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사협회 등 의·약 단체들이 ‘수가협상’에 한창입니다. 지난 11일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과 6개 의약 단체장이 상견례를 했고, 이후 실무진들이 계속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는 31일이 기한이니 결정이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런데 ‘수가’란 용어를 평소에 들어보셨나요. 지난해 8월9일 문재인 대통령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적정한 보험수가’를 보장해 의료계와 환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의료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는데 무엇일까요. 무엇이기에 대통령까지 나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지난 20일 서울 세종로 대한문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제 2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수가’는 한자로 ‘酬價’라고 씁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입니다. 앞의 수(酬·갚을 수)는 ‘보수’라는 말에 쓰이는 한자와 같네요. ‘수가’는 원래는 환자를 치료하고 받는 진료비를 의미했는데요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된 이후로는 ‘정해놓은 의료서비스 가격’이란 제한된 의미로 쓰입니다. 다른 말로는 ‘요양급여비용’이라고도 하는데, 역시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용이나 성형 목적이 아닌, 다치거나 아파서 병원에 가면 치료를 받습니다. 한국에서는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질환이나 부상은 본인부담금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나머지 비용을 건강보험이 부담해 주기 때문입니다.
건보공단은 미리 이런 의료행위에 대한 가격들을 의약 단체들과 협상으로 미리 정해놓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5조(요양급여비용의 산정 등)는 요양급여비용을 건보공단 이사장과 의료공급자를 대표하는 의협 등의 계약으로 정하고, 계약기간을 1년으로 하고 있으며 매년 5월31일까지 계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수가협상’이 바로 이 계약을 위한 것입니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로 이와같은 협상이 진행됐고, 기한내에 타결이 됐습니다. 이렇게 올해 수가는 평균 2.28%가 인상됐습니다. 인상폭은 병원 1.7%, 의원 3.1%, 치과 2.7%, 한방 2.9%, 약국 2.9%, 조산원 3.4%, 보건기관(보건소) 2.8% 등으로 기관마다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까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초진을 하려면 해당기관에 1만4860원을 지불해야 했지만, 올해부터는 450원 오른 1만5310원을 줍니다. 이중 환자의 본인부담금도 4400원에서 4500원으로 약간 올랐습니다. 요만큼만 인상을 해줬지만 건보공단의 추가 소요재정은 8234억원으로 추산됐습니다.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약사협회 등 이른바 ‘공급자 단체’들은 이런 수가협상에 불만이 많습니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주면 어떻게 병원이나 약국을 운영하겠냐”는 것입니다. 일리가 없는 지적은 아닙니다. 의사협회는 현행 수가의 원가 보전율이 70% 수준이라고 근거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의사협회가 ‘문재인 케어’ 중에서도 ‘비급여의 급여화’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 또한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그동안은 ‘건강보험이 가격을 정해놓은’ 급여진료에서 발생한 손해를, ‘의료기관이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있는’ 비급여진료에서 보충해왔는데, 비급여가 전면 급여화되면 이게 어려워질 수 밖에 없겠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면서 ‘적정한 수가’를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가를 올려서 의료기관들이 과거에 비해 손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의미죠. 복지부 역시 “문재인 케어 이후에도 병원 등 의료기관들이 가져가는 총액은 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용익 이사장은 지난 11일 ‘공급자 단체’와 상견례 자리에서 “고액 진료비로 인한 국민 가계의 고통을 없애고자 정부가 ‘문재인 케어’를 발표해 시행해오고 있다”며 “이는 의료기관들이 건강보험 진료비만으로 병·의원을 경영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수가를 적정수가로 보상해야 실행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를 전면적으로 급여화하고, 기존 보험수가의 높낮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적정수가 보상은 전체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해 2022년 완성할 것”이라며 “올해는 그 첫해이므로 매우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공단은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수가 협상에 임하고자 하니, 의약 단체장들도 이 과정에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협상이 원활히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28일 서울 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에서 열린 협상에 참여한 대부분의 단체들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건보공단이 겉으로는 ‘적정수가’를 얘기하면서 실제 협상에서는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협상에서 타결이 되지 않으면 ‘칼자루’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 넘어갑니다. 과연 기한내에 ‘적정수가’가 합의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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