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8 남지원 기자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에서도 4년 전 장성 요양병원 참사 때처럼 중환자실 일부 환자들이 병상에 묶여있어 구조에 차질을 빚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소방당국 브리핑 내용 등을 종합하면 세종병원에 불이 났던 지난 26일 오전에 3층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들 상당수는 끈으로 한쪽 손목이 병상에 묶여 있던 상태였다. 환자가 무의식중에 수액·콧줄을 뽑거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할 위험, 낙상이나 자해 위험 등에 대비해 의료인 판단 하에 환자의 신체 일부를 결박해두는 것인데 이번 경우에선 오히려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했던 것이다.
밀양 세종병원 참사 사흘째인 28일 오전 국과수, 소방청, 전기안전공사의 현장감식 요원들이 현장에서 3차 정밀감식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노말식 밀양소방서 구조1팀장은 28일 브리핑에서 “(환자 결박으로) 구조 시간이 지체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밀양소방서 구조대장도 전날 “환자들 손목이 태권도복 끈 같은 로프로 병상에 묶여있었고, 병실에 연기가 차오르는데 끈을 푸느라 30초~1분 정도 구조시간이 더 걸렸다”고 말했다.
2014년 21명이 숨진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 화재 당시에도 노인 환자 2명이 병상에 끈으로 묶여 대피에 차질을 빚은 일이 있다. 장성 참사 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시행규칙으로 요양병원 신체보호대 사용 규정을 마련했다. 사전에 환자나 보호자가 동의를 해야 하고, 최소한의 시간 동안만 사용해야 하며, 응급상황에서 쉽게 풀거나 자를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일반병원 환자들의 신체를 결박하는 경우에는 이런 규정조차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반병원에서는 의료법상 제한규정이 없고 환자의 안전을 고려해 의료인 판단 하에 신체보호대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병원들이 요양병원 규정을 그대로 따른다 해도, 신체보호대를 필요한 시간 동안 최소한만 써야 한다는 규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돌봄인력이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요양보호사는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 한 명이 최소 6~8명을 돌보려면 장시간 손을 묶지 않고 환자를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호자들도 이를 알기 때문에 결박에 쉽게 동의해주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노인요양병원 실태조사에서도 ‘장시간 신체보호대 사용’이 가장 잦은 인권침해 사례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지난해 초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들에게 신체보호대를 쓰는 근거를 시행규칙이 아닌 의료법 등 법률로 만들어 무분별하게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라고 복지부에 권고했다.
경찰은 세종병원 측이 환자 결박 과정에서 규정을 어긴 부분이 있었는지 수사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이 부분을 포함해 제도개선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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