중에서 애플 아이폰을 쓰는 아이들이 유독 많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폰에는 ‘보이스오버’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화면에 있는 내용을 음성으로 빠르게 읽어주기 때문이다.
7년째 아이폰을 쓰고 있다는 민태는 “다른 스마트폰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반응속도가 너무 느리고 부정확하다”고 했다. 인터뷰 중 기자의 스마트폰 진동이 울리자 민태가 말했다. “갤럭시 쓰시네요. 아이폰과 진동소리가 달라서 쉽게 알죠.” 눈이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은 소리를 비롯한 다른 느낌에는 매우 민감했다.
다슬이는 “상당수가 아이폰을 사용한다”며 “갓애플”이라고 말했다. 다슬, 초은, 선하는 카카오톡 메신저 단체방에서 자주 수다를 떤다. 취미는 유튜브 시청. 눈이 아니라 귀로 듣고, 재미있는 동영상을 찾아내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으로 공유한다. 초은이가 “듣기만 해도 재밌는 영상이 너무나도 많다. 기숙사에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하자 다슬이는 “학교가 와이파이 무제한의 축복을 내려주시면 좋을 텐데”라며 거들었다. 맹학교 학생들은 체육시간에 ‘골볼’이라는 운동을 한다. 축구나 핸드볼과 비슷한데 운동장이 가로 9m, 세로 18m에, 골대 너비가 9m에 이른다.
각자 자기편 골대 앞에 앉아 있다가 상대편이 던진 공을 막아내는 경기다. 농구공 크기만 한 공 안에는 방울이 들어 있다. 공이 굴러오는 소리로 알아듣고 몸을 던져 공을 막는다. 패럴림픽 공식 종목이기도 하다. 이날은 체육관에서 중학교 1학년 2반 학생들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저시력팀과 전맹팀으로 나눠 실력을 겨뤘다. 학생들은 발목과 팔목에 보호대를 끼었다. 저시력 학생들은 안대를 썼다. 경기장 밖에서 지켜보는데 공이 굴러왔다. 아이들에게 패스를 해주려고 발로 찼더니 발목이 얼얼했다. 공은 딱딱한 데다 무게가 꽤 나갔다.
맹학교처럼 특정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학교나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 교육부 용어로 하면 ‘특수교육대상자’인 아이들은 전국에서 8만9353명에 이른다. 그 아이들의 상당수는 발달장애를 안고 있다. 발달장애는 다시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지적장애와 자폐 같은 정서장애로 나뉜다. 교육부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 중 지적장애 학생이 4만8084명으로 전체 장애 학생의 절반이 넘는 53.8%를 차지한다. 자폐성장애는 1만1422명으로 12.8%다.
밀알학교의 ‘택배 수업’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밀알학교를 찾았다. 밀알학교는 학생 200여명 중 80%가 자폐아이고 나머지 20%는 지적장애아들이다. 이 학교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 학생들이 전문대학 과정처럼 2년을 더 공부하는 ‘전공과’가 설치돼 있다. 이날 밀알학교에선 전공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장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택배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에는 500㎖ 물통 20개가 들어 있는 택배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허리를 숙인 채로 물건을 들면 허리를 다쳐요. 허리는 꼿꼿이 펴고 무릎을 굽혀서 물건을 들어야 해요.” 최종일 선생님(31)이 1학년 2반 학생 8명에게 무거운 물건을 드는 방법을 설명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서원이가 택배 상자를 드는 시늉을 하더니 “힘들어요”라며 포기한다. 다른 학생들은 자꾸만 허리를 숙여 물건을 들려 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무릎을 굽혀 들어올린 지호가 작업반장이 돼 노란 ‘완장’을 찼다.
한성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담임인 정경진 선생님(33)은 “한성이는 너무 힘들고 뜻대로 안되면 소리를 지른다”며 한성이를 쉬게 했다. 몸을 가누길 힘들어하던 인호는 끝까지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결국 택배 상자를 옮겼다. 인호는 신이 나서 선생님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몸집이 작은 인호의 전공과목은 바리스타다. 정 선생님은 “인호는 근력이 없어 힘들어하지만 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지가 있고 칭찬을 받으면 뛸 듯이 좋아한다”며 “한성이와 인호는 둘 다 자폐 증상이 있지만 같은 자폐아라 해도 아이들마다 특성이 다르다”고 귀띔했다.
