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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생태

영세기업 의존한 재활용 산업…정부가 생산 단계부터 전략 짜야

재활용품을 시민들이 분리해 내놓으면 대부분 민간업체들이 수거를 맡는 것이 한국의 생활폐기물 재활용 시스템이었다. 일부 재활용품 선별·수거업체가 중국의 수입중단 조치로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폐비닐 등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분리수거 대란’이 일었다. 

3일 오전 강원 춘천시 혈동리 환경사업소 뒷마당에 압축시킨 재활용 폐기물 더미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재활용품 수거를 단독주택 지역이나 몇몇 지자체에서 하듯 지자체나 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폐기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품을 제조하는 생산자들에게서 부담금을 거둬 영세한 재활용업체들을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참에 리사이클링 산업 전반을 미래지향적이고 친환경적으로 키워나가기 위한 전략을 짜고, 시민들의 생활형태도 친환경적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5인 이하가 77%, 영세한 업체들

한국환경공단의 지난해 ‘폐기물 활용실적 및 업체현황’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폐기물 재활용업체로 허가를 받았거나 신고한 업체는 2016년 기준으로 6085개다. 재활용업체 수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4000곳 안팎이다가 이후 계속 늘었다. 하지만 대부분 영세업체다. 폐시멘트 등 지정폐기물을 처리하는 대기업을 빼면 종업원 없이 사업자 혼자 일하는 곳이 3129곳이고, 종업원 1~5명으로 운영되는 곳이 1563곳이다. 이런 영세업체가 77.1%를 차지한다.

전체 재활용업체의 71.1%는 연간 총매출액이 1억원도 채 못 된다. 판매액이 100억원 이상인 업체는 1.6%에 그친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한국의 폐기물 재활용률은 59%로, 65%인 독일에 이어 2위였다. 여기엔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가 자리 잡은 요인이 컸다. 하지만 정작 리사이클링이라는 산업은 영세기업들에 의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영세기업 의존한 재활용 산업…정부가 생산 단계부터 전략 짜야


재활용되는 폐기물 가운데 생활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환경공단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재활용 폐기물량 5576만t 가운데 생활폐기물은 0.13%인 7만1426t에 그쳤다.

폐지나 플라스틱, 비닐류를 수거한 뒤 압축해 재가공업체에 넘기거나 외국에 파는 사업체들의 규모가 작다 보니 중국의 수입금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다른 판로를 찾기 힘들고 곧바로 수익성이 악화된다. 가정이나 개인에게서 나오는 일회용품 재활용률이 떨어지는 것도 이런 구조와 관련돼 있다. 당장 재질이 서로 다른 플라스틱의 경우 분리해서 내놔도 분류작업에 필요한 인건비를 부담하기 힘들어 재활용하지 못한 채 폐기하게 되는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2016년 작성한 ‘재활용제품 수요창출을 위한 재활용시장 실태조사’에서 “국내 재활용업체는 대다수가 영세해 국내외 시장여건의 변화에 대처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술 개발을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자본력과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영세한 재활용업체들이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고, 재생원료나 제품 품목이 다양하지 못하고 품질도 표준화돼 있지 않아 국내외 시장 변화에 취약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리사이클링 산업 발전전략 필요

