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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라일리 전 GM대우 사장 “군산공장 폐쇄는 생산성 탓 아냐”

김상범·송윤경 기자 ksb1231@kyunghyang.com

“한국지엠의 생산성은 훌륭하다. 배정받은 물량이 너무 적은 게 문제였다. 이것은 한국지엠 탓이 아니다.”

닉 라일리(68·사진)는 미국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해 2002년 탄생한 GM대우(현 한국지엠)의 사장을 맡아 약 3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인물이다. 그의 취임 초 노동자들은 ‘인수반대’ 구호를 외쳤다. 이미 1700여명이 정리해고를 당한 뒤였다. 라일리는 자신이 이른바 ‘먹튀’ 자본의 꼭두각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고, 2006년 물러날 때에는 노조의 감사패를 받았다. 경향신문은 지난 5일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에서 그를 만나 ‘한국지엠 사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처음엔 신뢰를 쌓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한번 쌓고 나자 길이 만들어졌다.” 그가 사장으로 일하던 때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GM 본사가 파산위기에 몰리기 전의 ‘호황기’였고, 그 덕에 한국지엠이 소화하는 물량도 점점 늘어날 수 있었다.


대우차 시절 정리해고당한 이들 대부분을 복직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어두운 유산도 있다. 사내하청 형태로 비정규직 노동력을 대거 배치한 현재의 고용구조가 라일리 시절 만들어졌고 이는 지금 고용불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당시 한국지엠 불법파견으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라일리는 한국지엠의 잠재력을 믿고 역량을 끌어올린 경영자로 평가된다. 아시아와 유럽 GM 본부를 거쳐 6년 전 은퇴한 그는 현재 한국의 ‘이래오토모티브’를 비롯해 여러 자동차 공급업체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그는 군산공장 폐쇄에 대해 “한국지엠 탓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본사가 생산물량을 적게 배정했을 뿐 공장의 생산성에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니었으며, 앞으로의 협상에서 경쟁력 있는 신차종을 배정받아 한국 내 공장들이 존립할 수 있게 하는 게 핵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라일리는 “한국은 내수시장 규모가 작아 수출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GM 없이 독자생존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지엠이 독점적으로 만들어 세계에 팔 신차종 배정을 본사로부터 반드시 약속받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한국지엠에 따르면 GM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랙스의 후속 모델과 경차 스파크를 대체할 크로스오버유틸리티(CUV) 모델 2개 차종을 각각 부평공장, 창원공장에 배정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물량이 배정되더라도 라일리가 강조하는 “세계에 팔 수 있도록 한국에서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차량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다음은 라일리와의 일문일답.

- GM이 5월까지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밝힌 후 철수설까지 돌고 있다. GM이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은.

“가능한 일이다. GM은 이미 러시아, 호주 그리고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중단했다. GM은 지금 단기 이익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 GM이 그것을 원한다는 게 아니라 가능한 선택지라는 얘기다. GM이 한국에 남게 하려면 한국에서 만들어 세계에 팔 신차종, 한국지엠이 독점적으로 생산할 차종을 배정받아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 GM 본사가 지난해 공개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영업력과 잠재적 이윤이라는 두 측면에서 한국지엠은 모두 ‘낮다’고 평가돼 있다. 당신은 본사 내에서 한국지엠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한국지엠의 위상이 이렇게 낮아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여러 이유가 있지만, 첫째는 한국지엠의 경영이다. 한국지엠 경영진은 디트로이트(GM 본사)에 투자할 이유를 제시해야만 한다. 여기 앉아서 투자가 오기만 기다려선 안된다. 가서 싸워야 한다. 나는 그 일에 시간을 많이 쏟았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당시 GM대우는) 생산성이 높았으며 한국의 엔지니어링 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곳 중 하나였다. 경쟁력 있는 가격에 차를 만들 수 있었기에 새 차종을 계속 배정하게 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 그런 과정이 잘 돌아가지 않았던 것 같다.”


