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랑
“친구를 정말 잘 사귀어야 한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과 아주 의도적으로 가까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시사인 제522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김승섭 교수님이 한 답이었다. 장일호 기자님의 질문은 이랬다. “어떤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처한 환경에 따라 느슨해지는 것도 순식간이지 않나?”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이건 뭔가 내게도 참 중요한 얘기여서. 올해를 시작하면서 내게 이런 저런 다짐을 했는데 그 중에 김 교수님의 저 말이 가장 오래 맴돌았다. (가까이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좋은 분들 가까이 다가가겠습니다.)
연초 잘 한 일이 많은데(훗, 올해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많이 칭찬 해주기로 했다!) 지난주 수요일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을 보고 온 일은 정말 잘 한 일이다. 근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 얘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의 기분은 너무 소중해 날려보내지 않고 꽉 끌어안고 싶은 것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피곤해 곯아 떨어지고 다음날 또 일상이 시작되고 하면서는 점점 그 마음이 내 안에 아직도 남아있을까 의심하게 되었는데... 생일을 맞아 다시금, 이 소중한 마음을 돌이켜 본다.
이런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준 분들을, 내가 무척 닮고 싶은 사람과 함께 ‘가까이’ 만나서 올해의 살아갈 힘을 받아 왔다. 영화는 용산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실은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이고 결국 이 한 단어 - 지난한 싸움, 진실 규명, 이런 것들 결국 모두 이 단어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는, 나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한 - 사람, 에 대한 얘기였으므로... 이 기운 죽이지 않고 나도 내 할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변영주 감독님 사회로 진행된 대담이 너무 좋았어서 처음에 노트에 끄적이다 나중엔 녹음을 했다. 메모와 녹취를 뒤져 일부를 발췌한 것을 맨 아래 남긴다. 내 일을 하면서도 이 얘기들을 계속 곱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나올 때, 김일란 감독 어머니께서 관객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하셨다는 시루떡을 스텝들이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랩에 싸여 ‘공동정범 대박기원’ 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떡. 아 나 뭘 잘했지, 이런 것을 먹어도 될만큼, 이라고 마음이 시큰 해졌다. 김 감독님은 지난해 큰 수술을 받으셨는데, 영화를 보면서 작업 중의 큰 고민이 몸으로 뻗어나오지 않으면 이상했으리란 생각까지 했다. 이 고생을 지켜보면서 딸이 가는 길을 응원하시는 어머니 마음, 그 한조각이 내게도 전해졌으니 나도 잘 살아야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귀한 것이니까 소중한 사람과 나누어 먹었다.
예매해서 봐야 상영관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변영주 감독)
다큐를 만들다 보면 처음에 의도한 것은 끊임없이 실패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정말 훌륭한 점은, 보통 상황이 바뀔 때 대부분의 감독들은 확 확장을 해 버려요. 이 네 명에 관한 얘기를 찍기로 했는데 얘기가 잘 안 풀리면, 일단 서울 시민 전체 얘기로 바꾸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아주 일반적인 얘기로 상황을 바꿔서, 주인공을 이슈로 바꿔 버립니다. 사람이 아니라 이슈로 바꿔 버립니다. 사실 그러면 안전해지죠. 그런데 공동정범의 놀라운 점은 단 한 순간도 그런 유혹이 빠지지 않고, 상황을 더 좁혀 버리는 거예요. 이들 각자 각자로. 흔히 우리가 이런 다큐멘터리를 볼 때 알 수 있는 뭐 가족 이야기, 서브플롯으로 이렇게 삐죽 나와서 사실 알고 보면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이런 게 나오잖아요. 철저하게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어떤 환경에 있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확 좁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으로 인해서 사실은 이 영화가 엄청난 생명력을 갖게 된다...
소위 그 ‘운동권 인간’들은, 뭐 일테면 진보적인 단체에서 일을 하시거나 인권단체에서 일을 하시거나 애초에 그런 거에 관심이 있는 거잖아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애초 훈련이 돼있단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방법이라거나, 토론을 하는 방식,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뭐 이런 표정 짓는 훈련서부터, 실제로 마음까지. 그런데 사실 피해자는 그렇지 않거든요. 일테면 이 사람이 오늘 길거리에 나와서 깃발을 드는 건 어제 해고 당했기 때문이에요. 그럼 이 사람이 해고 당해서 분해서 나온 거지 훌륭해지려고 나온 건 아니거든요 ㅎㅎ 그냥, 이 사람이 나는 일테면, 그 가난한 도시 빈민으로서 재개발 정책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 깃발을 들었어, 이겠어요? 왜 내 가게 내 집 뺏어가요? 그러고 나오는 거잖아요. 바꿔 말하면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실질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깃발을 드는 게 아니라 분해서 깃발을 들게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되게 예의바르고 훌륭한 인간이길 바래요.
(주인공의 가족들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조심스레 묻는 한 관객 질문에 김일란 감독이 답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까, 용산참사에 일 년 정도 투쟁을 하셨던 분들은 다 여성분들이셨거든요. 유가족 어머님들, 그리고 실제로 가게를 운영하셨던 분들 이 모두가 여성이셨구요. 연대왔던 사람들에게 밥을 해 드리고 했던 분들 전부 다 여성들이었는데, 근데 실제로 주목받고 있는 모든 피해자들은 남성이었어요. 망루에 올라가셨던 분들. 근데 이 분들의 가족이 등장할 때, 이 아내분의 위치를 어떻게 등장을 시켜야 이 영화가 되게 이상한 가족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이야기 균형이 맞을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구요. 어설프게 등장하는 순간, 이 아내분들의 위치는 사실은 함께 투쟁한 분들인데, 왜냐면, 이 남편이 전부 다 동의를 받고 용산에 간 것도 아니고, 그리고 감옥에 있는 4년동안 옥바라지를 하면서 함께 투쟁을 한 셈인 이 여성분들의 위치가 어설프게 드러나는 순간 마치 블랙홀에 빠지는 것처럼 이 여성의 여성들의 삶이나 위치 함께 투쟁했던 시간들이 잘 안 드러날 것 같은 서사 구조더라구요. 이 한계를 다 극복하기가 저흰 좀 어려웠구요. 그래서 어설프게 드러내는 순간 오히려 안 드러내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안 드러내는 선택을 하는 게 최선이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변영주 감독)
그 순간 이 이야기는 출소했다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라고 축소가 되니까요.
(‘예민한’ 사안을 다룬 작품의 편집 과정에서의 여러 고민과 두려움을 이겨낸 방법을 묻는 관객 질문에 답하며 김일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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