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르치고 배우기

올해 고1들, 이과 수능 수학에서 기하 빠지고, 문과는 삼각함수 포함될 듯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교육부 주최로 19일 열린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교육부는 19일 오후 서울교대에서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를 결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고 지난해 12월부터 수행한 출제범위 정책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올해 고1이 되는 학생들은 새로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달라진다. 교육부는 이에 맞춰 지난해 수능 평가방식을 바꾸고 시험영역도 개편하려 했지만 절대평가를 얼마나 늘릴 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자 개편을 1년 유예했고, 일단 수능 출제범위만 이달 발표하기로 했다.

새 교육과정에 따라 2021학년도 수능 시험범위는 지금까지와 꽤 많이 달라진다. 특히 수학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이과 학생들이 치르는 수학 ‘가’형 출제범위는 현재 수학과 미적분, 확률과 통계, 기하와 벡터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기하와 벡터는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새 교육과정에서는 공통과목과 일반선택과목만 수능에 출제하는 게 원칙인데, 기하는 심화과목인 ‘진로선택과목’이고 벡터는 과학고 등에서 주로 배우는 ‘전문교과과목’이 됐기 때문이다.

정책연구진은 이과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지나치게 늘어나고 수업시수도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하는 이공계 학생들의 필수 소양이므로, 수능에서 빼면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공청회에 나온 대구 달성고 여욱동 교사는 “기하와 벡터 과목에 나오는 개념들을 배우지 않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면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학부모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그렇게 되면 벡터까지 공부하고 온 과학고, 영재고 아이들이 대학에서 훨씬 유리해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기하를 수능에 넣을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여 교사는 “기하는 3학년 교과목으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이과 학생들은 1~3학년 수학과목이 모두 수능에 출제돼 학습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말했다.

문과 학생들이 주로 치르는 수학 ‘나’형 시험범위는 늘어난다. 연구진은 수학Ⅰ, 수학Ⅱ, 확률과 통계를 나형 출제범위로 하자는 안을 채택했다. 수학Ⅰ에는 이전에 나형 출제범위가 아니었던 삼각함수 등이 포함돼 있다. 여 교사는 “삼각함수는 문과 학생들이 수업에서 매우 어려워하는 부분이라 큰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출제범위가 늘어나면 지금도 심각한 문과 ‘수포자’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탐구영역에서는 진로선택과목인 과학Ⅱ(물리학Ⅱ·화학Ⅱ·생명과학Ⅱ·지구과학Ⅱ) 과목이 수능에 출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연구진은 과학탐구영역 선택과목이 과학Ⅰ의 네 과목으로 줄어들지 않도록 하려면 과학Ⅱ를 출제범위에 넣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도 과학교육이 강조되는 시대인 만큼 과학Ⅱ를 출제범위에서 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최임정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교육개발실장은 “학습부담이 늘어난다 해서 출제범위에서 뺀다면 이공계 학생들은 대학에 가서 더 큰 절망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학Ⅱ가 포함되면 이 과목 점수를 반영하는 대학을 지망하는 이과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이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심화된 공부는 원하는 학생들만 배우게 하겠다는 ‘선택형 교육과정’의 빛이 바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어영역에서는 ‘독서와 문법’이 ‘독서’, ‘언어(문법)와 매체’로 분리됐는데 연구진은 ‘언어와 매체’도 국어영역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행 수능 시험범위에 ‘매체의 유형’ ‘매체의 특징’ 등이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교육과정상 과목구조 변화가 없는 영어와 사회탐구·직업탐구 영역 출제범위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1학년도 수능부터 줄이기로 했던 EBS 연계율은 학생 부담을 고려해 일단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교육부는 정책연구와 공청회 결과 등을 종합해 이달 안에 수능 시험범위를 확정해 발표한다. 이번에 결정되는 시험범위는 2021학년도 수능에만 적용되고, 2022학년도 이후 수능은 과목과 평가방법 등이 모두 개편돼 올해 8월까지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