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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남녀공학 전환’ 공론화···취업난 속 위기의식 커지는 여대들

2018.1.21 노도현 기자

성신여대가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하기로 했다. 저출산 탓에 전국의 대학 입학생 숫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 더해 여대 출신의 취업률이 떨어지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을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김호성 성신여대 총장(59)은 21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학령인구가 줄면서 대학 경쟁률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특히 여대는 수험생의 절반인 여학생 중에서만 뽑아야 한다”면서 입학 인원이 줄어든다는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친 지금이 남녀공학 전환을 고민해볼 때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는 데에 불이익이 있었던 과거에는 여성 교육기관이 필요했으나 지금은 교육에서의 남녀 차별이 없어졌는데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 여대를 고집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남녀공학이 대학의 미래 발전방향에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12년 8월 학위수여식을 마친 성신여대의 여학생들이 학사모를 던지고 있다 _ 경향신문 자료사진


성신여대는 이미 2010년 ‘성신대학교’로 교명을 바꾸려다 학생들 반대로 중단했다. 당시 학교 측은 학교명만 바꾸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공학으로 전환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학생들 반발에 부딪혔다. 지금도 학생들 사이에선 반대 여론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은 “교수와 교직원 사이에는 찬성 의견이 많지만 동문들과 재학생들은 반대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면 여학생 혼자 발레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 교수들은 물론이고 예술 계통 등에서 남녀공학이 됐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는 이미 남학생들이 들어와 있고, 10년 전부터 외국 대학과 교류할 때 ‘성신 유니버시티’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교비를 횡령해 물러난 심화진 전 총장의 후임인 김 총장은 ‘민주적인 총장 선출제도가 만들어지면 바로 물러나겠다’는 약속과 함께 지난해 10월 취임했다. 김 총장은 총장 직선제 시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면서 “지금 공론화하지 않으면 이런 얘기를 하기가 힘들어진다. 모두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니 공청회도 해보고 필요하면 투표도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최근 교내 신년사에서도 “공학 전환을 공론화해 구조적 불이익을 없애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모든 대학의 최우선 과제다. 교육부는 2015년부터 학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 등으로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해 낮은 점수를 받은 학교들의 신입생 모집 정원과 재정지원을 줄이고 있다. 2023년까지 부실 판정을 받은 대학을 중심으로 총 16만명을 줄일 계획이다. 수험생들의 선호도와 졸업생 취업률이 낮은 여대들의 고민은 더 깊다. 2016년 6월을 기준으로 한 조사에서 서울 시내 26개 대학의 평균 취업률은 54.4%였지만 여대 취업률은 47.6%였다.

‘여대 위기설’은 1990년대부터 흘러나왔다.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고 남녀공학 선호가 늘면서 여대만의 정체성을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대에 가려는 학생이 줄어들고 이른바 ‘학벌 서열’에서 여대들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취업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1994년 성심여대는 가톨릭대학교와, 효성여대는 대구가톨릭대와 통합했다. 1996년 상명여대가 남녀공학인 상명대로 바뀌었다. 이듬해에는 부산여대가 신라대로 이름을 바꾸며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여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김 총장이 말한 것처럼 교육 기회가 평등해진 상황에서 여대가 필요한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여전히 여대의 구성원들 중에는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정체성을 훼손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많다.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목돼 위기를 맞았던 덕성여대에서 2015년 취임한 이원복 총장이 “성(性)을 뛰어넘은 경쟁이 불가피한 현실을 직시하여 남녀공학으로의 변화를 신중하게 검토하고자 한다”고 밝혔지만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반발해 유야무야됐다. 2015년 9월 숙명여대는 일반대학원 남학생 입학 허용을 추진했으나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며 거세게 반발하자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