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범 기자 2018.1.2
인천공항 활주로에 여객기가 들어서면 객실 청소노동자들의 마음은 급해진다. 30분 안에 널브러진 담요들과 시트,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 오물통을 비우고 진공청소까지 끝내야 한다. ‘캐빈’ 업무라 불리는 이 작업을 대한항공은 ‘하청의 하청’을 준다. 이 노동자들이 세밑부터 일손을 놓고 있다. 연장근무가 월 60시간에 달할 정도로 고된 일을 하는데 ‘최저임금만이라도 제대로 달라’는 요구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에 소속된 객실 청소 노동자 220여명은 지난해 12월 30일 파업에 들어갔다. 대한항공 여객기를 청소하지만 이들은 대한항공 직원이 아니다. ‘(주)한국공항’에서 객실청소를 도급받은 아웃소싱업체 ‘이케이맨파워’ 소속이다. 한국공항은 모회사인 대한항공에서 일감을 따온 뒤 다시 20여곳 업체에 객실청소·수하물 운반·장비운전같은 외주를 준다. 모회사에서 자회사, 하청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다.
파업 중인 대한항공 비행기 청소노동자들이 2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한 한국공항과 하청업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의 노동으로 이익을 얻는 쪽과 근로조건을 책임질 쪽이 분리돼 있다. 책임질 필요 없이 기업들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구조이니 사람은 적고 일은 많아진다. 노동자 한 사람이 하루에 치워야 하는 비행기는 20여대, 작업시간이 길어지면 원청에서 페널티를 받는다. 한 조합원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잠시 동안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다”며 “작업시간은 오로지 비행기 스케쥴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받는 돈도 적다. 한 직원의 명세서를 보면 기본급은 2014년 108만8890원, 2017년 135만3000원이었다. 그 해 최저임금에 맞춘 액수다. 하지만 정근수당같은 수당이 줄었기 때문에 실제 임금상승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근무일수의 80%만 채우면 나오는 정근수당마저도 여성 직원은 받지 못한다. 남성 직원과 같은 일을 하는데도 그렇다. 직원 380여명 중 여성이 80%에 달한다.
노조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성차별을 하는 것으로 본다. 지난해 4월 생긴 노조는 회사에 “여성 직원에게도 정근수당까지 포함한 체불임금과 각종 수당을 지급하고,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맞춰 기본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결렬됐다. 파업 찬반투표에서 95%가 찬성표를 던져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가까스로 뭉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조차 의미가 없어질 판이다. 원청인 한국공항은 파업 당일 “본사 관리인력과 도급업체 본사 직원들로 대체인력을 꾸려 항공기 운항에 지장에 없도록 하겠다”고 알렸다. 2일 노조는 “대체인력의 절반 가까이가 불법 인력”이라고 비판했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이케이맨파워는 파업 사흘 전과 파업 다음날까지 구인 사이트를 통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대거 모집한 뒤 회사 이름이 적힌 조끼를 입혀 청소업무에 투입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는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 수행을 위해 해당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원청인 한국공항도 객실 청소와 관련없는 다른 하청업체 직원들을 끌어다 청소업무에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인력을 대신 투입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노조법의 맹점이다. 지난해 2월 우원식 의원 등은 “하청업체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한국공항은 하청업체의 임금협상과 파업에 대해 “별개의 회사”라며 선을 그었다. 한국공항 관계자는 “(운항에) 피해를 줄 수 없으니 우리 관리직들 위주로 지원을 하고 있다”라며 “하청업체의 대체인력 구성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조는 이날 이케이맨파워를 노조법 위반 혐의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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