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예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알죠. 신호 잘 지키고, 제한속도 낮추고 안전벨트도 착용하고 등등. 그럼 자살 예방법도 사람들이 잘 알까요?”
중앙자살예방센터 손정모 강사가 물었다. 수강생들 사이에서 “아니요”란 답변이 나오자 손 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이상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2~3배는 많아요”
지난 10일 서울 중구 자살예방센터에서 열린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듣고말하기’ 교육에 참여했다. ‘자살예방 게이트키퍼’를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신청해 들을 수 있고, 3시간 교육을 마치면 ‘수료증’도 나온다. 정부는 자살예방대책의 일환으로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100만명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2013년 이후 60만명 정도가 교육을 받았다.
이날 교육은 현재 자살예방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 4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일반 교육생들과 달리 이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또 다른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양성을 위한 강사로도 활동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총 1만3092명이었다. 인구 10만명당 25.6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하루 평균 36명, 그러니까 40분마다 1명씩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한 셈이다. 교통사고 사망자(인구 10만명당 8.4명)의 3배가 넘는다.
자살은 당사자의 사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손 강사는 “자살사망자가 1만3000명이라면 ‘시도자’는 그 20~40배가 있다는 의미이고, 그 한사람의 자살시도는 가족과 친구 등 주변사람 6명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연간 자살시도자는 전북 전주시 인구(65만명)에 육박하고, 영향을 받는 사람은 부산시 인구(340만명) 정도 된다고 보면 실감이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11년 31.7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4년 27.3명, 2015년 26.5명, 2016년 25.6명 등으로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2위 헝가리(19.4명)와 격차가 여전히 크지만, 정부가 본격적으로 자살예방에 관심을 가진 뒤 줄어들고는 있다.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제도도 2013년부터 시작됐다.
자살예방 게이트키퍼가 되기 위해서는 3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된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전문가들이 2011년부터 1년 반동안 머리를 맞댄 끝에 쉽고, 효율적인 프로그램 ‘보고듣고말하기’를 만들었다. 자살 관련 설명을 듣고 10대와 청·장년, 노년의 자살 상황을 각각 묘사한 동영상 3편을 본 뒤 역할극으로 실습을 하면 3시간짜리 수업이 끝난다.
자살예방 단계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보기’를 통해 자살 고위험군을 알아차리고, ‘듣기’에서 자살위험자의 상황을 경청하고, ‘말하기’로 자살을 막아내면 된다. 예를 들어 심한 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사는게 지옥같다’고 말한다면 이는 자살 신호 중 하나다. 이럴 때는 자살에 대해 명확하게 묻는 것이 좋다.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니’라고 ‘돌직구’를 던져 대화를 이끌어 낸 뒤 ‘죽으려는 이유’를 적극적으로 들어줘야 한다. 손정모 강사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마음 속에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함께 있다”며 “대화를 통해 삶의 이유도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단계인 ‘말하기’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위험도’를 체크한 뒤 전문가나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과정이다. 위험도 체크는 5가지 문항이면 된다. ‘이전에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는지’ ‘우울증 등 정신과 질환이 있는지’ ‘술을 자주 먹는지’ ‘자살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거나 준비하고 있는지’ ‘힘들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지’를 직접 확인해보면 된다. 자살 위험도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지만, 위의 5가지 문항은 자살 기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만약 5가지가 모두 해당된다면 즉시 전화 129번(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 등에 연락하고, 가족과 지인에게도 알려야 한다. 절대 자살위험자를 혼자 둬서는 안되며, 준비한 자살도구는 없애야 한다.
강의 말미에 교육생들은 다시 동영상을 봤다. 앞서 봤던, 결국은 등장인물이 죽음에 이르렀던 동영상의 다른 버전이었다. 할머니의 자살신호를 알아채지 못해 죽음을 막지 못했던 사회복지사는 이번 동영상에서는 직접적인 질문으로 할머니를 구해낸다. “더 살면 뭐하겠냐”며 아끼는 반지를 빼 주는 할머니에게 “자살 생각하세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도 해보셨어요”라고 물은 뒤 전문가 상담 약속까지 받아낸다. 손정모 강사는 “누군가의 관심이 결국 한명의 목숨을 살린 것”이라며 “반지같은 작은 신호도 놓치지 말고 질문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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