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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비료공장 들어선 2001년부터 장점마을의 비극은 시작됐다

송윤경 기자 2018.1.3


전북 익산 함라면 장점마을은 인적이 드문 조용한 시골이다. 지난해 12월29일 오전 마을 한쪽의 천주교 공소(公所) 마당에서 주민들이 아궁이에 솥을 걸고 떡국을 끓이고 있었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가장 작은 단위의 예배당이다. 저마다 분주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2001년 비료공장이 들어서면서 불쾌한 악취와 연기가 자욱했다. 특히 밤이 되면 더욱 심했다. 몇년간 민원을 제기해도 지자체에선 묵묵부답이었다. 주민들은 비료공장에서 발암물질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공소 앞엔 ‘고통 속에 죽어가는 형제자매 구하자’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옆으로 길게 뻗은 모양새라 ‘장점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지역은 몇 해 전부터 ‘암 집단발병 마을’로 지목돼 언론을 탔다. 80명 남짓한 주민들 중 23명이 암으로 사망했거나 암 투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환경오염에 따른 피해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 마을에서 향후 1년간 주민건강영향조사를 하기로 했다. 이날은 건강영향조사에 대해 주민설명회를 하는 날이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설명회 한 시간쯤 앞서 익산시 담당자가 도착했다. 그는 기자의 명함을 유심히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한국 사람 3명 중 1명이 암으로 죽는 거 아시죠?” 장점마을의 암 발병률에 문제가 없다는 뜻인지 묻자 그가 덧붙였다. “주민들이 뭘 알아요. 정치인과 환경단체가 개입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건강영향조사가 착수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써달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알려진 사실만 놓고 보면 이렇다. 갑상샘암을 제외한 모든 암에서 이 마을의 발병률은 전북 전체 암 발병률의 2.33배다. 특히 피부암 발병률은 21.3배나 된다. 민관협의체가 2017년 진행한 기초조사에 따르면 마을 저수지 토양에서 벤조피렌을 비롯한 1·2급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상수도가 깔린 것은 2011년 즈음이었고, 그 전까지 주민들은 지하수를 마셨다. 그런데 수질이 음용해선 안되는 수준이었다.

주변 공장의 대기배출구에서는 법정기준치를 4.7배 초과한 니켈이 나왔다. 공장 내 집진시설에선 독성이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의 6000배라는 리신도 나왔다. 공장의 대기오염 방지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리신이 마을에 퍼졌을 수도 있다. 

지난달 29일 전북 익산 장점마을의 주민들이 천주교 공소에서 열린 건강영향조사 설명회에 참석해 연구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북 익산 장점마을의 주민들이 천주교 공소에서 열린 건강영향조사 설명회에 참석해 연구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설명회가 시작됐다. 주민의 절반인 40여명이 공소를 메웠다. 조사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마을 주변 공장의 오염물질 배출실태를 조사·평가하고, 주민 설문조사와 건강검진을 통해 암 발병과 환경오염의 연관성을 살피게 된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주민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하나둘 손을 들었다.

“저수지 물고기가 폐사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지자체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거예요. 이번엔 철저히 조사해서 정확한 발표를 해주세요.” 이웃들의 발언을 듣고 있던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혼잣말을 했다. “냄새가 말할 수 없어, 참말로….” 

장점마을 주민들과 익산시의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비극은 2001년 ㄱ농산이라는 비료공장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ㄱ농산은 피마자기름을 짜낸 찌꺼기인 피마자박, 담배를 만든 후 나오는 찌꺼기인 연초박을 잘게 부수고 가열해 비료를 만들어왔다. 공장 가동 후 마을에는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특히 밤이 되면 더했다. 악취가 심할수록 연기도 자욱했다. 주민 박모씨는 “밤에 공터에 나가면 내가 구름 위에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공장이 처음 가동될 때 동네에 사는 한 아이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숨을 쉬고 싶어요.” 

