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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6만명…교육기관이 가장 더뎌

ㆍ노동부 발표 ‘올해 성적’

<b>“우리도 직접고용 원한다”</b>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직접고용 대상에서 빠진 항행시설관리·시스템안전관리 업무 등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8일 공항 출국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처사”라며 공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도 직접고용 원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직접고용 대상에서 빠진 항행시설관리·시스템안전관리 업무 등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8일 공항 출국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처사”라며 공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중간 성적표가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28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6만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결정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정책에 착수한 지 7개월 만에 2020년까지의 전체 목표치의 3분의 1을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바꾸는 큰 틀이 ‘무기계약직화·자회사 고용’ 쪽으로 잡히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가이드라인을 놓고 벌어진 현장의 혼선,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해소도 숙제로 떠올랐다.

이날 노동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6만1708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기간제는 454개 기관에서 3만7259명, 파견·용역은 140개 기관에서 2만4449명이 정규직이 됐다. 중앙행정기관은 1만3752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올해 목표인 1만1835명을 넘겼다. 전날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가 청소·시설관리·특수경비 등 용역노동자 2435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한 것이 컸다. 공공기관은 올해 목표치의 92.1%, 지자체는 80.1%, 지방공기업은 66.4%를 달성했다.

■ 걸음 느린 교육기관들

공공부문 비정규직들 중 상당수가 학교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교육기관은 전환 속도가 가장 더뎠다. 잠정 대상자 1만599명 중 23%인 2438명만 정규직이 됐다.

진도가 뒤처진 것은 현장의 비정규직들이 하는 일이 워낙 다양해서다. 조리사, 돌봄전담사, 행정실무사, 방과후강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어 교육청 전환심의위원회에서 노사의 의견을 좁히기 어려웠다. 지난 4일 대구교육청은 4500명 중 900명만 정규직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자체 심의위원회가 ‘전환 제외’로 빼는 비율도 유독 높다.


전체적으로 올해까지 정규직으로 바꾸기로 한 7만4000명 중 83.3%가 고용안정을 얻게 됐다. 2020년까지의 목표인 20만5000명의 30.1%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화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별도직군 신설, 무기계약직화, 자회사 설립’으로 요약된다.

노동부가 이날 공개한 표준인사관리규정에는 새로 정규직이 된 노동자에게 “직종별 특성을 반영한 임금체계를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정규직들의 호봉제가 아니라 업무평가와 난이도에 따른 직무급제에 가깝다. 정부청사관리본부는 이번에 정규직(무기계약직)이 된 이들에게 직무급제를 도입했다. 기존 정규직은 일한 햇수만큼 임금이 오른다. 하지만 새로 정규직이 된 이들은 임금상승률이 낮을 것이기 때문에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게 뻔하다. 그래서 노동계는 무기계약직을 ‘진짜 정규직’이 아닌 ‘중규직’이라 부른다.

■ 자회사, 또 다른 간접고용 될라

파견·용역 노동자들은 직접고용보다 자회사 고용이 일반화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가 모범 사례로 꼽은 여수광양항만공사는 경비용역노동자 102명을 자회사에서 고용하게 했다.

지난 26일 극적으로 노사 합의를 한 인천국제공항공사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은 보안방재 등 3000명만 직접고용하고 7000명은 독립법인 두 개를 만들어 흡수하기로 했다. 자회사는 임금이나 처우, 근무규정을 본사와 다르게 운영할 수 있다. 본사와의 차별을 그대로 둔 ‘또 다른 간접고용’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나온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가 합의문에 “별도 회사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고용안정 수준이 공사 직접고용 노동자보다 낮지 않도록 한다”는 조항을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노동부는 아직 직접고용한 규모와 자회사 고용 규모가 얼마나 될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자회사 방식이 가능한 곳은 공공기관·지방공기업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철도·항만 등 덩치가 큰 사업장 위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공기업이나 지자체도 공단 같은 형태로 ‘고용의 외부화’를 그대로 두면서 열악한 근로조건을 강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중앙컨설팅팀에 참여했던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기타공공기관 같은 특수법인 형태가 아니라 일반 상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자회사는 기관장의 재량이나 정책에 따라 구조조정 수단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7개월 남짓한 정규직화 과정에서 정부엔 여러 숙제가 던져졌다. 우선 가이드라인에 빈틈이 많았다. 정부가 잣대로 제시한 ‘생명안전업무’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탓에 여러 곳에서 노사 간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인천공항처럼 길게는 10년 넘게 일해온 이들에게 ‘경쟁채용’을 제시한 곳도 있었다. 노동부가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에 한해서 경쟁채용을 허용한다”고 한 것이, 고용을 피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변질된 것이다.