이 반에는 담임 선생님 외에도 사회복무요원이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다. 증상이 심한 학생들 옆에는 별도로 활동보조인이 항상 따라다닌다. 식사시간에 밥을 먹여주고, 흘러내리는 음식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준다. 화장실 갈 때도 늘 함께하면서 용변 보는 것을 돕는다.
신석훈씨(48)는 인호를 맡고 있는 활동보조인이자, 밀알학교에 중학생 아들을 보내는 학부모다. 신씨는 “지적장애 아이들은 사회성이 있어서 낯선 사람에 대한 겁이 별로 없지만, 자폐가 있는 아이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흥분하고 겁을 먹는다”면서 “인호와도 서로 친해지기까지 2개월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인호는 자신의 턱을 때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신씨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씨는 아들이 자해를 할 때마다 권투 헤드기어를 씌워 다치지 않게 하고 자해를 줄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호 부모님과 상의해서, 인호가 수업시간에 턱을 치며 자해를 하면 헤드기어를 씌워줬다. 그 덕분에 인호의 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치약과 칫솔을 포장하는 수업도 했다. 지훈이가 칫솔통에 칫솔을 넣다가 코를 후볐다. 선생님이 조용히 타일렀다. “작업 중에 코를 파지는 마세요. 코가 묻으면 그 칫솔을 누가 쓰겠어요.” 학생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이 학생들은 전공과를 졸업하면 지역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카페나 보호작업장, 사회적기업 등에 취업한다. 그곳에서 바리스타가 되기도 하고, 포장 일을 하기도 한다. 예술 계통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옆반 선영이(가명)와 피아노를 잘 치는 민정이(가명)가 그런 케이스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주목’
전공과 학생들의 면접 체험시간. 학생들이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면접관을 맡은 선생님이 아저씨처럼 덩치가 큰 지훈이에게 병뚜껑과 휴대용칼, 감자깎이칼 그림을 보여주며 “병뚜껑을 따는 데 사용하는 도구는 어떤 걸까요”라고 물었다. 지훈이가 휴대용칼을 골랐다가 다시 병따개를 가리켰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지훈이가 ‘계산대’를 가리켰다. “지훈이는 인지능력이 뛰어난 편이구나.” 선생님에게서 칭찬을 받자 지훈이가 신이 났다.
쉬는 시간, 옆반 여학생이 교실을 기웃거렸다. “선정아, 얼른 줄을 서야지.” 옆반 선생님과 자원봉사자가 뛰어와 선정이를 데리고 간다. 1학년 1반 선정이는 2반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말은 못 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지만, 누가 봐도 좋아하는 티가 난다. 사회복무요원은 당혹스러워하며 애써 피하는 눈치다. 신씨는 “아이들이 이성에 눈뜨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거나 신체접촉이라도 있을까 항상 걱정스럽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아 부모들은 성교육 강사 코스를 스스로 수강하기도 한다. 신씨는 6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성교육 강사 수업을 들었다. 신씨는 “아이들이 자위를 할 때는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하고, 위생처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또 누군가 몸을 만지려고 할 때는 절대 안된다고 말하게 한다”고 말했다.
지체장애학교인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재활학교의 고등학교 2학년인 김균민군(17)은 뇌병변 장애로 하지가 마비됐다. 왼손은 잘 쓰지 못하고 오른손만 겨우 움직인다. 말을 하지 못해 대화를 할 때도 보조기기가 필요하다. 지난 8일 재활학교에서 만난 균민이는 오른손 검지를 떨면서 태블릿PC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입력했다. ‘음성’버튼을 누르자 태블릿PC에서 “김균민입니다”라는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균민이는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블로그에는 자작시들을 모아놨다. 직접 쓴 시를 소개해달라고 하니 태블릿PC에 시 하나를 띄웠다. ‘주목’이란 시다.
