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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얘기

[기자칼럼]외로운 의사협회에 바라는 일

[기자칼럼]외로운 의사협회에 바라는 일

지난달 29일 대한의사협회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담은 e메일을 보냈다. 전국 의사 대표자들이 서울에 모여 ‘문재인 케어’ 등을 주제로 대토론회를 연 뒤 그 내용을 당일에 정리한 것이었다. 여러 한글파일 중 ‘제1분과 토의 회의결과’에 눈길이 갔다. 소제목이 ‘문케어의 대회원 및 대국민 홍보’였다.

의사협회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놓고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3월 초 정부, 병원협회 등과 함께 앉아 있던 대화 테이블에서 홀로 빠졌다.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가 빠지자 개별 학회 등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23일 ‘극우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대집 후보가 제40대 회장으로 선출된 뒤에는 투쟁 기조가 더 강해졌다. 남북정상회담일(4월27일)에 집단 휴진을 하겠다 예고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유보했다. 의사협회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큰 기대 없이 의사협회가 보내온 자료를 열었다. 그동안 수차례 내놨던 입장을 다시 되풀이하겠거니 지레 짐작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꼼꼼히 읽어봤다.

깜짝 놀랐다. 그간 의사협회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아쉬워했던 것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특히 ‘대국민 홍보 시의 전략적 고려사항’ 항목에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 들어 있었다. ‘의사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자’며 ‘서울지하철 노조의 홍보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서울지하철 노조가 임금 인상요구를 직접 하지 않고 기관사의 근로여건과 안전요원 확충을 앞세우듯이 의사들도 수가 인상을 요구하지 않고 정부가 스스로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대국민 홍보방식’은 30가지로 정리했다. 문재인 케어 철폐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문재인 케어를 찬성하면서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재정 지원 방안 등에 대해 강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4대강 등 역대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열거하고 이 정권의 문케어도 잘못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홍보에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정상회담을 축하하고 평화 번영을 기원하고 남북의료에 대해서는 의사가 책임지겠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로 홍보를 하는 것이 필요함. 통일 이후의 의료에 대해서도 준비를 통해 주도적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필요함’이라는 의견이 홍보방식으로 제시됐다.

앞서 최대집 의협회장은 해당 토론회가 열리기 이틀 전인 4월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북정상회담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틀 사이 의사협회의 입장에 큰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반가운 마음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반가움은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다. 실무진의 실수로 공식 입장이 아닌 내용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었다. 다시 보니 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은 다른 파일에 들어 있었다. ‘대한의사협회 13만 회원은 정부가 문케어와 관련된 모든 정책 추진을 중지하고 (…) 총파업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는 전국의사 대표자 일동 명의의 결의문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의사협회가 문재인 케어 철폐를 주장하면서 내놓은 이유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적도 있다. 기득권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의사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억울할 것이다. 그렇다고 싸우려고만 든다면 외로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일수록 여론을 살피고, 스스로 주변도 돌아봐야 한다. 의사협회 내부에서조차 저런 의견이 나왔다면 과감하게 채택하고 실행도 해볼 일이다. 의사협회의 주장대로라면 어차피 지금도 최악의 상황에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