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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릴레이 인터뷰②]'최다 부서이동' 김범도 아나운서

경력 23년, 한때는 MBC의 얼굴이었던 김범도 아나운서는 마이크 대신 이제 피켓을 잡는다. 16일 서울 상암동 MBC 로비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김 아나운서가 2012년 파업 이후 5년간 아나운서국에서 벌어진 파행적인 인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경력 23년, 한때는 MBC의 얼굴이었던 김범도 아나운서는 마이크 대신 이제 피켓을 잡는다. 16일 서울 상암동 MBC 로비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김 아나운서가 2012년 파업 이후 5년간 아나운서국에서 벌어진 파행적인 인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금은 스튜디오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보다 취재진들의 카메라 앞에서 피켓을 드는 일이 더 많지만 한때는 MBC의 얼굴이었다. 1994년 입사해 MBC 대표적 장수 프로그램인 〈TV특종 놀라운 세상〉을 6년간 진행했고, 월드컵과 올림픽 MC·앵커도 여러 번 했다. 김범도 MBC 아나운서(51)의 얼굴이 방송에서 사라진 지 5년이다. 

MBC 구성원 상당수가 2012년 파업 이후 가장 상처입은 조직 중 하나로 아나운서국을 꼽는다. 파업 당시 50명이 조금 안 됐던 아나운서국에서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퇴사하거나 전보당했다. 지난 17일 아나운서들은 또 환송회를 열었다. 지난해 10월 <뉴스투데이> 앵커에서 경질된 뒤 10개월간 ‘벽만 보고 지내다’ 퇴사한 김소영 아나운서를 보내는 자리였다. 여러 PD가 그를 섭외했지만 신동호 아나운서국장 선에서 묵살당했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왔다. 

그에게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한 아나운서는 프로그램 섭외에서 묵살된 횟수를 50번까지 세고 그만뒀다고 했다. 또다른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연합회 행사에 참여하려던 것조차 제지당했다. 어떤 아나운서는 선배들의 부당전보가 안타깝다는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렸다가 전보당한 뒤 휴직계를 냈다. 박혜진, 오상진, 문지애 등 MBC의 ‘스타’ ‘간판’이라고 불리던 아나운서 12명이 비슷한 과정을 거치다 떠밀리듯 회사를 나갔다. 간부들은 줄줄이 나가는 아나운서들을 붙잡지 않았다. 

심의실과 주조정실, 사회공헌실처럼 아나운서가 필요없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10명이나 된다. 김범도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국 바깥으로 쫓겨난 선후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성공시대>로 방송대상까지 받은 변창립, <우리말 나들이>를 만든 주역 강재형, MBC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선숙, 탁월한 뉴스 전달력을 갖춘 최율미, 아나운서대상 장기범상까지 받았던 김상호, 아나운서연합회장을 하다 쫓겨난 신동진, 신뢰감을 주는 앵커 박경추, 지적이고 다양한 방송을 했던 차미연, 두말할 것 없는 스타 아나운서 손정은, <신입사원>을 통해 시청자가 뽑은 오승훈. 이 기라성 같은 선후배들이 모두 아나운서국 바깥에 있다.” 반면 회사 편에 선 이들은 승승장구했다. 2012년 파업에서 빠져나간 뒤 기자로 전직한 배현진 앵커는 <뉴스데스크> 최장수 앵커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은 김재철 사장 시절인 2013년부터 지금까지 재직중이다. 

김범도 아나운서는 MBC 내에서 ‘최다 부서이동, 최다 저성과자’ 기록을 가졌다고 했다. 5년 전 파업에 적극 가담한 뒤 그는 수차례 인사발령을 거쳤고, 신천 MBC아카데미에서 ‘브런치 만들기’ 같은 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이준헌 기자

