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5 노도현 기자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하다는 판단에 따라 2018년 2월 말부로 폐교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28일 오후 사립학교인 서울 은평구 은혜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이사장 명의의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겨울방학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교장과 교사들도 이날 폐교 소식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사장은 A4 용지 한 장짜리 통신문에서 “수년간 지속된 학생 결원으로 인하여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왔다. 금년에도 신입생 지원자 수가 정원 60명 대비 절반에 그치는 등 개선될 전망이 없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서울에서 초등학교가 ‘학생이 모자란다’며 폐교를 신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 은혜초등학교. 사진 연합뉴스
초중등교육법 4조에 따라 학교를 폐교하려면 설립 때와 마찬가지로 교육감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은혜초는 가정통신문을 보낸 그날 서울서부교육지원청에 폐교 인가를 신청했다. 서부교육지원청은 은혜초가 학생들을 다른 학교로 나눠 보낼 계획이나 교직원 고용승계 대책 등을 갖추지 않았다며 신청을 반려했다.
이 학교는 1966년 개교했다. 학생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원 360명의 65.3%인 235명이다. 지난해 11월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까지 마쳤다. 폐교를 하려면 신입생과 재학생 학부모들이 전원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재단은 학생, 학부모들의 뜻도 묻지 않고 2월 말까지만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학부모들에게는 최근 수업료 환불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교사들에게도 2월 말일자로 모두 해고한다고 통보했다. 아이의 전학을 신청한 학부모는 현재 90여명으로 알려졌다. 폐교를 원치 않는 학부모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재단에 폐교 신청을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돌아온 답은 “2월28일까지 예정된 교육활동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뿐이었다.
올해 서울 초등학교 입학 대상자는 총 7만7252명으로 지난해보다 1615명 줄었다. 사립초 39곳 중 4곳이 정원 미달이다. 서울시교육청은 15일 “관내 사립초 39곳 전체의 재정현황 파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은혜초같은 사태가 다른 사립초로 번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나흘 전 ‘학생수 감소에 따른 사립초 배치여건 종합검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시교육청은 또 매일 직원을 은혜초에 보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측이 교원을 모두 해고하고 문을 닫아버리면 막을 방법이 없다. 사립학교법에 따라 운영되고 국가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은혜초가 폐교를 강행하면 고발까지 고려하겠다면서 “1월 말 개학하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립초등학교에 교육당국이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 자칫 정상적인 운영에 실패한 사학재단을 세금으로 구제해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답답한 건 아이들과 학부모들이다. 곽병석 학부모 비대위원장은 “교육청은 학교가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전학을 시켜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모두들 불안해한다. 자식 교육이 볼모가 돼 안타깝다”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없어서 덩그러니 앉아 있는 상황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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