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산 중학생 집단폭행 사건,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등으로 청소년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던 데 따른 조치지만, 처벌을 강화한다고 폭력이 예방되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나온다.
22일 정부는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학교 안팎 청소년폭력 예방대책’을 확정해 공개했다. 소년사법체계를 개편해 처벌대상을 늘리고, 강력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우선 정부는 형사미성년자 기준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한 살 낮추는 방향의 형법 개정에 힘쓰기로 했다.
현행 형법과 소년법에 따르면 만 14세 미만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보호관찰 등 보호처분으로 대신하며 만 10세 미만은 보호처분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형법이 개정되면 만 13세 청소년도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미 국회에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추는 형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는 만큼 정부는 따로 개정안을 내지는 않고 국회 계류된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살인·강도·강간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은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소년범의 경우 형사법원 판사가 가정법원 소년부 판사에게 사건을 이송해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는데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소년부 송치를 제한하도록 법률을 개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소년범 처벌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청소년 범죄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다. 김 부총리는 이날 “청소년 폭력은 교화와 선도가 중요하지만 범죄 수준의 폭력행위는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소년사법체계도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법상 형사미성년자 연령이 정해진 1953년과 지금의 청소년 폭력 실태가 많이 달라졌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다. 초등학생의 형사책임은 면제하더라도 중학생이 되는 13세부터는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 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9월 부산에서 발생한 중학생 집단폭행 사건의 가해자 중에 만 13세인 형사미성년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소년범의 형사처벌 가능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폭발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소년범 처벌이 강화되면 범죄 수준의 폭력행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처벌 강화와 청소년 범죄 예방효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하지도 않고 여론에 떠밀려 엄벌주의를 택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몇몇 잔혹한 사건들이 알려지면서 10대 초반 청소년이 저지른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졌지만, 실제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이와 다르다. 법무연수원의 2016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5년 범죄를 저지른 10~13세 촉법소년은 45명으로 전체 소년범 5만6962명 가운데 0.1%에 불과하다. 살인·강도·성폭력·방화 등을 저지른 강력범죄자 중 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8.8%에서 2011년 13.8%까지 올랐다가 다시 하락하기 시작해 2015년 8.5%까지 떨어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날 사후브리핑에서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 이유에 대해 “소년범의 연령이 저연령화되고 있으며 신체적·정신적 성숙도가 향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췄을 때 범죄예방 효과가 얼마나 큰지 검토했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자료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경래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소년의 신체발달이 정신적 성숙을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요즘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는 더 미성숙하다고도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며 “여러 통계를 살필 때 소년법의 보호와 교화 기능을 약화시키고 엄벌주의에 포섭될 만큼 소년 범죄가 심각하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일환으로 학교폭력 사건 처리 개선책도 마련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경미한 학교폭력 사건이라도 반드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처리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단순·경미한 사안일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하면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폭력에 지나치게 엄정하게만 대처하다 보니 학교폭력 관련 재심·소송이 증가하는 등 현장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심해진 데 따른 조치다. 다만 학교장이 사건을 은폐하지 못하도록 자체해결 후에도 반드시 교육청 등에 보고하도록 했다. 학폭위 학부모위원 비중을 현재 절반에서 3분의 1수준으로 줄이고 그 자리를 외부전문가로 채우는 방안도 마련된다. 현재 시·도 지역위원회와 학생징계조정위원회로 이원화된 학교폭력 사건 재심기구도 일원화한다.
학교폭력 가해자 조치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내년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시도교육청, 교원단체 등과 협의해 개선안을 만들 계획이다. 이날 서울시교육청은 “아무리 작은 문제더라도 학교폭력으로 조치를 받은 경우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하는 현행 제도 때문에 재심청구와 소송이 증가해 학교가 법정 분쟁의 장이 되고 있다”며 경미한 사안에 해당하는 1~3호 처분을 받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은 학생부에 기록하지 않도록 관련 시행규칙을 개정해달라고 교육부에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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