김범도 아나운서는 MBC 내에서 ‘최다 부서이동, 최다 저성과자’ 기록을 가졌다고 했다. 5년 전 파업에 적극 가담한 뒤 그는 수차례 인사발령을 거쳤고, 신천 MBC아카데미에서 ‘브런치 만들기’ 같은 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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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아나운서는 7월3일 ‘전보발령은 무효’라고 확인한 법원 판결문을 받아들고서야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MBC 내 ‘최다 부서이동, 최다 저성과자’ 기록을 가졌다고 했다. 2012년 파업이 끝나고 마이크를 빼앗겼고, 경인지사 인천총국을 거쳐 ‘신천교육대’라 불리던 신천 MBC아카데미에서 ‘브런치 만들기’ 같은 교육을 받았다. 교육발령이 끝난 뒤에는 용인 드라미아의 드라마세트장으로 발령이 났다. 일산의 집에서 용인까지 출근하는 데만 길게는 3시간이 걸렸다. 회사가 파업에 참여한 이들을 ‘유배’보내는 것도 모자라 일부러 출퇴근하기 가장 어려운 곳에 배치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회사에서 출퇴근용 승합차량을 배차했지만 그는 ‘나를 유배보낸 사람들에게 봉고차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굳이 운전대를 잡았다.

2013년 4월 가처분소송에서 이겨 잠시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한 적도 있었다. 심야시간대였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나 주어졌다. 당시 PD가 자율성을 보장한 덕분에 그는 조심스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역주행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아 피켓시위 등에 참여한 뒤 또다시 신사업개발센터로 전보됐다. 청취자들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방송에서 하차해 짐을 싸야 했다. 

MBC는 파업에 참여했거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한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을 업무와 무관한 부서에 배치한 뒤 일을 시키지 않고, 일을 하지 않았다며 인사고과에서 최하점인 R등급을 주는 일을 반복해왔다. R등급을 3번 연속 받으면 인사위에 회부해 징계한다. 이런 방식으로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내린 사례도 있다. 부당전보로 여러 부서를 오간 김 아나운서는 R등급을 4번 받았다. 연속이 아니라 징계는 없었지만 저성과자로 분류돼 한국생산성본부 등에서 교육을 받았다. 언론인으로서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아나운서국 바깥을 떠돌던 지난 2년 동안 MBC는 단체행동을 하기 어려운 계약직 아나운서 11명을 뽑아 아나운서국에 배치했다. 업무의 기본인 매시 정각의 라디오뉴스는 심지어 아나운서가 아닌 사람들이 읽는다고 했다. 아나운서들은 뉴스를 진행한 뒤 자기 이름을 대는 ‘네임사인’을 하지만 이들의 뉴스에는 네임사인이 없다. 

“재계약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도록 계약직으로 아나운서를 뽑아 ‘말 잘 듣는 방송인’ 역할만 시키는 것, 라디오뉴스에 네임사인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쓰는 일 모두가 아나운서의 언론인 역할을 말살하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뉴스의 기본인 스트레이트 뉴스를 누가 읽는지도 모르게 방송하는 MBC는 언론사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성향이 다른 원로 선배들도 이 일에는 분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MBC 아나운서 27명은 18일 아침부터 방송 출연과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편향된 뉴스를 앵무새처럼 읽어야 하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다. 이준헌 기자

MBC 아나운서 27명은 18일 아침부터 방송 출연과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편향된 뉴스를 앵무새처럼 읽어야 하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다. 이준헌 기자

MBC 아나운서 27명은 18일 아침부터 기자와 PD들의 제작중단에 동참해 방송 출연과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특히 앵커를 맡고 있던 아나운서들이 편향된 뉴스를 읽어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했다”고 김 아나운서는 말했다. 오히려 부당전보된 아나운서들이 후배들이 겪을 피해를 걱정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조언했지만,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이 적극적으로 제작중단에 동참하길 원했다고 한다. 다가올 파업에 대해서도 모두가 당연한 미래라고 여기며 마음을 굳게 먹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지난 파업 때 아나운서국에서 가장 먼저 이탈자가 나왔지만 이번에는 이탈자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도 했다. 지난 5년간 아나운서국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너무들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방송을 할 수 있게 되면 라디오뉴스를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겠지만 혹시 동료들이 ‘김범도만이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열심히 하고 싶다고도 조심스레 생각한다. “지난 5년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방송인으로서는 보여준 것이 없지만 언론인으로서는 가장 화려한 시기가 아니었을까”라고 김 아나운서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