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재활용업체 중 37곳이 폐비닐 등을 거둬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벌어진 사태의 시발점은 중국이었다. 중국 환경보호부는 지난해 말 페트(PET) 압축품을 비롯한 폐플라스틱과 폐지 등 24개 품목의 수입을 중단한다고 했고, 올 1월 초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중국의 조치는 한국 재활용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중국이 표백하지 않은 폐지만 수입하기로 하자 해외의 ‘질 좋은’ 폐지가 한국으로 향했다. 국내 폐지 가격은 폭락했다. 그러자 폐지에서 손해를 보게 된 업체들이 단가 낮은 폐비닐을 수거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중국에 많이 수출되던 품목도 아니었는데 연쇄작용으로 폐비닐이 문제가 된 것이다. 몇몇 업체들은 페트병과 페트로 만들어진 일회용컵까지 수거하지 않겠다고 했다.
환경부가 2일 현장점검을 하겠다고 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중국이 언제 다시 폐자재를 수입해갈지는 불투명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독일에 이어 2번째로 재활용률이 높은 ‘재활용 선진국’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국제적으로 칭찬을 받아오던 한국의 재활용 시스템이 중국 입김에 쉽사리 휘청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의 수입금지 조치 탓에 올 1~2월 중국으로 수출한 폐플라스틱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2%나 줄었다. 재활용품 거래에서 중국 의존도가 그렇게 높았다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에 연간 19만~20만t의 폐플라스틱을 수출해왔다. 중국의 조치가 이어지면 매년 폐플라스틱 18만t 분량이 갈 곳을 잃고 국내에 쌓이게 된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해온 폐플라스틱은 주로 유색이나 복합재질 페트의 파쇄품이다. 이런 폐플라스틱은 품질이 낮아 국내에서는 많이 재활용되지 않는다. 반면 질이 좋은 투명 페트병 등은 국내에서 플레이크로 가공한 뒤 인조섬유를 만드는 방식으로 재활용된다. 폐비닐의 경우 이물질이 잘 묻지 않는 산업용 ‘랩’은 중국에 수출해왔다. 하지만 쓰레기장의 폐비닐 대다수는 가정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런 폐비닐의 약 60%는 산업용 보일러 등의 고형연료(SRF)로 활용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고형연료 시장 사정까지 악화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자원순환구조를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폐기물의 양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인이 매년 쓰는 1회용 비닐봉투는 2015년 기준으로 211억장에 이른다. 2003년에는 125억장 수준이었다. 일정 규모가 넘는 상점에선 1회용 비닐봉투를 공짜로 주지 못하게 했는데도 비닐봉투 사용량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인의 1인당 비닐봉투 사용량은 핀란드의 100배, 아일랜드의 20배다. 폐비닐을 내놓을 때 이물질이 묻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재활용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수거업체들은 더러운 폐비닐을 솎아내는 비용이 크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수거해간 폐비닐의 약 40%는 일반 쓰레기로 처리된다.
튼튼한 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만들 수 있도록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독일에서는 페트병도 소비자에게 보증금을 주고 돌려받은 후 사업자가 녹여 페트병으로 만든다”면서 “이런 식으로 자원순환구조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폐자재와 관련한 ‘중국 리스크’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2013년에도 중국은 일부 폐자재를 6개월가량 수입하지 않았다. 이후 유럽국들은 비닐봉투와 플라스틱을 줄이는 정책을 앞다퉈 내놓았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지난 1월 ‘플라스틱 쓰레기를 없애겠다’며 25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도 ‘중국 리스크’와 관련이 있다. 유럽연합은 2019년까지 비닐봉투 소비량을 80%까지 줄이기로 이미 2014년 합의하기도 했다. 홍 소장은 “지금 당장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일회용 비닐 사용을 줄이고 이물질 없이 배출하는 것”이라면서 “제품 생산자가 재활용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적극 적용해 재활용업체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 등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일부 지역 재활용품 수거업체들이 폐비닐과 페트 등을 거둬가지 않겠다고 해 ‘재활용품 수거 대란’이 일어나자 환경부가 2일 나서서 긴급 현장점검을 통해 ‘정상수거’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날도 혼란이 계속됐다.
환경부는 수도권의 민간 재활용업체 48곳 중 일부 품목 분리수거를 거부한 37곳과 협의해 폐비닐 등을 모두 정상적으로 수거하게 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환경부는 지방자치단체들와 함께 분리배출해야 할 품목을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라고 안내한 아파트 단지들을 점검, 안내문을 제거하게 하고 분리배출을 하지 않는 사례가 적발되면 시정조치를 하기로 했다.
2일 오전 광주 북구 재활용품선별장에 처리하지 못한 재활용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연합뉴스
분리수거 문제로 큰 혼란을 빚은 경기도는 군포를 제외한 30개 시·군의 재활용품 수거가 순차적으로 정상화된다고 밝혔다. 수원시는 업체와 공동주택 간 조율을 유도하고, 조율이 안 되면 시에서 직접 수거할 방침이다. 화성시는 수거를 요청하는 아파트 등에서 시가 직접 수거하기로 했고 김포, 과천, 고양시에선 업체나 지자체가 처리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원칙적으로는 아파트들이 업체와 자율적으로 계약해 처리하되, 주민들이 원하면 자치구에서 비닐을 수거해 가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일부 수거업체들은 중국이 재활용 자원수입을 중단한 탓에 손해를 보게 됐다며 폐비닐에 이어 스티로폼, 플라스틱 제품까지 수거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법에 따르면 폐비닐과 스티로폼 등은 반드시 분리해 내놓아야 하고, 이를 어기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돼 있다.
당국이 수습에 나섰지만 2일에도 혼선이 이어졌다. 경기 화성의 한 대규모 아파트단지에서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받지 않다가 이날부터 다시 분리 배출하도록 했으나 업체가 수거를 거부했다.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시민은 “비닐류를 수거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은 걸 봤는데, 2일 오후에도 관리자가 ‘아직 수거업체가 답을 하지 않고 있다’며 분리배출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에는 분리수거를 여전히 업체들이 거부하고 있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중국이 지난해 말 재활용 폐기물 수입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을 때부터 환경당국이 쓰레기 대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 이미 지난달부터 분리수거 문제가 불거졌지만 지자체들 관할이라는 이유로 환경부는 적극 나서지 않았다.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오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지만, 현장을 점검해 단속하고 시정하도록 하겠다는 것 정도였다. 재활용품 선별·수거를 맡고 있는 업체들이 환경부와 ‘구두 협의’를 해놓고도 지원금을 받아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수거를 거부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환경부는 우선 업체들이 가져간 폐기물 중 재활용되기 힘든 것들을 소각하는 데 드는 비용을 깎아주기로 했고, 중국 대신 베트남 등으로 재활용 폐기물 ‘판로’를 개척하기로 했다. 또 재활용 원료를 국내에서 더 많이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이달 중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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