‘압박이 내 심장을/ 조여온다/ 어떻게 하면/ 죽음보다 더 두려운/ 주목이라는 병적인/ 압박감을/ 없앨 수 있을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고 있지만/ 그 웃음에 감춰진/ 마음의 오한은/ 가시질 않는다.’ 이런 시를 쓴 이유를 묻자 균민이는 “길을 가는데 모르는 어르신이 저를 쳐다보면서 ‘아이고 딱한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균민이는 요즘 전자책으로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균민이가 다니는 재활학교 고등학교의 2학년 수학시간. 같은 반이지만 학습 진도는 모두 다르다. 균민이와 진호는 일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을 배운다. 사회복무요원 박정훈씨(21)가 문제풀이를 도왔다. 그 사이 담임 선생님은 다른 학생에게 블록을 이용해 숫자를 가르쳤다. 사회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동용 교재로 수학을 배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은 6명인데 교사와 사회봉사자, 사회복무요원 등 7명이 붙었다.
전교생 3분의 1이 ‘희귀병’
유치원 아이들은 이날 녹색, 노란색, 분홍색 등 색깔을 배웠다. 선생님이 색종이를 보여주니 여섯 살 선이는 “선이가 좋아하는 색깔이에요”라며 좋아했다. 유치반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아이는 선이뿐이다. 심장수술, 인공와우수술 등 여러 차례 수술을 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선이도 선천성 기형 탓에 가슴에 과중한 압박이 가해지면 호흡이 곤란해진다. 사지가 뒤틀릴 때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온몸에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
지난가을 선생님들은 아이들 아빠들에게 “아이와 함께 예쁘게 물든 가을 나무를 보러가세요”라는 숙제를 내줬다. 아빠들이 제출한 숙제가 유치반 교실 밖에 전시돼 있었다. 한 아빠는 “서대문 안산 둘레길을 다녀왔습니다.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보며 아이가 이쁘다고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은행잎과 단풍잎이 물드는 이유를 묻기도 하고 나뭇잎 비를 맞아보기도 하며 즐거워했습니다”라고 썼다.
이 학교는 원래 소아마비 아동들의 재활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학교였다. 1980년대부터 뇌성마비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교사들은 “최근에는 미숙아들이 늘면서 중증·중복 장애를 겪는 아이들의 비율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수업 중간에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기도 한다. 전교생이 90여명인 학교에 모야모야병, 엔젤만 증후군, 크루즌 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등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는 학생들이 36명에 달한다.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없어서 위로 연결되는 ‘위루관’을 뚫거나, 호흡 곤란으로 목에 관을 연결한 학생도 있다. 장애로 학교에 출석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교사가 일주일에 두 번씩 집이나 병원에 찾아가 수업을 한다. 이런 순회교육을 받는 아이가 현재 4명이다. 학교 복도에는 심폐소생에 쓰이는 심장충격기가 설치돼 있었다. 학교 버스에도 산소통이 비치돼 있다.
점심시간이지만 학교 식당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선생님과 자원봉사자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와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어른 한 명이 학생 한 명을 맡아 식사를 돕는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는 한 학생이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이 엄마가 액체화된 음식물을 커다란 주사기에 넣어 위루관에 넣어줬다. 위루관에 음식물을 넣어주거나, 목에 구멍을 뚫은 아이들의 가래를 빼내주는 일은 전문적인 활동보조인이나 학부모가 대신한다.
중학교 교실에서 만난 한 학생은 식단이 달랐다. 토마토와 호두, 계란을 먹고 있었다. 케톤식이라고 부르는 이 식단은 당분을 제한하고 단백질도 필요한 양만큼만 공급한다. 열량의 상당부분은 지방을 통해 얻는다. 뇌세포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 않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해 간질 경련을 줄이는 것이다.
이날 오후 재활학교 강당에서는 연극이 상영됐다. 밖에서는 연극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마련한 행사다. 주예경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극, 경험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내년 3월에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을 구경할 계획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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