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르치고 배우기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뉴라이트 색채' 뺐다

ㆍ2020학년도부터 ‘자유민주주의’ → ‘민주주의’
ㆍ교육부, 집필기준 최종 시안 공개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주변에서 2일 오후 시민들이 빗속에 133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주변에서 2일 오후 시민들이 빗속에 133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학년도부터 중·고교 학생들이 배울 역사교과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이전처럼 ‘민주주의’라는 표현으로 되돌아간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에 등장했던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뀐다.

교육부는 2일 이런 내용을 담은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시안’을 공개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국정교과서는 지난해 5월 폐기됐지만 집필기준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7개월 동안 새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시안을 만들었다.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은 교과서의 성격, 목표, 내용체계와 성취기준, 평가방향, 반드시 언급해야 할 내용의 서술방향과 유의사항을 정한 얼개다.

시안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소모적인 정치논란을 빚은 표현들을 제자리로 되돌렸다. 2011년 들어간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됐다. 쓰이지도 못한 채 폐기됐던 박근혜 정부 집필기준의 ‘대한민국 수립’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꿨다.

▶소홀했던 세계사 교육 강화, 한국사보다 먼저 가르친다

중등 ‘역사 1·2’로 분리…현대·생활사 비중도 높여

‘임정 법통’ 계승 분명히…6·25는 ‘남침’으로 명기

평가원 연구진은 “역대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써왔는데 2011년에 ‘자유민주주의’로 적어 학계와 교육계에서 수정 요구가 많았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서도 “학계 통설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입장, 독립운동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공청회에서 시안이 중간발표되자 일부 보수 학자들과 언론들은 ‘6·25 남침’을 명기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최종 시안엔 이를 반영해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전개과정과 피해상황”이라고 적었다.

■ 중학교 역사교육, ‘세계사’부터

역사교과서 ‘뉴라이트 입김’ 뺀다

시안은 3가지 축으로 돼 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교육과정, 그리고 두 교과서의 집필기준이다. 평가원이 지난해 시안 연구에 돌입하면서 정치권 일각에선 과거 ‘이념전쟁’을 불러온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용어의 변화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이번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은 몇 가지 용어를 ‘정상화’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세계사 교육의 강화다. 고등학교에서는 세계사가 선택과목이기 때문에 공교육에서 의무적으로 세계사를 배우는 것은 중학교 과정으로 끝난다. 하지만 중학교 역사 시간에 세계사는 한국사에 가려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연구진은 중학교의 역사교과서를 1·2로 나눠 ‘역사1’은 세계사로, ‘역사2’는 한국사로 분리했다. 세계사를 먼저 배우고 그 흐름 속에서 한국사를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세계사 서술에서도 균형을 추구했다. 국가별로 역사를 망라하는 형식을 벗어나 ‘주제’를 부각시키고, 그간 소홀히 취급됐던 생활사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 구미 중심의 역사서술을 탈피해 인도,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의 내용을 추가했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세계사에서 현재와 가까운 시기의 비중도 높였다. 예를 들어 현행 교과서는 1·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번 시안에서는 여성 참정권 운동과 민주주의 확산, 탈권위주의 운동과 대중문화의 발달 같은 소주제를 추가했다.

■ 고교 ‘근현대사’ 심화학습

한국사 교육의 구성도 크게 바뀐다. 중학교에선 조선 후기까지의 전근대사에, 고등학교에선 근현대사에 비중을 둔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한국사를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반복해 배우는 탓에 학생들의 흥미가 떨어진다는 불만이 계속 나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사’를 배우는 시기를 나눈 것이다. 중학교에서도 근현대사를 교육하지만 주제를 중심으로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반대로 전근대사 부분을 주제 중심으로 심화학습하게 된다.

이번 시안을 만들면서 연구진은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의 애초 취지를 되살리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와 저자들은 교육부가 고시하는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기준으로 삼되 각자 특색 있는 역사교과서를 만든다. 역사 해석과 교육 내용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과거 정부에서는 가이드라인을 세세하게 제시해 정권의 역사관을 교과서에 반영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번 시안은 분량이 크게 줄었다. 이를테면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항목에 대해 200자 원고지 7장 분량이 제시돼 있었던 것을 1.5장으로 줄였다.

시안은 교육과정심의회 심의 뒤 행정예고와 의견수렴을 거쳐 교육부가 올 상반기에 확정한다. 교과서에는 2020학년도부터 반영된다.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자유 민주주의'→'민주주의'

2020학년도부터 중·고교 학생들이 배울 역사교과서에서는 ‘자유 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쓰인다. 또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에 등장했던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되돌린다. 

교육부는 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출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시안(이하 집필기준 시안)을 공개했다. 이번 집필기준 시안은 지난해 국정교과서가 폐기되면서 다시 연구에 착수해 만들어진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국정화를 밀어붙일 당시 만들어진 집필기준을 교과서 검정에 여전히 적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새로 만들게 됐다. 집필기준은 교과서에 반드시 언급해야할 내용의 서술 방향과 유의사항 등을 집약한 일종의 교과서 ‘가이드라인’이다. 다양한 교과서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서술을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에 공개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정치적 표현’을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대표적인 예가 ‘자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쓰도록 했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발전’ 항목에서는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 성장, 통일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음을 이해한다’, ‘4·19 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자유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 성장, 대중문화의 발달과 국제 교류의 확대를 설명한다’고 제시돼 있다. 이러한 집필기준이 사용된 탓에 다수의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등장하게 됐다. 원래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이 처음 도입될 당시인 2007년에는 ‘자유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쓰였었다.

새 집필기준 시안을 만든 연구진은 “역대 역사과 교육과정 및 교과서에서 활용된 용어는 대부분 ‘민주주의’였음에도, 2011년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서술한 이후 학계와 교육계에서 수정 요구가 많았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면서 집필기준에 끼워넣었던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도 이번 집필기준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되돌렸다. 다만 국정화 추진 당시 만들어진 집필기준은 아직 교과서 검정에 적용되지 않아 현행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돼 있다. 

과거 보수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고집한 이유는 냉전과 반공을 강조하려는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관’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자유’를 덧붙임으로써 시장주의 이념과 좌·우 대결을 강조하려 했다. 또 ‘대한민국 수립’은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삼으려는 보수우익의 주장이 반영된 표현이다. 연구진은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변경하면서 “학계의 통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입장, 독립운동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날 교육부가 발표한 최종 시안에는 올해 2월 공청회 공개 안에서는 빠졌던 6·25 전쟁 관련 ‘남침’ 표현이 추가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진은 3개월 전 ‘6·25의 전개 과정과 피해 상황’이라는 표현이 담긴 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남침’ 서술이 빠졌다며 보수학계가 비판하고 나섰고 연구진은 이를 받아들여 최종 시안엔 ‘남침으로 시작된 6·25’라고 서술했다.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출한 교육과정·집필기준 최종시안에 대해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와 자문을 거친 뒤 국민 의견수렴을 위해 행정예고를 실시한 후 올 상반기에 최종 확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