“회사 노력 눈물겹지 않습니까” 

주민들은 익산시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임형택 시의원에게서 그동안 주민들이 낸 민원과 당국의 답변을 담은 자료를 얻어볼 수 있었다. 그 자료를 보면 그간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저희 마을엔 지금 시체 썩는 냄새보다 더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고 있습니다.”(2001년 11월 이모씨) 그러자 ㄱ농산 관계자는 이렇게 답변했다. “심한 악취가 난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그동안 건식 집진기(대기오염물질 방지시설)만 설치되어 있었는데 세정 집진기를 설치해 배출가스를 정화시키고자 합니다. 영세한 저희 회사의 노력이 눈물겹지 않습니까?” 익산시 환경관리과의 답변은 이랬다. “악취 측정을 실시했으나 배출허용기준 이하로 적합하였음을 알려드리며….” 


한 달 후 이씨는 다시 민원을 제기했다. “글을 올리자 한 10일 동안은 냄새가 정말 안 나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또다시 악취가 풍기기 시작합니다.” 8년이 지난 후에도 민원은 반복된다. “연기가 어찌나 지독한지 두통이 생기고 구역질이 나고 농작물에 퍼런 이끼가 낍니다. 왜 담당자는 바로 오지 않는 겁니까.”(2009년 김모씨)
 

악취와 연기만이 아니었다. 장점마을은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지하수로 식수를 해결해왔는데, 비료공장이 들어선 후 지하수에서 기름이 둥둥 뜨기 시작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비료공장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저수지에서는 2009년 물고기가 집단폐사했다. 저수지와 가까운 밭에선 고추가 말라비틀어졌다. 참다 못한 이들은 2010년 트랙터로 공장 입구를 막는 시위를 벌였다. 공장은 멀쩡했고, 주민들은 업무방해죄로 벌금을 물었다. 

익산시는 공장이 가동된 2001년부터 14년간 이 공장에 단 한 건의 행정조치도 하지 않았다. 장점마을의 집단 암 발병이 부각된 후에야 뒤늦게 나섰다. 환경법에 따라 모든 공장은 대기오염물질과 폐수를 배출하기에 앞서 오염방지시설을 가동해야 한다. 심각한 악취와 연기, 지하수 오염, 저수지의 물고기 폐사 등을 볼 때 비료공장의 오염방지시설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됐다. 하지만 시 당국의 측정 결과에서 이 공장은 대기가스 배출기준을 충족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영세 공장들은 주민 신고가 들어와 지자체에서 조사를 나오게 되면 공장 가동률을 조정해 법망을 피해가곤 한다. 당국이 여러 차례 불시 점검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5년부터 본격적인 점검이 이뤄졌다. 그해부터 2016년과 2017년까지 이 공장이 일부 오염방지시설을 법에 따라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사실이 매년 적발됐다. 현재 공장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시 관계자는 “(ㄱ농산과 같은) 공장이 너무 많아 부족한 인력으로 일일이 다 점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한 집 걸러 암 환자 

설명회가 끝나자 주민들과 정부·지자체 공무원들이 공소 마당에서 함께 떡국을 먹었다. 손님들이 자리를 뜬 뒤 이원애 할머니(71)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향했다. 집 안은 썰렁했다. 할머니는 안방의 전기장판에만 의존해 겨울을 나고 있었다. 아들은 2004년 35세 이른 나이에 위암으로 죽었다. 4년 후 남편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2009년 식수로 쓴 지하수에선 기름이 둥둥 뜨고 냄새가 났다. 마을엔 악취가 진동했고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다.

2015~2017년 공장이 오염방지시설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다. 그동안 한 집 걸러 암 환자가 발생했다.

2018년 주민 20여명이 암 투병 중이거나 암으로 사망했다. 환경부는 이제야 주민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아들은 1년6개월 동안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던 것을 빼면 내내 마을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소화가 안된다며 고통스러워하다가 병원에서 급성위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세상을 떴다. 그 후 남편은 늘 깊은 한숨을 쉬었다. 누구와 싸움 한번 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남편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할머니는 남편을 회상하며 손짓을 했다. “냄새가 심할 때 우리 양반이 이랬어. ‘이리 와서 누워봐. 누우면 냄새가 덜 나.’” 