이성기 노동부 차관은 “아직 갈 길이 먼 만큼 내년에도 노사정이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내년 상반기에 나머지 3만5000여명이 정규직이 되면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들의 전환작업은 끝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중 남은 8만여명은 용역업체 계약기간 등을 고려해 2020년까지 정규직으로 바꾼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현황 살펴보니...‘기간제 계약직 100%’인 곳도


‘노동친화’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팔 걷어부치고 나선 것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 공공부문에서 시작해 민간으로 확장시켜나가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문제에 눈을 돌린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해서다. 

28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853개 공공기관 고용형태별 인력현황’을 보면 공공기관조차도 정규직 아닌 이들이 노동에 기대어 업무를 해온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달 기준으로 중앙행정기관, 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국공립교육기관 등 전체 853개 기관들 중에 비정규직 비율이 70%가 넘는 곳이 23곳이었다. 80%가 넘는 기관도 11개에 달했다. 심지어 정규직이 단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었다.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정규직이 1명도 없었다. 성매매·성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을 주로 하는데, 82명 전원이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한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잡월드는 389명 가운데 정규직이 46명(11.8%) 뿐이다. 나머지 86.4%는 모두 용역 직원이다.

궤도 공사와 철도 전기설비 유지·관리같은 업무를 하는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테크도 기간제 계약직 직원 비율이 93%에 달했다. 전체 직원 673명 중에 정규직은 43명 뿐이었다. 코레일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일부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만들고 ‘민영화’에 앞장서면서 경영 효율화를 내세웠다. 

새 정부가 들어서 정규직화를 추진한 이후에도 코레일 측은 지난 10월 자회사를 포함한 전체 ‘용역노동자’ 9187명 중 겨우 15% 정도만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놔 노조의 반발을 샀다.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테크, 코레일유통, 코레일로지스 직원 2500여명은 노동부가 발표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전환 예외사유’에 해당된다며 아예 제외했다. 민간 위탁업체에 소속된 5400여 명도 전환 대상에서 뺐다. 심지어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힌 1337명도 호봉 없이 단일직급으로 된 직군을 따로 만들겠다고 했다.

공공기관들이 많이 고용하고 있는 무기계약직은 속칭 ‘중규직’이라고 불린다. 정규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규직들과 처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용안정은 어느 정도 보장받지만 임금과 처우는 계약직과 비슷하다. 공공기관들 중 직원 절반 이상이 무기계약직인 기관은 19곳이었다. 역시 코레일의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는 매표 창구 직원 등을 고용하고 있는데, 전체 직원 1624명 가운데 정규직 비율이 57.3%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51.7%를 차지하는 무기계약직을 빼고 나면 실제로는 정규직 비율이 5.6%에 그친다. 우체국시설관리단은 직원 2508명 중 88.9%가 정규직으로 돼 있으나 그 대부분인 2180명이 무기계약직이다. 이들을 빼면 정규직은 49명으로 2.0%에 불과하다. 지방공기업인 여수시도시공사도 전체 직원 307명 중 무기계약직이 257명으로 83.75%이고 정규직은 47명(15.3%) 뿐이다.

노동부는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흡수하는 것뿐 아니라, 무기계약직이라는 용어도 ‘공무직’으로 바꾸기로 했다. 고용형태에 따라 마치 굳어진 계급처럼 차별이 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무기계약직만 양산한다면 말 그대로 ‘이름만 바꾼’ 꼴이 될 수 있다. 김병욱 의원은 “정규직 비율이 현저히 낮은 기관들은 고용불안 때문에 공적 업무의 질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면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자칫 무기계약직만 늘리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