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새벽, 대전통영간고속도로 함양분기점에서 생초나들목 방향으로 운행하던 고속버스에 커다랗고 시꺼먼 동물이 부딪쳤다. 이 동물은 사고 직후 고속도로를 빠져나갔고, 버스기사는 당일 오후 곧바로 “곰으로 보이는 야생동물과 충돌했다”고 지리산 국립공원사무소에 제보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버스에 묻은 털과 배설물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버스와 충돌하고 도망친 야생동물의 정체는 앞서 김천 수도산까지 두 차례나 도망쳤던 지리산 반달가슴곰 KM53으로 확인됐다.
세 번의 시도만에 성공을 목전에 뒀던 KM53의 ‘이주 대작전’이 뜻밖의 교통사고로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 환경부는 11일 오후 이 곰의 상태를 확인한 결과 왼쪽 앞다리가 부러진 것을 확인하고 포획해 지리산의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으로 이송해 치료중이라고 밝혔다. 방사선 검사 결과 KM53은 왼쪽 앞다리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복합골절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종합적인 진단 결과는 혈액검사와 분변검사 등 나머지 검사 결과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는 상태다.
2015년 지리산에 방사된 KM53은 지난해 6월과 7월 두 차례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됐다. 친구와 가족을 떠나 홀로 90㎞에 달하는 길을 걸어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한 것이다. 환경당국은 주민과 곰의 안전을 고려해 다시 붙잡아다 지리산에 풀어줬지만, KM53은 올해도 지리산을 떠나 ‘대모험’에 나서다 차에 치였다. 이번에는 지리산에서 북동쪽으로 20㎞ 떨어진 태봉산에서 거창 방면으로 북진하다 사고가 났다. 역시나 최종 목적지는 수도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최근 서식지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곰을 억지로 지리산으로 되돌려놓지 않기로 방침을 바꿨다.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서식지가 확장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주민과의 안전한 공존’을 새 목표로 삼았다. 이 방침에 따라 환경부는 KM53을 다시 포획해 지리산으로 보내지 않고 수도산에 정착해 살 수 있게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KM53이 갑작스런 부상을 입는 바람에 이 곰이 앞으로 어디서 살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새 원칙에 따르면 포획했던 태봉산 근처에 놓아줘야 하겠지만 교통사고가 났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며 “회복되는 동안 야생성을 잃을 수도 있어 방사를 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홍정기 환경부 자연환경정책실장은 “당장은 사고지점 등 곰의 도로횡단이 예상되는 지역부터 안내표지판 설치를 추진하겠다”라며 “이번 사고를 교훈삼아 야생동물들이 안전하게 오가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생태통로 연결 등 단절된 생태계의 회복과 생태축 복원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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