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발전 5사가 발전소 안전 관리에 꼭 필요한 정비·운전업무를 비정규직들에게 계속 맡긴다는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이미 지난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내놨는데, 컨설팅 보고서에는 이를 무시한 채 비정규직의 2%만 정규직화 하는 방안이 담겼다. 발전 5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도 정비업무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경향신문이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발전5사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컨설팅 최종보고서’를 보면, 컨설팅을 맡은 노무법인 서정은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5개사의 정비·운전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5개사에 간접고용된 노동자는 7675명인데 보고서대로라면 직접고용되는 사람은 소방·방재업무를 하는 156명(2%)에 그친다. 자회사로 전환되는 사람까지 포함해도 31%에 불과하다.
발전사들은 화력발전소 설비를 정비·보수하는 일은 민간업체 위탁으로, 발전소에서 땔 석탄을 부숴서 공급하거나 미세먼지·탈황폐수 등을 처리하는 운전업무는 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가 핵심시설인 발전소 가동과 직결돼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환경파괴에 주변 주민들 건강권까지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이들을 국가가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발전사들에서 발생한 인명사고 피해자 대부분이 ‘협력사 직원’들이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들의 일이 ‘상시지속업무’에는 해당하지만 ‘생명안전과 직결된 업무’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비에 문제가 생겨 정전된 적이 없었고, 환경오염과 건강 유해의 관련성은 간접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화 대상이지만 보고서는 ‘민간기업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업무’라며 예외사유에 해당되는 것으로 봤다. 하지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정비·운전노동자들은 발전사들이 만든 교재를 기초로 교육받고 발전사들의 업무지시를 따른다”며 민간기업의 전문성을 근거로 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발전사 퇴직 임원들이 정비·운전업무를 맡은 민간업체로 옮겨간 점을 들며 의혹을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발전관련 공기업 퇴직임원 100명이 운전·정비 담당 민간업체에 적을 두고 있다.
컨설팅 보고서에 적힌 ‘파업 대응’ 방안도 논란거리다. 보고서는 비정규직 노조의 쟁의행위 등에 대한 대응을 적으면서 “과잉대응 시비로 번지지 않으려면 파업시 노조와 집행부에만 손배청구와 가압류를 가하라”, “게시물·유인물에 회사 비방 내용이 있으면 채증하고 형사 고소”를 할 수 있다는 등의 조언을 했다. 김 의원은 현대자동차, 동양시멘트 등의 불법파견 관련해 컨설팅을 해준 노무법인 서정에 정규직화 컨설팅을 맡긴 것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전5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수원은 1억8000만원을 들여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정규직 전환 관련 컨설팅을 맡겼으며 용역결과를 참조해 10월부터 정규직 전환에 나선다. 컨설팅보고서는 다음달 초에 완성될 예정이지만, 발전5사처럼 이미 “방향을 정해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수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문건에 따르면 한수원 노무관리 부서는 최근 비정규직 7303명 중 청소와 시설관리, 수처리, 발전운영 등 1113명은 자회사로, 정비와 방사선, 정보통신 4583명은 전환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을 냈다. 경비와 식당, 자체소방대 1037명만 직접고용한다는 방침을 담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으며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근로자대표와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지난달 말까지 10만1000명의 정규직 전환결정을 완료했다고 지난 10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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