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육백 명씩 죽어 나가도 누구 하나 눈도 깜짝 않습니다. 건설 노동자들은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 달라고 국회와 정부에 십 년 넘게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회도 정부도 아무도 우리를 내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오로지 건설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입니까. 건설 노동자들은 죽어 나가도 괜찮다는 겁니까.”
장옥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위원장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2018년 안전기원제·결의대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같이 말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죽기 싫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해보자” 등 구호를 입을 모아 외쳤다.
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건설노조원들이 2018 건설노조 안전기원제 ‘건설현장 안전요구 쟁취 결의대회’를 열고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앞서 지난 2일 부산 해운대 중동 엘시티 공사장에서 건물 55층 외벽에 붙어 있던 안전발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작업 중이던 노동자 네 명이 숨졌다. 지난달 17일에는 전남 연광의 다리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 두 명이 철근 더미에 깔려 숨졌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2022년까지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연초부터 건설 현장에서는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산업재해현황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2007~2016)동안 건설 현장에서 작업 중에 사망한 사람은 5720명에 이른다. 매년 6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떨어짐, 끼임, 부딪힘 등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2016년에는 이런 사고로 499명이 숨졌다. 건설업 종사자는 전체 산업 종사자의 6.5%에 불과한데 사망 사고는 절반 이상(51.5%)이 건설 현장에 집중됐다. 건설노조는 지난해도 464명이 건설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파악했다.
건설노조는 이번 엘시티 사고와 관련해 “다단계 하도급과 ‘빨리 빨리’ 속도전에 안전발판 등의 시설물은 어느 건설현장이든 부실한 상황”이라며 “각종 법제도는 노동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떠넘기도록 돼 있고 사용자에 대한 처벌은 약하기 때문”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심각한 문제는 어제와 같은 죽음이 오늘도, 내일도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지금 하루 2명씩 건설 노동자는 ‘예고된 죽음’을 맞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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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는 중대 재해를 막기 위해 원청과 발주처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특히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안과 관련해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서 총체적 안전책임을 지는 원청의 의무에서 ‘임대사업’은 제외했다”며 “이는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임대업도 원청이 책임진다’고 여러 번 발표한 공식 입장을 번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건설기계 노동자는 자영업자라는 핑계로 다쳐도 죽어도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한다”며 “이들도 산업재해로부터 보호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만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타워크레인 사고와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대책도 도마에 올랐다. 건설노조는 “정부는 건설현장 안전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리는 소형타워크레인을 규제 대책은 내놓지 않고 타워크레인 조종석 안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겠다는 황당한 대책만 내놓았다”며 “인권 침해가 분명한 CCTV 설치 시행령은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또 “한국전력이 도입한 죽음의 활선공법으로 수십 건의 사망사고와 수백 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며 “위험한 작업 공법을 도입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한국전력을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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