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경 기자
제빵기사 5300여명의 직접고용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던 파리바게뜨와 노조가 ‘자회사 고용’이라는 틀에 합의했다. 지난해 9월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과 직접고용 시정지시 이후 넉 달여 만이다. 제빵기사 고용안정 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해법 시금석으로 봤던 한국노총·민주노총과 노동부가 모두 나서 이뤄낸 의미 있는 합의다. 하지만 회사가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피해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자회사에 고용, 임금은 본사 직원과 똑같이
파리바게뜨 본사와 민주노총·한국노총 소속 제빵기사 노조는 11일 오후 5시 여의도 CCMM빌딩에서 자회사 고용을 뼈대로 하는 ‘노사 상생 협약식’을 가졌다. 노사는 이날 오전 가맹주협의회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정의당, 참여연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전국 5300여명의 제빵·카페기사 고용방안을 놓고 막판 협상을 했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파리바게뜨 노·사 상생 협약식에서 이재광 가맹점주협의회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신환섭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노조위원장, 권인태 파리크라상 대표이사, 문현군 한국노총 중부지역 공공산업노조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이남신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합의안에 따르면 현재 협력업체 소속인 제빵기사와 카페기사들은 새로 설립될 자회사 소속으로 바뀐다. 복리후생은 즉시 정규직과 같은 수준으로 적용받는다. 급여는 3년에 걸쳐 올리면서 본사 정규직과 같게 만들기로 했다. 불법파견 판정 때 함께 지적된 체불임금도 조속히 지급하기로 했다. 노조는 정규직 지위확인 소송 등을 취하하고, 소송비용은 사측이 내기로 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의 권인태 대표이사는 이날 서명식에서 “가맹점 제조기사들을 비롯해 가맹점주와 협력사 등 여러 관계자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로써 파리바게뜨 사태는 일단락됐고,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와 시민사회의 중재를 거쳐 5300여명이라는 대규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노사 합의로 풀어낸 전례를 만들게 됐다. 중재역할을 했던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민간 대기업에서 불법파견 문제가 노사 합의로 개선된 것은 초유의 일”이라면서 “특히 프랜차이즈 제빵업계의 노사 외에 이해관계자인 가맹점주까지 협의체에 함께했다는 점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이날 합의문에는 노사와 가맹점주협의회가 ‘처우개선 및 근로환경개선을 위한 노사간담회 및 협의체’를 함께 운영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소장은 “제빵기사들의 처우 뿐 아니라 가맹점주들이 겪는 문제도 이 협의체서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버티던 회사, 당국 압박에 물러서
당초 회사 측은 민주노총 소속 제빵기사 노조들의 직접고용 요구와 노동부 시정지시에 맞서 법원에 가처분신청까지 내면서 버텼으나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해피파트너즈’라는 제3의 회사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불법파견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것이 맞지만 노동자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힐 경우 직접고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파리바게뜨는 제빵기사들을 개별 접촉해 직접고용 반대 동의서를 받아냈고 지난달 1일 해피파트너즈를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협력업체들이 중심이 된 합작회사인 해피파트너즈 소속을 희망한 이들이 한국노총 소속 노조를 만들고 나서면서 이 사건은 양대 노총의 갈등으로까지 비화될 판이었다.
그러나 노동부가 파견법을 원칙대로 적용해 과태료 부과와 형사입건 절차를 밟으면서 파리바게뜨의 기류도 달라졌다. 지난 5일 세번째 노사간담회에서 파리바게뜨는 해피파트너즈를 본사·가맹점주·협력업체 3자 합작회사가 아니라 본사의 자회사로 만드는 방안을 수용했다. 본사가 지분의 51%를, 그리고 가맹점주들이 49%를 가진 자회사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해피파트너즈라는 상호도 바꾸기로 했다. 한국노총은 이 방안을 수용했지만 민주노총은 불법파견에 관여했던 협력업체 대표를 자회사의 임원에서 완전히 배제할 것을 요구하면서 막판 진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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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부담과 ‘프랜차이즈 업계의 특수성’을 들며 고용을 거부하던 회사는 브랜드 이미지 추락 등 타격이 심해지자 결국 물러섰다. 11일 마지막 협상에서 파리바게뜨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액과 소송 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본사에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162억7000만원의 과태료를 1차로 부과한다고 사전 통지했다. 11일은 과태료 납부 시한이었다. 하지만 노사가 합의함에 따라 노동부는 이를 존중해 과태료 부과를 철회하기로 했다.
‘약속’ 얼마나 지키느냐가 관건
‘파리바게뜨 합의’는 부당한 고용관행에 맞선 제빵기사들의 문제제기, ‘법대로’ 하겠다는 노동부의 적극적인 행정조치, 결국 타협안을 제시한 회사의 전향적인 태도가 맞물려 이뤄낸 것이었다. 물밑에서 양대 노총의 이견을 조율하고, 또다른 ‘을’인 가맹점주를 협의 테이블로 이끌어낸 정당·시민단체의 역할도 있었다. 힘겨운 협상 끝에 일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 고용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고, 요구했던 체불임금 지급과 임금 인상·처우 개선도 얻어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자회사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될지, 협력업체들을 배제한다는 약속이 지켜질지가 문제다. 현재 협력업체 관리자들은 자회사로 전환될 해피파트너즈가 흡수했지만 협력업체 대표들에 대해선 구체적인 타협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저희가 풀어야할 부분”이라고만 말했다.
또한 결과적으로 파리바게뜨는 당연히 해야 할 고용을 피한 채 단 한 명도 본사에 고용하지 않으면서 수백억원의 과태료를 한 푼도 물지 않게 됐다. 자칫 자회사 설립으로 직접고용을 피해가는 우회로를 정부가 공인해주는 선례가 될 수도 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으로 ‘자회사 고용’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제빵기사들이 새 회사에서 고용안정, 처우, 노조할 권리 등을 얼마나 보호받는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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