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경과 생태

[배문규의 에코와치] 쓰레기 줄이기? 결국 ‘생산자 책임’ 늘려야

ㆍ수도권 대응 방안 발표 취소 후 뒤늦게 긴급 현장점검 나서
ㆍ포장재 재질·구조 복잡해…재활용 쉬운 페트병은 0.1%
ㆍ피해·책임, 소비자에 몰리지만 생산자 책임 강화가 해법

<b>분주한 재활용 선별작업</b> 5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재활용 쓰레기 선별업체에서 직원들이 수거 차량에서 쏟아져 컨베이어벨트로 넘어오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골라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분주한 재활용 선별작업 5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재활용 쓰레기 선별업체에서 직원들이 수거 차량에서 쏟아져 컨베이어벨트로 넘어오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골라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환경부가 ‘재활용 쓰레기 대책’ 발표 이후에도 이어지는 혼란에 관련 브리핑을 취소하고 현장 수습에 나섰다.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지만, 결국 생산자 책임 강화와 일회용품 규제가 근본적 해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브리핑 취소한 환경부 

환경부는 5일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재활용품 수거 현장 점검에 들어갔다. 당초 이날 오전 ‘수도권 재활용 쓰레기 문제 대응방안’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전날 밤 기자단에 문자메시지로 취소를 알렸다. 환경부 관계자는 “생활과 직결된 현장의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에 브리핑을 연기했다”면서 “긴급 현장점검에 들어가 수거 거부 사태부터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 2일 수도권 곳곳 아파트단지에서 재활용품 수거업체들의 ‘수거 거부’로 주민들 아우성이 일자 긴급대책을 발표했지만 “정상적으로 수거하게 하고 위반사항은 시정조치하겠다”며 향후 대책을 약속하는 것에 그쳤다. 앞서 안병옥 환경부 차관과 실무진이 수도권 재활용품 수거업체 대표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환경부와 업체들 사이에서 엇갈린 소리들이 나오면서 대응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환경부가 중장기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한 것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수도권 재활용 쓰레기 문제 대응방안’을 사전 보고한 자리에서 거센 질타를 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환경부가 지난 4일 이 총리에게 보고한 대응방안은 앞서 밝힌 대책을 구체화한 것으로, 기업들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부담금을 늘리고 해외시장 개척 태스크포스(TF)를 만들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총리는 현장부터 수습하라며 질타했고, 결국 브리핑을 연기했다.

■ ‘나쁜 포장재’ 근본부터 잡아야 

재활용 쓰레기 수거에 문제가 생기면 직접적인 피해자는 시민이다. 당장 분리수거 책임을 지는 재활용업체들과 이들을 관리하는 지자체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상품을 만들어 파는 생산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 보고하려던 환경부, “현장부터 수습하라” 이 총리에 혼쭐

뚜껑 부분이 알루미늄으로 된 세련된 생수병, 종이용기 겉면을 비닐수지로 감싼 컵라면, 배출구가 플라스틱으로 된 우유갑처럼 어떻게 분리수거를 해야 할지 난감한 물건들은 재활용도 불가능하다. 환경부의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등에 관한 기준’에 따르면 포장재 등급은 1등급(재활용 용이), 2·3등급(재활용 어려움)으로 나뉜다. 포장재의 재질과 구조가 제각각이고 색깔마저 다양해 재활용하기 힘든 것이 많다. 특히 페트병의 경우 재활용 1등급 포장재는 0.1%에 불과하다.

역설적이지만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개선할 이유가 없어서’다. 생산자들이 재료와 무늬, 색상이 단순한 1등급 포장재를 만들기보다는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과도한 포장재’를 써도 되기 때문이다. 상품이 다 쓰이고 나서 포장재가 재활용되든 되지 않든 생산자에겐 큰 차이가 없다.

정부가 3등급에서 1등급으로 전환하는 업체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지만, 소극적 대책일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3등급에서 1등급으로 전환했다고 인센티브를 준다면 원래 1등급을 쓰던 기업에는 오히려 불공정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1등급 포장재를 쓰도록 강제하는 효과도 적다. 