라일리는 한국지엠 경영진이 본사로부터 물량을 이끌어낼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한국지엠의 적자는 한국에서 수출차량을 제작해온 유럽 시장에서의 철수와 같은 GM 본사의 전략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09년 GM이 (구제금융을) 졸업한 후 미국 정부가 지정한 새 이사진 다수는 자동차산업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9~2010년 한국지엠이 파업한 것도 ‘끔찍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미국에서는 매일같이 자동차노조의 파업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잊은 채로 말이다. 이때 GM 내에서 한국지엠의 평판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지엠이 적자를 낸 것은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판매를 접기로 했기 때문이지 한국지엠 탓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결정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GM의 유럽 브랜드인 오펠과 쉐보레 사이에서 선택을 한 것이지만 사실 이 둘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어쨌든 쉐보레 철수로 한국지엠의 물량은 크게 줄었는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이익을 내지 못했다.”


그는 두 손을 위아래로 놓은 뒤 오펠은 위쪽, 쉐보레는 그 아래쪽에 있는 브랜드여서 각각의 수요층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GM은 두 브랜드 모두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판단했고 쉐보레를 철수시켰다. 미 정부가 임명한 경영진이 물러난 뒤 새로 들어선 경영진은 단기 이익에 집중했으며 결국 오펠마저 팔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 한쪽에선 한국지엠 노조의 잦은 파업과 저생산성이 문제라 말하고, 한쪽에선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이 바뀐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파업이 좋을 리 없지만, 이번 사안은 저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내가 있는 동안 한국지엠의 생산성은 미국이나 유럽을 크게 앞섰다. 그 후 한국의 노동자 전부가 갑자기 비생산적으로 변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생산성은 굉장히 높다. 노동자들이 느리고 비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수출할 물량이 줄어든 게 문제다. 물량이 적으면 당연히 고정비용 비중이 높아져 생산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이것이 생산성의 지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노사관계에 대해 “내가 처음 왔을 때 대우의 노사관계는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는 서로 대화를 얼마나 잘 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는 경영에 대해 노조와 계속 얘기했다. 내가 있는 동안 파업이 없었고 그것이 우리의 평판을 높였으며 (본사로부터) 한국 투자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

- GM은 호주에서 정부 지원을 받은 후 공장을 닫은 전례가 있다. GM이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한국인들은 GM을 믿지 못하고 있다. 

“협상을 통해 한국 정부가 자금을 투입하려면 GM으로부터 한국에서만 독점적으로 생산해 수출할 수 있는 차량을 배정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GM이 공장을 닫을 의도를 품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돈을 집어넣으려면 받아내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받아내야 할 것’은 신차라는 점이다.”


- GM이 경쟁력 있는 신차를 배정하려 할까.

“그럴 수도 있다. 신차가 들어오면 부평과 창원공장에서 만들 텐데, 물량을 늘리면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내려가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가야 한다. 그것이 한국 정부와 노조, 모두에게 좋은 협상이다. 군산공장 폐쇄를 받아들인다면 부평과 창원공장이 좀 더 바빠지게 해야 한다. 지금 GM이 보내는 좋은 신호가 있다면 새 물량을 배정할 뜻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도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임금동결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한국지엠은 수출기업이다. 한국 내수시장은 그렇게 큰 회사를 먹여살리기엔 너무 작다. 현대차 같은 기업이 군산공장을 사들이려 한다면 몰라도, 한국지엠에 GM은 꼭 필요하다.”


- 한국 정부에 해주고픈 조언은.

“모든 협상 참가자들이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한국지엠에는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공장도 훌륭하다. 유럽 시장 쉐보레 철수로 인한 변화는 뒤집을 수 없으나 아직 부평과 창원의 훌륭한 공장들이 남아 있고, 어딘가에 해답이 있다고 믿는다. GM이 철수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되, ‘안될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