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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우기

[수능개편 쟁점정리]수학만 ‘비정상적’으로 확대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2017.8.23


현재 중3 학생들이 치르게 될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가 바뀌는 이유는, 내년부터 고등학교 현장에 적용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교육과정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문·이과 구분 없이 인문사회, 과학기술 기초 소양을 지닌 융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을 개정교육과정의 목표로 들었다. 이를 위해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학습과 선택과목을 활성화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다. 또 문제풀이 위주로 왜곡된 교육과정을 바로잡고 지나친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기도 했다.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에는 이 두 가지 기조가 맞물려 있다. 교육부는 현재 절대평가로 시험을 치르는 영어와 한국사 외에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까지 추가로 절대평가하는 1안과 전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2안을 지난 11일 발표했다. 21일까지 4차례 공청회를 열어 의견수렴도 마쳤다. 오는 31일 확정 개편안 발표만 앞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으로는 당초 목표였던 융복합 인재 양성과 고교교육 정상화가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수학만 ‘비정상적’으로 확대

 

특히 교육부가 무게를 싣고 있는 1안에 대해서는 ‘개악’이라는 의견이 빗발친다. 가장 큰 문제는 수학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수능 개편안 시안을 발표한 직후 입시전문가들은 1안을 채택했을 때 국어와 수학이 사실상 수능 성적을 가를 것이며, 특히 수학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일제히 내다봤다. 절대평가 과목은 등급만 나오기 때문에 과목의 변별력이 낮다. 대학들은 상대평가 과목의 반영비율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로서는 절대평가 과목에선 일정 등급을 얻는 데에만 집중하고 상대평가 과목에 전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국어와 수학과목의 난이도가 올라갈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수학 사교육 ‘풍선효과’는 물론, 학교교육에서 개념 위주 수학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홍임 고양 대화고 수학교사는 “수학이 변별을 좌우하게 되면 수학적 개념과 본질을 묻는 질문보다는 어렵게 꼬아 내는 문제가 많아질 것”이라며 “학교에서는 답답한 반복학습을 계속할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어려운 수학에 아이들이 흥미와 자신감을 더욱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포자’ 학생들, 학부모들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학부모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아이는 수학만 약한데, 타고난 재능으로 결정되는 측면도 있는 수학에 지나치게 힘을 실어주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고3 수업 ‘정상화’는 요원

 

1·2학년 때 배우는 과목으로 수능을 치르게 되면 현실적으로 고3 교실은 수능 대비 문제풀이 수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진학지도교사협의회는 23일 “고등학교 교육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수능 한 문제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 오히려 수능 종속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1학년때 배우는 한국사와 통합사회·통합과학 과목의 학습부담이 아무리 적다 해도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학생들은 반복학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교교육 내실화라는 개정교육과정의 취지와 모순된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수학 과목은 난이도에 따라 가형과 나형으로 나눠 실시되고 문·이과 장벽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개정교육과정 취지와 완전히 다르다. 현장에서는 수학 과목에 따라 문과와 이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수학 과목을 통합하면 인문사회계열을 희망하는 학생의 학습부담이 너무 커지는 우려가 있고 진로에 따라 학습 요구도가 다르기 때문에 분리하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 부담도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다. 사회와 과학 영역에서 ‘통합교육’이라는 목표를 일부 달성할 수는 있지만 수험생들은 이 또한 ‘학습부담 증가’로 받아들이고 있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아직 교과서도 나오지 않았으나 지난 여름방학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예비고1 대상 선행반에는 ‘통합과학’ 선행학습 과정이 우후죽순 생겼다.  


 대입전형 큰 그림 없다...수능 개편 유예론도 솔솔


“아이들이 내신 시험을 두고 소수점 단위로 피말리는 경쟁을 합니다. 1년에 수백만원 들여 학교생활기록부 관리를 받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성, 피말리는 내신 경쟁 문제를 내버려두고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꿔서는 안 됩니다.” 지난 11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교육부 수능 공청회에 참가한 중 3 학부모는 “수능이 아니라 학생부종합전형이 문제”라고 성토했다.

 

학부모들이 수능 절대평가에 반대하는 이유는 수능 변별력이 줄어 대학들이 학종에 의존하거나 내신경쟁이 심해질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금까지 4차례 연 수능 개편 관련 공청회는 모두 ‘학종 성토대회’로 끝났다. 전문가들도 교육부가 수능 개편안만 내놓은 채 내신 절대평가제나 학종 개선방안은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수능뿐 아니라 대입제도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 일각에서도 이런 지적을 반영해 개편안 확정을 미루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부모들뿐 아니라 수능 절대평가를 주장하는 교육단체들도 학종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는 생각이 같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3일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가 학종의 불공정성에 대한 불만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큰 그림’을 내놓아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부작용이 많은 ‘일부 과목 절대평가화’ 대신 전 과목을 절대평가화하되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학종의 전형요소를 바꾸자는 지적이다. 학종 전형을 좌우한다는 평가를 받는 각종 경시대회, 방과후 활동,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을 없애고 교과 내신 평가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이 단체는 주장했다. 

 

수능뿐 아니라 전체 전형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은 입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학종의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문제점도 명확한 상황에서 대입제도 전반의 틀을 손질할 생각을 하지 않고 수능 개편안만 내놓은 것은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전과목 절대평가 안을 선택하되,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대입제도를 지금보다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가 내년에 당장 도입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교육부는 수능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는 당분간 대입에서 내신 상대평가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 변별력이 줄어들면 대학들이 정시모집에서도 내신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내신이 상대평가로 유지되는 현 중3 학생들의 내신경쟁은 극심해질 수 있다.

 

교육부는 앞서 2개 개편안 시안을 발표하면서 “수정 없이 양자택일할 것”이라고 했다. 공청회에서도 “수능 개편안 자체에 관련된 질문을 해달라” “답변은 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해 비판을 자초했다. 교육부 시안 2가지가 모두 환영받지 못하자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31일로 예정된 개편안 발표를 미루자는 제안도 나온다. 오는 11월까지 학종 개선과 내신 성취평가제, 고교체계 개편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편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일각에서는 아예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고등학교에 적용하는 시기를 1년 미루고 수능 개편안을 차근차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교육부가 오는 31일 일방적으로 (개편안을) 발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개편안 발표를 미룰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하지만, 국회 교문위의 여당측 관계자는 “교육부도 이런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