■ 분리배출 마크에 재활용 등급도 

‘분리배출 마크’에 재활용 등급까지 표시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소비자들이 ‘나쁜 포장재’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되면 직접적으로 시장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면서 “재활용하기 어려운 제품을 만드는 생산자에게 분담금을 크게 지우는 방향으로 차등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 소장은 “온라인에서 발송되는 택배의 수송포장재 값에도 생산자 부담을 지워 비용을 발생시킨 사람이 돈을 내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분리배출을 할 때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재활용품 분리배출 항목이 한국보다 단순하다. 하지만 신문지는 별도로 묶어 내놓고 폐지나 박스용지에서는 테이프를, 페트병에서는 상표가 적힌 비닐을 모두 뜯어낸 후 배출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배출 요령을 알리고 지키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독일에선 음료수를 사먹을 때마다 판트(pfand)라고 불리는 보증금을 내야 한다. 병이나 유리용기들은 색깔을 구분해 내놓는다.

신수연 녹색연합 팀장은 “소비자들이 당장은 불편할 수 있지만, 이번 사태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했으니 방향성에 대부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규제를 완화한다며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비닐봉지 90% 줄인 아일랜드...세계는 플라스틱과의 전쟁 중


정부는 지난달 23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중국의 폐기물 수입금지 조치에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우려를 넘어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중국발 ‘재활용 대란’은 이미 지난해부터 세계를 흔들고 있다. 문제는 얼마나 앞서서 ‘대책’을 만들었는가다.

이미지 www.plasticseurope.org

이미지 www.plasticseurope.org

유럽의 재활용율은 현재로선 한국보다 훨씬 떨어진다. 2016년 EU의 재활용율 목표치인 22.5%는 한국의 재활용율이 50%를 웃도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EU 환경기준에 동의한 회원국과 참관국 30개국 가운데 15개국만이 40%를 넘겼다.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은 유럽플라스틱재활용협회(EPRO) 방침에 맞춰 분리수거를 하고 있지만 연간 유럽 전체의 플라스틱 배출량 2500만톤 가운데 재활용을 위해 수거되는 양은 30%에 불과하다. 다만 한국보다 비닐봉투 사용량은 적다. EU는 현재 1인당 연간 90개인 비닐봉투 사용량을 2026년까지 40개로 줄이겠다고 했다. 한국은 2015년 1인당 비닐봉지 420개를 썼다.

EU는 지난 1월 ‘순환경제’로 체질을 바꾸기 위한 전 유럽 차원의 폐기물 대책을 발표했다. 제품의 설계, 생산, 사용 전 과정을 재활용 친화적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리사이클링이 기업들에게도 이익이 되게끔 시장 구조를 만들고, 플라스틱 폐기물 양을 줄이며, 특히 바다에 버려지는 것을 막고, 관련분야의 ‘혁신’과 투자를 유도하고, 세계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2030년까지 유럽 시장에서 모든 플라스틱(비닐) 포장재를 재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비닐봉지 90% 줄인 아일랜드...세계는 플라스틱과의 전쟁 중

EU가 환경기준을 끌어올리는 것에 계속 반대해온 영국 등 역내 이견이 많지만, 앞서가는 나라들도 있다. 덴마크는 1993년 세계 최초로 종이·비닐봉투에 세금을 도입했으며, 아일랜드는 2002년 ‘봉투세’를 통해 사용량을 90%나 줄였다. 유엔환경기구(UNEP) 본부가 있고 생태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케냐는 지난해 8월 비닐봉투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비닐봉투를 만들고, 팔고, 쓰는 행위를 모두 금하는 파격적인 시도다. 어기면 3만8000달러의 벌금 또는 최고 4년형을 살게 된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일반적이고 1인가구가 늘어난 대만에선 10명 중 7명이 외식에 의존한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타이베이시는 2015년 8월 ‘일회성·멜라민용기 사용금지 실행지침’을 내놓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1년 뒤에는 대만 북부 학교와 관공서, 대학병원 등 공공시설에서 일회용품이 퇴출됐다. 대만 정부는 2025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제품 유료판매, 2030년 전면 금지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