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심의위원회 설치는 감감무소식이다. 어렵사리 위원회나 협의기구가 만들어져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낄 여지가 없다. 기관에 비정규직이 몇 명이고 어디서 몇년간 근무하고 있는지 사측은 자료를 내놓지 않는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노사의 충분한 협의”를 강조했지만, 정작 일선에서는 비정규직 당사자의 참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오전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열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사업이 전반적으로 늦춰지고 있다”라며 “각 기관이 ‘모범 사용자’가 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고, 가이드라인 적용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함께 하려 하지 않는 관행도 심하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실태조사나 정규직 전환 협의체 구성에서 당사자인 비정규직과 노조가 배제되는 사례가 가장 흔했다. 지난달 20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각 기관은 계약직의 경우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를, 파견·용역 같은 간접고용은 ‘노·사·전문가협의기구’를 구성해 전환 대상과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세세히 알기 어려운 기관별 특수성과 이해관계자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민주노총 조사에 따르면, 전국 지하철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부산지하철은 노조가 전환심의위원회·노사전문가협의기구 구성을 논의하자는 공문을 3차례나 보냈지만 사측은 이를 묵살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립대병원들은 전환심의위원회에 내부 인사로 5명을 앉히면서도, 노조가 추천하는 외부인사는 1명만 추천을 허용하는 등 노조 참여를 배제했다.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를 노조와 공유하는 일도 거의 없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각 공공기관은 지난 9일까지 자체 실태조사를 마친 뒤 이를 바탕으로 심의위원회 등을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 강남구, 경북 영덕군, 강원 인제·고성·홍천군 등 지자체에서는 노조가 실태조사 결과를 요구했지만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일선 부서나 사업소에서 자체 고용중인 비정규직은 지자체 인사담당자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래서 정규직 전환대상을 노조와 교차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고용노동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7월20일부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계약 만료 등의 이유로 이들을 해고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서울시 공공병원 ㄱ의료원은 최근 장애인 노동자 6명에게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오는 9월14일부로 해고 통보를 한 뒤, 그 자리에 또다시 비정규직 공개채용 공고를 냈다. 고용노동부는 가이드라인 발표 후 별도로 공문을 내 “기존 (계약)기간 만료 예정인 근로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한다”라고 각 기관에 지침을 내렸으나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전환이 내실있게 성공하고 전환대상자가 누락되지 않도록 하려면 노조뿐만 아니라 정부 모든 부처와 자치단체 개별기관 사용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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