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범 기자
문재인 정부가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전격 제안하면서 ‘사회적 대화’의 시동을 걸었다. 3자 사이에 쌓인 불신을 걷어내고 새로운 형태의 대화기구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경영계와 한국노총은 정부가 제안한 테이블에 둘러앉기로 했고, 민주노총도 정부의 ‘열린 대화제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틀을 짜기 위한 논의가 이제 시작되는 것이어서, 새로운 대화기구의 형식과 의제들이 정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1일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4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위원장, 경총과 대한상의 회장, 고용노동부 장관, 노사정위 위원장 6명이 함께 하는 노사정 대표자회의 개최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대응하려면 노동시장의 혁신뿐만 아니라 포용적 노사관계의 발전,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요구된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와 청년 취업난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대한상의와 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노동 정책의 변화로 우려가 많다. 경제주체 간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제안을 환영했다. 한국노총도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본격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관건은 민주노총이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다 재계와 한국노총도 화답한만큼, 민주노총이 정부측 제안을 아예 외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0월 청와대 초청만찬에 불참했다가 안팎에서 “정부가 내민 손을 걷어찼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연말 선출된 김명환 신임 위원장도 당선되자마자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다”며 정부에 사회적 대화를 얘기했다.
문 위원장이 이번 회견에서 대표자회의라는 형식을 제안한 것도 기존 노사정위 체제를 불신하는 민주노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문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오늘 제안(대표자회의)은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며 “대표자회의에서 의견을 모아주신다면 대화기구의 구성, 의제, 운영방식, 명칭까지 포함해 어떤 내용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모든 것을 ‘열어두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그간의 노사정위는 대타협이란 이름으로 비정규직 확대법, 정리해고제법 도입, 근로기준법 개악추진 등을 강요해온 기구에 불과했다”며 “노사정위를 고집하지 않고 대표자회의를 통해 그 어떤 개편도 수용하겠다는 것은 열린 자세로 평가한다”고 했다. 문 위원장이 제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내부적으로 적극적인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당장 24일 회의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내부 논의를 거쳐 “단순한 참가여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로 입장과 계획을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수정권 9년간 막혀있던 사회적 대화를 가동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다. ‘노동존중 사회’ 슬로건에 걸맞게 산적한 이슈들을 풀려면 노동계와 기업들, 제도개선의 열쇠를 쥔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만 한다. 문 대통령은 이미 이런 뜻을 수 차례 밝혀왔고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사정 대화를 복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형식을 열어두겠다고 했으니 민주노총으로서도 ‘명분 없이 노사정위에 복귀한다’는 부담을 피할 수 있게 됐지만, 고민거리는 아직 많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에도 비정규직법, 복수노조 허용같은 안건을 놓고 양대 노총과 사용자단체 등 6자 대표자회의가 열렸으나 노동계를 들러리로 세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어떻게 각인시키고 민주노총의 불신을 씻어낼 것인지에 대화의 미래가 달려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 등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새로운 기구에서 누가 어떻게 대변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변할 기구”를 주문함에 따라, 대표자회의에서는 비정규직·여성·청년 등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나머지 90%의 노동자들까지 끌어들이는 형태의 대화틀을 논의할 것으로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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