이런 영세 수거업체들이 많아진 것은 한국의 주거형태 등 여러 요소와 관련돼 있다. 단독주택 지역에선 지자체들이 분리수거를 맡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도 지자체가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현재 가정에서 나오는 재활용품의 60%는 민간업체가 처리하고 있다. 이는 “우리와 비슷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굉장히 독특한 형태”라고 홍 소장은 지적한다.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지자체가 수거작업을 한다. 한국의 경우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이 일반화된 까닭에 아파트 단지들이 각기 업체들과 계약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이번 ‘분리수거 대란’ 같은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지자체와 환경부가 긴급히 논의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홍 소장은 “선별·수거업체들은 수익성이 떨어졌다며 수거를 거부할것이 아니라, 협의체를 만들어 외부 요인에 미리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환경부와 지자체, 플라스틱 등의 생산자와 재활용업체들이 테이블에 앉아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사이클링은 폐기물이라는 ‘미래의 자원’이 세계에서 거래되는 산업이기도 하다. 독일 통계회사 스타티스타는 2011년 140억유로였던 세계 리사이클링 시장 규모가 2015년에는 210억유로로 커졌고, 2020년에는 350억유로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정부가 발전전략을 만들고, 기업들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좋은 소재로 가공해 되쓰일 수 있도록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산업 측면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폐자원 활용 문제와도 연관이 크다”고 짚었다. 그동안 폐비닐의 90%는 고형폐기물연료(SRF)를 만드는 데 쓰였는데, 정부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고형연료 규제를 강화하자 쓰임새가 없어져 업체들이 수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환경을 위해 취한 조치가 역설적이지만 환경 부메랑으로 돌아온 이런 과정은 정책의 ‘디테일’까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배 교수는 “업체들이 규모를 키우고 시장을 개척하는 기술 개발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시장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정부는 쓰레기를 에너지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안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재활용되는 비중을 높이되, 상품 생산-포장-유통의 전 단계에서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도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 일례로 페트병의 경우 맥주용 갈색병은 투명한 병에 비해 재활용률이 떨어진다. 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을 세심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재활용될 수 있는 자원을 품목별로 관리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당장 수익성이 없는 비닐류는 공공 인프라를 통해 수거와 재활용을 맡고, 시장성 있는 품목은 시장에 맡기는 식으로 이원화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홍 소장은 지적했다.

사용 줄이려면 기업들 움직여야

자원순환정보시스템 통계를 보면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은 2003년 하루 평균 3956.4t에서 2016년에는 5445.6t으로 늘었다. 통계청의 2016년 조사에서는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으로 나타났다. 1인당 소비량이 98.2㎏으로 미국의 97.7㎏보다 많았다. 한국의 해양쓰레기 중 70%가 플라스틱류이며 특히 5㎜ 이하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시민들은 재활용될 수 있는 것들이 폐기되지 않도록 하면서 쓰레기양 자체를 줄여가야 하고, 정부의 폐기물 정책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에 대부분 이견이 없다. 하지만 비닐봉지 개인부담금 20원씩을 부과해도 비닐봉지 사용량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에서 보이듯, 실효성이 문제다. 대형유통매장과 도소매점에서 1회용 비닐봉투를 무상으로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1999년부터 시행됐지만, 비닐봉투 사용은 줄어들기는커녕 매년 늘어 2015년엔 211억장이나 됐다.

기업들과 협력해 과도한 포장재들을 줄이게 하는 식으로 정책적으로 유도해나가야 한다고 시민단체들은 지적한다. 소비자들의 의식을 탓할 게 아니라 생산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수연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소비자들에겐 현재로선 아예 선택지가 없다”면서 “소비자들의 인식을 개선해 플라스틱 따위의 사용을 줄이고 분리배출을 하도록 한다 해도, 제품 생산과 유통 단계에서 강력 규제하지 않으면 기업의 변화를 끌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지난 2일 분리수거 현장점검 등 긴급 대응 방안을 포함해 후속 장기대책을 내놨다. 폐비닐의 경우 상품 생산자에게서 돈을 거둬 재활용 비용에 보태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활용해 재활용업체들에 지원금을 조기 지급하고, 이달 중 수거해 잔재물을 소각할 때에는 비용을 낮춰주기로 했다. 폐지나 폐플라스틱처럼 외국산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는 품목은 재생원료를 쓰는 업계와 협의해 ‘국내 물량’을 많이 쓰게 하기로 했다. 다음달에는 재활용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다.

EPR을 적극 적용하는 것에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일치한다. 장기적으로 환경에 부담이 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이들이 그 부담을 지게 함으로써, 생산비용에 현재 포함돼 있지 않은 채 ‘외부화’된 비용을 기업들이 내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도 비닐이나 페트병처럼 재가공되지 못한 채 쌓여가는 품목에 대해서는 생산자 부담금을 늘릴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