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원 기자 2017.12.31
친아버지 손에 주검마저 버려진 다섯 살 고준희양은 정부나 지자체, 민간기구 어느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준희양은 어린이집 교사가 마지막으로 목격하고 한 달쯤 뒤인 지난 4월26일 숨졌고, 다음날 야산에 묻혔다. 일곱 달 뒤 아버지의 동거녀가 거짓 실종신고를 할 때까지 아이가 사라진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부가 아동학대 대책들을 줄줄이 내놨지만 아직까지 준희양처럼 초등학교 입학 전인 유아들은 사회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다.
2015년 인천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던 11세 아이가 맨발로 탈출한 사건, 2016년 평택 아동학대 암매장 사건 등이 일어나자 정부는 2017년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일찍 발견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취학 예정인 아이가 입학일로부터 이틀 이내에 입학하지 않거나 이틀 이상 학교에 무단결석하면 학교장이 보호자에게 경고하고, 결석이 계속되면 읍·면·동과 교육청에 통보하게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못된 6세 아래 아이들에겐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아이가 이유 없이 이틀 이상 결석하면 교직원이 가정방문을 하고, 소재와 안전이 확인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는 교육부 매뉴얼이 2016년 만들어졌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는 ‘매뉴얼’일 뿐이다. 게다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의무교육이 아니어서, 부모가 다른 사정을 핑계로 아이를 보내지 않아도 손쓸 방법이 없다. 준희양 부모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계획이라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영·유아 건강검진, 필수 예방접종 같은 기회들도 있지만 부모가 이를 방기한다 해도 제재할 방안은 없다. 2016년 통계를 보면 7차례의 영·유아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아동만 8만명에 이른다. 문제는 학대 피해가 가장 큰 대상이 미취학 연령의 어린아이들이라는 것이다. 2016년 18세 미만 아동학대 신고사례 중 0~5세 영·유아 피해자가 21.4%다. 의사표현이 어렵고 학대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영·유아 피해 비율이 더 높을 수 있다. 게다가 영·유아들은 자기방어가 불가능하고 사망이나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피해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취학 전 아동과 공공영역의 접점을 늘려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공적 안전망에 들어오도록 영·유아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강화해야 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최근 발간한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서 “예방접종, 건강검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영·유아 가정에 대해 상시적으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기록, 어린이집·유치원·학교 장기결석 여부 등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마련해 올해 3~4월쯤 본격 실시할 계획이다. 수도권에서 시범사업을 해보니 실제로 아동학대 사례가 여러 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과 인력 없이 시스템만 만드는 것으론 제2, 제3의 준희양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동학대 방지체계는 민간에 많은 부분이 맡겨져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회복지 공무원 대신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이 방문하면 조사를 거부하는 부모가 많다”며 “사회복지 공무원을 늘리기 위해 행정안전부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를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예산은 연간 180억원대에서 제자리걸음이며, 그나마도 범죄피해자기금과 복권기금 등에 의존해 안정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자식은 부모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뿌리 깊은 인식 자체를 고쳐야 한다. 정부는 2016년에야 ‘부모교육 강화’를 아동학대 종합대책에 포함시켰지만, 취약 가정을 찾아내 맞춤형 교육을 하는 대신 일반적이고 실효성 없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샀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가 아이와 관련된 것을 모두 결정하고 사회는 손쓸 수 없는 상황을 바꾸려면 아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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