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실’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폐기 위기에 빠졌다가 다시 되살아났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키면서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2일 올라온 유 전 장관의 청와대 청원에는 13일 오후까지 4만여명이 동의를 표시했다. 다음달 11일까지 20만명 이상이 동의를 하면 청와대와 정부는 공식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유 전 장관은 1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초등교실을 활용한 공공보육시설 확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취학 전 영유아를 가진 젊은 부모들은 공공보육시설 확충을 간절하게 바란다”며 “그런데 늘어난 국가부채와 낮아진 경제성장률로 인해 재정 여력이 소진된 탓에 정부는 짧은 시간에 공공보육시설을 많이 짓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지으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 저는 학생 수 감소에 따라 생기는 초등학교의 여유 공간 일부를, 다시 말해서 지금 특활공간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교실의 일부를 공공보육시설로 활용할 것을 청원한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글 말미에 “중앙정부의 행정을 해본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니 (청와대나 총리실에 건내기보다는)공개 청원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러 부처가 합의하고 협력해야 하는 일은 한 부처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비해 진척이 더디기 마련이어서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간 의견 조율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시민들이 여론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달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계가 강하게 반발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법사위는 이 법안을 다시 법사위 소위원회로 내려보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새로 지으려면 한 곳당 평균 20억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서울을 비롯한 몇몇 지자체들은 민간과 가정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으나 시설을 고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간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학교 교실을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개정안은 당장 어린이집 시설을 새로 짓기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든다면 초등학교의 남는 교실을 지자체가 어린이집으로 용도변경할 수 있게 했다.
서울시교육청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등은 지난달 28일 법안이 통과되면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달 30일에는 전국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도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학교 안 어린이집의 보건·안전 관리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의견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유시민 전 장관의 청원 이후 여론은 ‘초등학교 교실 활용’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개정안은 법사위 제2소위에서 의결이 되면 다시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로 갈 수 있다. 현재 분위기로 봐서 법사위 통과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양측의 주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정부나 국회는 여론을 살필 수 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법안 통과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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