그때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비료공장에서 발암물질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민원을 내도 바뀌는 게 없으니 주민들에게 악취는 견뎌야 할 일상이 돼버렸다. 그러는 사이 마을은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암 환자가 사는 곳이 돼버렸다. 할머니 집에서 30m가량 떨어진 박모씨(52) 집에는 부모의 영정이 걸려 있었다. 박씨 어머니는 2013년, 아버지는 2014년 모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담배를 피우시냐’고 물었다. 박씨는 그때 비료공장에서 담배 찌꺼기로 비료를 만든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악취에는 진한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자꾸만 “지하수에서 안 나던 냄새가 난다”고 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지하수 펌프를 덮어버렸다.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도 시름시름 앓았지만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않은 채 어깨를 감싸쥐며 고통을 참았다고 한다. 

장점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다. 박씨는 “암으로 돌아가신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며 마을 주변 성당묘지로 안내했다. “여기는 ○○네 아들, 여기는 ○○네 부모님….” 박씨는 작은 묘지를 천천히 걸으며 이웃을 하나하나 짚어줬다. 해는 떨어지지 않았는데 비구름이 낮게 깔려 묘지는 어두웠다. 묘지를 지키는 고양이 한 마리가 박씨를 따라다녔다. 


건설폐기물 처리업체 28곳에 둘러싸인 곳…1500만톤 폐기물 옆에 살아

 

주민건강영향조사 시작되는 인천 사월마을 

○○환경, ○○산업, ○○자원…. 인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 주변에 늘어서 있는 공장들이다. 건설폐기물 처리업체만 28곳에 달한다. 마을 앞에서 수도권매립지 정문까지는 걸어서 5~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마을 앞 4차선 도로엔 매립지로 향하는 쓰레기 수송차량이 밤낮으로 오간다. 대형차량이 이동하면서 일으키는 먼지뿐 아니라 쓰레기 더미에서 날리는 오염물질에 늘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비료공장 들어선 2001년부터 ‘마을의 비극’은 시작됐다

사월마을 주민들은 “이곳은 주거지가 될 수 없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논밭이 많고 공기가 맑았던 이 마을이 오염에 멍들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수도권매립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이후 이 마을에 난립한 건설폐기물 업체들로부터 ‘쇳가루 바람’이 불었다. 마을에서 2㎞ 떨어진 곳에는 약 10년 전 생긴 ‘쓰레기산’도 두 개 있다. 사월마을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곳에 쌓여 있는 폐기물은 1500만t이다.

사월마을 주민은 약 150명인데 그중 심장병과 뇌질환 등 순환기계질환을 앓는 이가 32명, 호르몬 관련 내분비계질환자가 16명에 이른다. 주민들에 따르면 폐암과 호흡기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도 여럿이다. 국립환경과학원과 인천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017년 5월 이 마을 주변의 토양을 조사해보니 납은 최대 130.6㎎/㎏, 니켈은 최대 54.7㎎/㎏이 검출됐다. 전국 평균인 납 29.7㎎/㎏, 니켈 13.8㎎/㎏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미세먼지 농도는 PM10 69㎍/㎥, PM2.5 33㎍/㎥였다. 역시 연평균 환경기준인 PM10 50㎍/㎥, PM2.5 25㎍/㎥를 넘었다. 


지난해 폐기물 업체가 추가로 입주하려 하자, 참다못한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에 나섰다. 이후 구청에서 물청소를 하고 쓰레기산을 조금씩 치우기 시작했지만 극심한 분진과 쇳가루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책위 이교운 사무국장은 “도로 옆에 하루만 차를 세워놔도 유리창이 시커메질 정도”라고 말했다.

환경부 환경보건위원회는 장점마을과 함께 사월마을에 대해서도 환경오염으로 인한 주민건강영향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난해 인정했다. 사월마을의 주민건강영향조사는 이달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