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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얘기

[기자칼럼]동정 말고 제도를

홍진수 정책사회부
[기자칼럼]동정 말고 제도를

“있는 그대로 써줘서 고맙습니다.”

지난달 9일 중증질환 어린이 엄마들의 사연을 기사로 쓰고 받은 문자 메시지 중 하나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라고 답변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아픈 아이를 직접 보고 엄마들을 인터뷰했다. 힘든 취재였다. 몸은 고될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가슴이 너무 아팠다. 평범한 엄마나 아빠들을 취재차 만나면 아이들을 공통의 화제로 삼아 긴장을 풀어주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질문 하나하나에 신중함을 담으려 했고, 아이를 향한 눈길 하나하나도 조심했다.

되레 취재에 응해준 엄마들은 담담했다. 아이들의 사진이나 이름을 기사에 공개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아이가 현재 갖고 있는 장애와 그로 인한 막대한 의료비, 치료 과정에서 실감한 어려움을 가감없이 이야기해줬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취재할 때는 현재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집중하기 쉽다. 기사에서 그 고통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고, 이를 통해 정책 담당자들이 움직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엄마들은 그런 기사를 바라지 않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바랐다. 동정에 따른 도움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를 원했다.

6살 태경이의 엄마 강혜연씨는 지난달 12일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청원을 올렸다.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다른 엄마들의 의견을 모아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적었다. 강씨는 “저의 아이는 희귀 질환이지만 지정된 코드가 없어서 지정 코드가 있는 희귀질환 환아들과 달리 산정특례의 적용 및 의료 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 실상”이라며 “1년에 적게는 몇 백만원 많게는 몇 천만원씩 의료비로 나가며 저희 아이처럼 태아보험마저 들 수 없었던 환아들은 의료비로 더 힘든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아이들이 응급상황이 오면 순간 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24시간 병원 콜센터가 필요하며 재택의료(의료진왕진), 방문교육으로 의료진이 직접 중증 환아들을 진료해줄 수 있도록 저희와 같은 부모마음으로 힘을 보태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산정특례 확대로 꼭 필요한 이들이 의료혜택을 꼭 받아 치료 과정에 어려움을 받지 않도록 진정한 검토를 두 손 모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도 썼다.

본재 엄마 허아현씨(가명)는 인터뷰 중에 “본재 같은 아이와 저 같은 엄마들이 언론에 나오면 꼭 후원받는 계좌번호가 함께 뜨던데, 왜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고 사람들의 후원에 기대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픈 아이들 일은 정부가 책임지라는 요구다.

사실 어떤 식의 기사가, 또 태도가 아픈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이익이 될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의료비를 빼더라도 중증질환을 앓는 아이들에게는 연간 1000만원 이상이 소모품비 등으로 들어간다. 엄마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더 저렴한 간병 방법을 공유하고 고민한다. 정부 정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민간 후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가까운 시일 내에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는 보장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달 9일 기사가 나간 뒤에도 사회적 관심은 그리 커지지 않았다. 강혜연씨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청원에는 20여일간 1600여명이 동의를 했을 뿐이다. 청와대가 답변을 하는 기준(20만명)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청원 마감 시한인 이달 11일까지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들의 담담하고, 또 당당한 모습을 지지한다. 동정을 바라지 않고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길 바란다. 허아현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아픈 아이들은 계속 나올 텐데, 본재와 우리는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정부가 책임지는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