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이과 학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기하’ 과목을 치르지 않게 됐다. 교육부는 27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범위를 확정해 시·도교육청과 일선 고교에 안내했다고 밝혔다.
이과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수학 가형의 경우 출제 범위가 수학Ⅰ, 미적분, 확률과 통계로 확정됐다. 출제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됐던 기하 과목은 수능에서 빠졌다. 기하가 이과 수학 수능에 나오지 않는 것은 1993년 수능 실시 후 처음이다.
올해부터 일선 고교에 적용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기하는 심화과목인 ‘진로선택과목’에 포함돼 원칙적으로 수능 출제 범위가 아니다. 정책연구진과 교육부는 기하 과목의 중요성을 감안해 예외적으로 수능에 출제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지나치게 늘어날 수 있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학 가형 시험과목은 3개지만, 수학Ⅱ에서 미적분의 기초 이론을 다루기 때문에 미적분을 공부하려면 수학Ⅱ를 이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이과 학생들은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 수학만 4개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셈이다. 여기에 기하까지 추가되면 수학 영역에서만 5개 과목을 배우게 돼 2학년 때 수능 출제 범위 안에 있는 내용을 다 배우기도 어려워진다.
수학계와 이공계는 반발하고 있다. 미래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기하 과목을 반드시 배우고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는 지난 26일 대학 기초과목 선이수에 해당하는 미국 AP코스의 심화학습 과정, 영국·호주·싱가포르가 채택한 A레벨 시험, 일본 대입시험 등 주요국 시험에서 기하를 반영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이공계 단체들도 “사물의 구조나 운동을 공부할 때 가장 기초가 되는 학습능력은 ‘공간에 대한 개념과 이해’를 다루는 기하”라며 기하를 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기하가 수능 출제에서 제외되더라도 필요한 학생들은 선택해 수강하도록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정 전공을 공부하기 위해 기하가 꼭 필요한 경우 대학들이 모집단위별 특성에 따라 학생부에서 기하 이수 여부를 확인하거나 가점을 주는 방안도 도입할 수 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고교 교육과정을 비정상적으로 운영하면서까지 기하를 모든 이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대학 1학년 교양과정이나 해당 학과 전공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문과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수학 나형에는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삼각함수가 포함된 수학Ⅰ이 출제 범위에 들어갔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수학의 중요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다른 영역 학습 시간을 침해해 전체 학습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새 수학 교육과정에서는 학습 내용을 적정화했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어와 영어, 사회탐구, 과학탐구 영역은 일부 과목명 등이 조정됐을 뿐 현행 수능과 출제 범위가 같다. 교육부는 EBS 연계율 70%는 2021학년도 수능까지 일단 유지하고 추후 축소·폐지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수능 4~5일 뒤 등급컷 발표…6월 모의고사서 시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오는 6월 치르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 때 가채점 등급구분점수(등급컷)를 시험 4~5일 후 시범적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입시학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수능 가채점 결과 발표를 6월 모의평가에서 시범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성 원장은 “1차 가채점 결과이니만큼 전형에 참고만 하되 불이익을 법적 소송 등에 활용하지 말 것을 전제로 해 채점결과를 빨리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평가원이) 등급컷 발표를 빨리 한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수능을 치른 지 3주가 지나야 개인별 성적과 등급컷을 알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학생들이 스스로 가채점을 하더라도 이 점수가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어떤 위치인지는 알 수가 없어, 수능 직후 수시모집 지원 여부를 결정할 때 입시학원들이 발표하는 예상 등급컷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성 원장은 “사설 입시기관들이 스스로 예측한 등급컷으로 입시설명회를 하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현상을 잡겠다”고 말했다. 정확한 채점 결과와 등급컷은 문항 오류나 복수정답 등 이의신청 기간이 끝난 뒤에야 산정할 수 있다.
평가원은 2003~2004학년도 수능 때 시험 다음날 응시생 4만명의 점수를 가채점한 뒤 영역별 평균점수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표본채점 결과와 실제 채점 결과의 차이가 크다는 비판을 받자 2005학년도부터 가채점 결과 발표를 중단했다. 성 원장은 “이번에는 표집 방식이 아니라 전체 성적을 추려 공개할 것”이라며 “6월 모의평가 때 시범 실시해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성 원장은 오는 8월로 예정된 대입체제 개편 발표를 앞두고 수능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을 둘러싸고 불거진 공정성 논란에 대해 “수능은 객관적이고 신뢰성이 있지만 출발선이 다른 학생들을 똑같은 규칙으로 평가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주요 대학의 학종 쏠림 현상이 수험생들을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각 전형이 가진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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