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양원주부학교서 초등과정 졸업장 받은 김영자 할머니
ㆍ일본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노래방 자막 못 읽어 서글퍼
ㆍ“암 투병 불구 등교는 늘 즐거워…중학과정도 꼭 마칠 것”
아들이 아직 어렸던 시절, 아들 친구 엄마들과 노래방에 간 날이었다. 자막을 잘 읽지 못하는 그를 보고 다른 엄마들이 ‘글을 모르나 보다’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김영자씨(73·사진)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신문에서 봤다며 장·노년층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4년 전의 일이다.
곧바로 남편과 함께 학교에 갔고, 잠시의 망설임 끝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김씨는 22일 오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해 거둔 성과다.
서울시교육청은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늦깎이 초등·중학생 770명이 23일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 우면관에서 합동 졸업식을 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를 다니지 못했거나 글을 읽지 못하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하는 문해교육을 하고 학력을 인정해주는 과정이다.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주로 어린 시절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한 장·노년층이 문을 두드린다. 결혼이주여성들도 많이 찾는다. 서울에 사는 성인 785만명 중 국가의무교육인 중학교 학력을 취득하지 못한 성인은 8.7%인 68만명이나 된다.
김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후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어린 시절 돌봐주던 할머니가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글 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주저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학교에 다니는 게 즐거웠다고 했다. 첫해에는 기초 한글과 산수를, 이듬해부터는 초등학교 6학년 과정을 매년 2개 학년치씩 3년에 걸쳐 배웠다. 4년 동안 매주 세 번, 오전 9시40분부터 낮 12시40분까지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시련이 왔다. 꾸준히 학교를 다니던 중 과거에 수술했던 암이 재발했다. 항암치료와 공부를 병행하는 게 힘들었다. 약이 독해서 구역질이 나 학교를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파서 빠진 날 빼고는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글을 잘 써서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졸업을 앞두고 쓴 소감문에 김씨는 이렇게 적었다. “아들들 다 키우고 나서야 양원주부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학교를 즐겁게 다녔는데 얼마 전부터 암이 재발하여 온몸에 암세포가 뻗어가고 있다. 이제 공부를 조금 배워 신바람이 나는데 야속하다. 그래도 학교에 와서 배울 수 있어서 기쁘다.”
김씨는 당분간 쉬면서 치료를 받을 예정이지만 “나중에라도 중학교 과정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그의 담임을 맡았던 선경아 교사는 “항암치료를 받느라 힘들어하시면서도 졸업은 해야겠다며 끝까지 열심이었다. 글씨도 예쁘게 쓰고 숙제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셨던 학생”이라며 “졸업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응원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김씨와 함께 졸업장을 받는 이수자 중에는 60대 35.2%, 70대 46.4%로 50~80대가 98%를 차지한다. 최고령자는 서울보광초등학교에서 졸업장을 받는 최기복씨(92)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보다 2개 기관을 추가해 올해엔 76개 기관에서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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