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일대 교통이 마비됐다. 건설노조 조합원 2만명이 연좌시위를 하면서 마포대교 남단을 완전히 막았기 때문이다. 차들은 오도가도 못한 채 도로에 갇혔고, 퇴근시간까지 정체가 이어졌다. 이 시위를 주도한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등 노조 지도부 2명에 대해서는 지난 3월 13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장 위원장은 서울 영등포구 건설노조 사무실에 은신한 채 51일간 버티다가 3일 경찰에 자진출두, 구속됐다.
건설노동자들은 왜 한강다리를 점거했을까. 장 위원장이 ‘법을 무시하고’ 구속을 피해 노조 사무실에서 도피생활을 한 이유는 뭘까. 문재인 정부 들어 ‘시위를 주도해 구속된 첫 노조 위원장’이 된 그는 경찰에 출석하기 직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저 ‘우리도 시민이니 임금을 떼이지 않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뿐이었다”고 했다. 마포대교 점거 농성은 “조합원들의 기대가 갑자기 깨진 상황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마포대교 점거 시위 중 집시법 위반 및 교통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으나 심사에 응하지 않았던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에서 국회 건설근로자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며 경찰출두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_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강다리가 마비된 그날,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이었던 건설근로자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먼저 국회 앞에 모였다. 건설근로자법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퇴직공제부금을 올리고 덤프기사 등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건설기계노동자들에게까지 적용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건설노동자 퇴직공제제도는 법정퇴직금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건설노동자들의 노후 안정을 위해 1998년부터 시행됐다. 사업주가 근무한 날 숫자대로 공제부금을 내면 건설노동자가 퇴직하면서 퇴직공제부금을 받는다. 그런데 하루치 납입액은 10년째 4200원에 머물렀다. 올 1월부터 5000원으로 올랐지만 건설노조는 최소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대로라면 1년을 꼬박 채워 일해도 퇴직금으로 쌓이는 돈이 120만원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장 위원장은 “보통 퇴직 때 500만원 정도를 받아간다”라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노무비를 공사대금에서 분리해 발주처가 직접 주게 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상습적인 임금체불을 막기 위해서다. “건설사들은 노동자 인건비를 으레 떼먹을 수 있는 돈으로 생각하거든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개들 10번 중 4번은 임금을 체불당해요.”
1번 안건으로 논의된다던 개정안이 소위 문턱을 넘기는커녕 거론되지도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 앞에 모여 있던 노동자들이 흥분해 거리로 나갔고, 마포대교 연좌농성으로 이어졌다. 장 위원장은 “해를 넘기기 전 법안이 통과될 거라고 기대했던 조합원들이 뜻밖의 소식에 망연자실해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며 “시민 불편을 일으킨 점을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우리가 왜 그렇게 절박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설노동자들도 시민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임금을 떼이지 않을 권리가 있고, 노후를 대비할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구속영장 집행을 거부한 데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그는 “비판은 달게 받겠지만, 우리 현실을 외면한 채 ‘엄정한 법 집행’만 강조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매년 600명에 가까운 건설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죽어나갑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이들의 두 배가 매년 죽는다는 뜻입니다. 덤프트럭 기사들은 3억원씩 자기 돈을 들여 트럭을 사서 일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받고 일해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이 저항권을 행사했다고 구속하고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 우리 사회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장 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겠다고 판단했고, 4월 안에 국회가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여전히 환노위에 계류돼 있다. 그는 “이제 국회에 공을 넘기겠다”며 사무실을 나섰고 곧바로 경찰에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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