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싸울 때는 태산같은 바위에다 머리를 박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5년간 조합원들이 버텨온 이유가 있습니다. 직접고용은 반갑고 환영할 일이지만 정규직이 된다고 투쟁이 마무리된 게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라두식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서비스지회) 대표지회장은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과 노사 합의서를 체결한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전날 삼성전자서비스와 노조는 협력업체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노사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번 합의는 불법파견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고용노동부나 법원의 판단 없이 삼성이 직접고용하기로 결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노사는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양측이 3명씩 참여하는 협상단을 꾸리고 곧 실무교섭에 들어간다. 서비스지회를 포함한 금속노조는 오는 20일 내부회의를 열어 교섭 방향을 정하고, 다음주 이후에 사측에 만남을 요청할 계획이다.
직접고용 대상은 가전제품 설치·수리기사와 상담직원 등 8000~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어느 직군을 정규직으로 바꿀지, 임금과 승진체계는 어떻게 할지 쟁점들이 쌓여있다. 우선은 1차로 약 6000명의 설치·수리기사를 직접고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나머지 간접고용 노동자도 직접고용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라 지회장은 “노조설립일인 7월14일까지 직접고용이 완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삼성 계열사 중에서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한 곳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처음이다. 삼성물산, 삼성에스원, 삼성웰스토리 등 다른 계열사에서는 여전히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삼성 측은 전날 노조와 대화하겠다고 하면서도 80년간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기하겠다고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 협상은 삼성을 노조활동이 보장되는 ‘정상적인 기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라 지회장은 “노조가 그동안 요구해 온 것은 노조를 인정하고 삼성의 무노조경영을 폐기하라는 것이었다”며 “직접고용이 되면 먼저 유니언숍(노조 자동가입)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민주노총도 ‘삼성 노조 조직화’에 전력할 것임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25만 삼성 노동자들이 노조 문을 두드릴 수 있게 하겠다”며 서비스지회를 중심으로 ‘삼성 10만 조직화’ 전략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 직접고용이 삼성에 대한 면죄부가 돼선 안 된다”며 “노조를 인정하고 상생 노사관계를 만들어가겠다고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선언하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전 계열사에서 노조를 파괴, 차단하고 있는 노무관리 시스템을 전면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이제 ‘정경유착은 없다’고 선언할 때”라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삼성 노조’에 대한 기대와 함께, 직접고용 방침이 다른 기업들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약속했음에도 공공기관들이 자회사를 세워 비정규직을 흡수하는 식의 ‘편법 정규직화’를 고집해 오히려 노동조건을 하향평준화한다는 지적이 많다. 조돈문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상임대표는 “삼성이 자회사 고용이 아닌 직접고용을 결정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 다른 대기업들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도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의 직접고용이 공공부문과 민간기업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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