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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돈 벌기

기업들 '상여금 쪼개기' 정부가 인정? 최저임금위 개선안 놓고 노사 '평행선'

올해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올랐지만 중소기업 직원 ㄱ씨의 월급은 ‘제자리걸음’에 가깝다. 회사가 매년 300%를 주던 정기상여금을 100%로 줄이고 나머지는 기본급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정기상여금으로 준 돈은 넣지 않지만 기본급은 들어간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됐다는 핑계로 이런 ‘상여금 편법’이 늘고 있다. 아예 다달이 상여금을 쪼개어 주고 최저임금에 넣는 쪽으로 정부마저 가닥을 잡을 태세를 보이자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사실상 ‘무력화’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최저임금의 범위를 늘려 상여금도 집어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금속노조 서울지부가 밝힌 최저임금 편법 적용 사례들


10일 최저임금위원회는 5차 제도개선위원회를 열어 지난해 12월 전문가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제도개선안에 대한 노사 단체들의 의견을 들었다. 앞서 TF는 정기상여금의 경우 최저임금 범위에 넣어야 한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내놨다. 이날 회의에서 이 방안을 놓고 노사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양대 노총은 “개악 권고안”이라는 입장을 다시금 확인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아무리 많이 올려도, 그동안 최저임금 밖에 있던 상여금까지 넣어서 계산하게 되면 실제로 일하는 이들이 받는 돈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고 노동계는 말한다. 반면 경영계는 “이마저도 부족하다”면서 월 단위 정기상여금뿐 아니라 연간 지급한 돈을 모두 평균 내서 최저임금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기상여금은 매달 주든 두세 달에 한번씩 주든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이 한 달을 기준으로 저소득층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연간 기본급의 몇백%를 주는’ 식의 상여금은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실제로는 돈을 더 주는데도 최저임금 위반이 되곤 한다”며 볼멘소리를 내왔다.대법원이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도 포함된다고 하면서 최저임금의 범위를 놓고 논쟁에 불이 붙었다. 정부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범위를 개편하는 등 제도개선을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최저임금위 전문가 TF는 석 달의 연구 끝에 “상여금도 한 달 단위로 준다면 최저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놨다. 최저임금제도의 수혜자들 대다수는 상여금 자체를 못 받는 이들이기 때문에 산입범위가 넓어져도 저임금 계층의 피해는 적다고 봤다. 실제로 2016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중 상여금을 받는 이들은 22.9%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상여금이 고갈될 때까지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며 노동계는 반발한다. 기업들은 고액연봉자도 최저임금 범위가 좁은 탓에 최저임금 소득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애초에 기본급이 지나치게 적고 상여금이 많게 해놓은 ‘가분수 임금’ 탓이라고 지적한다. 통상시급을 깎아 각종 수당의 기준액을 낮춰온 기업들 책임이라는 것이다.

쟁점은 또 있다. 2·3·6개월마다 주던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에 넣기 위해 한 달 단위로 바꾸려면 회사 취업규칙도 바꿔야 한다. 노동자의 실질소득을 동결시키거나 줄게 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될 수 있다. TF는 이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른 불이익 변경이 아님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노동계는 이것이 “초법적인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경우 노동자 과반이나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날 노사 의견을 들은 최저임금위는 전원회의를 거친 뒤 논의를 끝낼 예정이다. 이후 공은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청와대나 정부 모두 산입범위 개편에 대한 의지가 강해 어떤 식으로든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논란은 근로기준법을 바꾸기 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년회견]문 대통령 “최저임금 인상은 성장 기반...‘3만불 시대’ 삶의 질 누려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걸맞은 삶의 질을 국민이 실제로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자리의 질과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대화를 복원하고, “정부가 국민의 울타리와 우산이 되겠다”며 의료·보육·돌봄 등 복지분야의 과제들을 적극 추진해나가겠다고도 강조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 생중계를 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문 대통령은 10일 신년사에서 “일자리 격차를 해소하고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임금격차 해소,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같은 근본적 일자리 개혁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의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의지를 갖고 만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그동안 중단됐던 노사정대화 복원 노력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안에 노사정대표자회의 개최를 노동계에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저임금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가계소득을 높여 소득주도성장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질의응답에서도 “국내외의 전례를 보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일시적으로 일부 한계기업의 고용을 줄일 가능성은 있지만 정착되면 경제가 살아나며 일자리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며 “당장 취약계층 고용이 위협받을 소지가 있는데 청와대가 직접 점검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업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것이 상식과 정의”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 정책과 예산으로 더 꼼꼼하게 국민의 삶을 챙기겠다”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치매국가책임제, 아동수당 신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등 복지정책에도 힘을 실었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과 정시퇴근을 정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며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일상인 채로는 삶이 행복할 수 없다”고 반복해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육아의 부담을 국가가 함께 지겠다”며 “여성이 결혼,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자신의 삶과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정부 운영을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바꾸는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다음달 말까지 수립하겠다고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